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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뒤바뀐 '가짜'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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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절차 탓에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유공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

 

국가유공자란 국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을 뜻한다. 국가는 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정도에 따라 당사자와 그 유족에게 연금·생활조정수당 및 사망일시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국가유공자는 사후 국립묘지에 안치되어 후세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로 영원히 기억된다. 이렇듯 숭고한 국립묘지에 나라를 팔아먹고 독립운동가의 공적까지 가로챈 인물들이 수십 년째 묻혀있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실제로 현충원엔 ‘가짜’ 국가유공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 계엄군 중 일부가 서류를 왜곡 및 조작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전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전부터 제기되어 온 의심들을 끊임없이 묵과해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실질적인 기준이 아닌 허울뿐인 규정을 통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 어렵사리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더라도, 이들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다. 이에 본지에선 가짜 국가유공자가 판치는 현실을 낱낱이 파헤쳐보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미비한 현 제도와 보완대책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신분을 세탁한 ‘가짜’ 국가유공자

정부는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하여 가짜 국가유공자 김정수 일가의 서훈을 모두 취소했다. 김정수는 항일 조직인 참의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으며, 그의 일가는 3대에 걸친 독립운동 가문으로 인정받았었다. 하지만 김정수가 독립운동가 김정범(1889~미상)의 공적과 이름을 훔친 것이 드러나면서 수십 년간의 독립운동가 흉내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독립유공자 후손 김세걸 씨가 우연히 현충원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가짜 독립유공자 김진성을 발견한 뒤 의문을 품게 되었고, 진실을 추적하던 중 김진성과 김정수 일가가 가짜 독립유공자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더불어 김정수 일가에 지금까지 지급된 보훈급여가 무려 4억 50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비난 여론이 뜨거웠다. 이는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했을 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지금껏 지급된 급여를 환수하고 싶어도, 현재 국가재정법상 5년 치의 금액만 환수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정수의 자녀 및 손자녀 등은 보훈특별고용, 가점 취업 등 국가유공자에게 적용되는 취업 지원 혜택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낸 것이 정부나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가 아닌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다른 '김정수'가 현충원 속 어딘가, 우리가 기려야 할 ‘진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묻혀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5·18 계엄군 중 대다수가 아무런 심의 절차 없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은 사실이 밝혀지며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심지어 계엄군 책임자를 포함한 30명은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5·18 당시 광주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계엄군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모셔진 국립묘지에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가짜 국가유공자 문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가유공자 선별 과정에서 동명이인 문제가 발생하고, 허위 및 위조 자료를 검증 없이 채택하여 자연스레 따라온 결과다. 일제강점기 직후 패망한 일본군 출신 한국인들이 광복군에 들어가 이른바 ‘신분 세탁’을 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지금의 독립유공자 선정 제도가 ‘친일파’에 의해 수립됐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첫 포상이 실시된 1962년, 독립유공자 공적조사위원회 위원 중에는 이병도라는 인물이 존재했다. 이병도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사 왜곡을 담당하는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역사학자다. 국가유공자 선정 문제를 단순한 행정상 착오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써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보훈처는 지난 10년간 4차례에 걸쳐 총 39명의 가짜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취소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수 조사를 시행할 시, 100여 명 이상의 가짜 독립운동가가 더 나올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비난의 목소리가 일자 보훈처는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단을 통해 그동안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아 온 서훈자 1만 5000여 명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행할 것임을 전했다. 더불어 1976년 이전 서훈자 중 우선 검증 대상 587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올해 7월경 발표할 예정이다. 

 

진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의 실효성 없는 절차

국가유공자에 대한 미흡한 기준과 조사로 인해 ‘가짜’ 국가유공자가 생겨난 것과는 반대로, 실효성 없는 기준으로 인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2010년 3월 26일, 장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된 지 어느덧 9년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과는 무색하게 사고 생존 장병들은 여전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생존 장병 22명 중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은 이는 고작 6명에 불과하다. 13명은 등급 기준 미달 등의 사유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3명은 현재 의결 절차가 진행 중이다. 생존 장병 대부분이 겪고 있는 PTSD 진단만으로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기 어렵다는 것이 보훈처의 입장이다. 이 밖에도 입대한 지 3개월 만에 훈련 중 부상을 입어 희귀 합병증까지 앓게 된 모 병사가 3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어 논란이 일었다. 훈련 중 다친 것을 입증할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이렇듯 보훈처는 계속해서 모 병사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거부하였으나 법원의 판결에 의해 그는 간신히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국가유공자 지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깐깐한 절차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야 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가 억울한 이유로 다시 취소되어 피해를 본 경우도 존재한다. 故윤동혁 씨는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 노무자로 강제 징용됐었다. 이후 제주 4·3 사건에 연루돼 1948년 내란 혐의에 몰리며 이유도 없이 목포교도소에 수감되었고,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투 중 복부 관통상을 입어 같은 해 5월 명예 전역했다. 그는 전역 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쌀과 밀가루를 지원받았지만, 내란죄로 처벌받았다는 이유로 1952년 국가유공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에 유족들은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동시에 고인에 대한 국가유공자 등록을 원했지만, 보훈처는 똑같은 이유를 핑계로 그를 등록 대상에서 탈락시켰다. 결국 고인은 제주특별자치도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60여 년이 흐른 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선정 기준 및 절차에 있어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열악한 대우

현 국가유공자 제도는 선정 과정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지원 과정에서도 큰 문제점을 보인다. 현재 국가유공자에겐 시·군·구에서 주는 명예수당과 위문금을 모두 합쳐 월 11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의 지원금이 주어지고 있다. 이는 기초생계 수급 수준의 금액이며, 일상생활이 힘든 국가유공자 및 그들의 유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당을 받는다면, 기초생활수급자 책정 시 이 수당이 소득으로 산정돼 불이익을 받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또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프로그램 지원이 미비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작년 7월경 국가유공자인 50대 남성이 자택에서 고독사한 채 발견됐다. 그는 군 복무 시절 동료가 난사한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이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은둔 생활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장애인 국가유공자 또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재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은 최소 73만 원에서 최대 230만 원가량의 간호수당을 받고 있는데, 이 수당이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서 제공하는 수당과 중첩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보건복지부와 보훈처가 정한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장애인 국가유공자들이 오히려 복지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다. 또한, 장애인 관련 시설 이용과 일자리 지원 등에 있어서도 같은 이유로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다른 선진국들은 국가유공자에게 어떠한 지원을 하고 있을까? 미국을 예로 살펴보자. 미국은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적지에 남겨두지 않고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는 탄약과 포탄을 실어 나른 ‘아침해’라는 군마마저도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데려가 보살피고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9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유해가 조국이 아닌 중국 뤼순에 묻혀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정반대다. 미국은 보훈 예산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3.7%를 보훈 예산으로 소요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1.7% 정도만을 소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복지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면서 치료법을 연구한다. 아울러 보훈 대상자들이 장애 관련 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해당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처럼 우리도 국가유공자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하고 허울뿐인 규정들을 다시 되짚어봐야 한다. 더불어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인 만큼 국가유공자 선정에 대한 과거의 잘못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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