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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체스의 공간미학

동과 서: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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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게임은 각각 바둑과 체스이다. 바둑은 검정과 흰색의 돌이 서로 먹고 먹히면서 빈공간인 집을 짓는 게임이다. 이때 흰 돌과 검은 돌 하나하나의 기능은 모두 같다. 대신에 한 팀의 돌이 상대팀의 돌로 둘러싸이면 없어지게 된다. 바둑 게임의 규칙은 특정 바둑돌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에 의해서 돌의 기능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체스는 하나하나의 말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졌으며 상대방 말들을 잡고 결국에는 왕을 죽여야 이기는 게임이다. 

체스는 원래 이름은 “차투랑가”이다. 이 게임은 서기 600년경에 인도에서 만들어졌는데, 625년경에 페르시아로 건너가게 되었고, 이후 700년경 무어 족이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당시 페르시아인에 의해서 서양에 전파되어 지금의 유럽을 대표하는 게임 체스가 된 것이다. 체스는 본질적으로 유목민족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체스와 흡사한 중국의 게임은 장기가 있는데, 말과 코끼리와 졸병, 대포 등이 나와서 전쟁을 하는 게임이다. 장기나 체스가 유목사회의 전쟁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라면, 바둑은 농경사회의 문화에 기반을 둔 게임이다. 바둑은 마치 화전민이 경작지를 넓혀나가듯이 빈 땅을 넓히는 땅따먹기 게임이다. 이 두 게임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둑은 상대적이고 체스는 절대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은 빈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게임이고, 체스는 상대편을 죽이는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의 특징은 곧 그들의 문화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건축공간에도 투영되어 있다.

 

알파벳과 한자

편의상 유럽의 문화를 서양, 극동아시아의 문화를 동양이라고 하자. 이 둘은 전지구상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동떨어져서 발달한 문명으로 그 특징 또한 상이하다. 동양과 서양 두 문화의 차이점은 한자와 알파벳을 비교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나무 목(木)자와 하나 일(一)자를 가지고 상대적 위치와 길이에 따라서 근본 본(本), 끝 말(末), 아닐 미(未)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알파벳은 26개의 글자가 있고 이들의 순서를 바꾸어서 글자를 만든다. 한자가 중심을 두고 사방으로 글자가 확장되는 반면, 영어의 새로운 단어는 항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 축을 띠고 한 방향으로 글자의 순서만 바꾸어서 만들어진다. 알파벳에서 볼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기본적인 최소단위를 추구한다. 그리스의 학자들은 물, 불, 흙, 공기가 세상의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단위라고 믿었다. 서양의 과학도 그리스 시대부터 근대까지 항상 최소단위인 원자를 찾고, 원자보다 더 작은 양자의 세계까지 쪼개는 방식으로 발달해왔다. 알파벳 26자는 마치 화학에서의 원소기호처럼 최소한의 단위인 것이다. DNA는 생명체의 설계도가 A, G, C, T의 4가지 염기로 구성된 암호문이라는 개념이다. 마치 알파벳이 26개의 순서로 다른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DNA라는 개념이 동양이 아닌 서양과학자에게서 먼저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로 세상의 구성을 바라본다. 두 상반된 힘의 조화와 균형이 세상을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건축의 경우, 서양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공간을 추구했다. 피라미드는 정사각형과 삼각형으로 만들어졌고, 로마의 판테온의 평면과 단면은 모두 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동양에는 기하학적 모양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상대적 관계성을 더 추구했다. 우리의 풍수지리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각의 근본은 상대성 속에서 가치를 찾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두 문화 사이에 그러한 차이점이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서양의 문화적 기틀을 잡은 사상가들은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BC 400년을 전후로 하여 동양은 노자, 공자, 석가모니 같은 인물이 나왔고 서양에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유클리드 같은 사상가들이 출현했다. 이들이 두 문화권에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닌 듯싶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론에 비추어볼 때, 두 지역 모두 그 시기쯤 농경사회가 성숙하게 자리를 잡게 된 때문일 것이다. 농경사회에선 한번 수확해서 다음번 파종할 때까지는 먹거리 걱정 없이 빈둥거릴 시간이 많다. 이렇게 노는 시간에 지능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인류학적으로도 1만~4만5천년전 시대의 크로마뇽인 시대에 갑작스럽게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또한 농경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이렇게 비슷한 환경이 오랜 시간동안 누적되어 비슷한 수준으로 동양과 서양이 각자 성숙해졌을 때 위와 같은 사상가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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