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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치유, 상처 입은 스스로에게 위로 건네기 

소설 속 인물과 함께 떠나는 내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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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는 지난 3월 넷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이자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2018)를 선정했다. 어떤 독자는 단순히 겉표지의 귀여운 곰돌이 푸 캐릭터에 반해, 또 다른 독자는 책 속의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 책을 구매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독서를 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다.

독자들을 ‘힐링’하게 하는 베스트셀러 도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독자는 책 속에 등장한 주인공과의 동일시 또는 거리감 느끼기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거나 현재 삶을 성찰하기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최근 떠오르는 심리 치료 분야의 학문으로 ‘문학 치유’라고 불린다. 베스트셀러 도서로서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한 이야기들을 통해, 특정 시기로 돌아가 아직 남아있는 그때의 상처를 치유해보자.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2009)은 2014년 영화 개봉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유지해온 ‘10대 치유’ 소설이다. 고등학생 ‘천지’는 ‘화연’에게 은밀하고 교묘한 괴롭힘을 당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천지의 죽음 이후 교실에 남은 화연과 그 주변 인물들은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는 등 갈등을 지속하고, 천지의 언니 ‘만지’의 개입으로 따돌림의 주범이었던 화연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천지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교실 속 진실 공방의 한가운데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거나 선행 경험과 연관 짓게 된다. 천지뿐만 아니라 교실 속 모든 인물들의 마음에 공감하며, 치유 받지 못한 채 남아있는 10대 시절의 상처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천지의 유언을 상징하는 ‘빨간 털실’은 결국 학교 폭력의 상처를 지닌 독자에게 건네는 위로가 된다.   

 

 

문학을 통해 10대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20대가 된 청년들은 보다 성숙하고 깊이 있는 책읽기를 시도한다. 20대를 겨냥한 작품에서는 비정상적인 사고 구조를 지녔거나,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행위를 일삼는 책 속 주인공과 마주하게 된다. 성인 독자는 주인공들에 대해 모방을 시도하기보다는 거리감과 이질감을 느끼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2013년 20대를 위한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는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2013)은 주인공과의 거리감을 통해 독자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연쇄살인범이라는 과거를 가진 알츠하이머 환자 ‘병수’는 우연히 만난 딸의 애인 ‘태주’가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딸 ‘은희’ 곁을 맴도는 태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온갖 사투를 벌이는데, 태주를 잡기 위한 기억들이 자꾸 끊기자 오히려 살인 습관들이 되살아나게 된다. 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살인 계획을 세우는 병수를 보며 독자들은 거리감과 함께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살인자’ 병수의 모습은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는 어머니와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하얀 운동화에 피가 튀는 장면 등이 강한 충격으로 남아 불안한 심리 상태를 줄곧 유지하며 자랐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잔상이 폭력, 살인으로 분출된 것이다. 병수의 모습에 강한 거리감을 느끼던 독자는 그의 유년기를 보고나서, 묻어두었던 자신의 유년기도 비로소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년기의 상처가 현재 자신의 모습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고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10대, 20대를 겨냥한 심리 치유 역할의 도서가 있는가 하면, 세대와 연령을 막론한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전 연령대의 마음을 위로하는 책도 있다. 호아킴 데 포사다(Joachim de Posada, ~2015) 작가의 『바보 빅터』(2011)는 꼬리표가 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빅터’는 학창 시절 잘못 측정된 IQ 검사 결과로 인해 평생을 ‘바보’라는 낙인이 붙은 채 살아간다. 그는 남들과 같이 연애를 꿈꾸는 등 평범한 사람이지만, ‘바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해 위축된 상태로 무려 17년의 세월을 보낸다. 어느 날 빅터는 거리의 표지판에 붙어 있는 수학 문제를 우연히 풀었다가 국내 최고의 회사에 입사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깨달아 갈 때쯤 그의 IQ가 잘못 측정되었으며, 실제 IQ는 천재 수준이었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는 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보라는 낙인에서 비롯된 주위의 편견어린 시선으로 인해 스스로를 바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바보 빅터』는 국제멘사협회(Mensa International) 회장을 지낸 천재 ‘빅터 세리브리아코프(Victor Serebriakoff)’가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누구나 한번쯤 주위의 시선과 편견이 두려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데, 바보(천재) 빅터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상처와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찬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전한다. 아픔을 이겨내고 본연의 자신을 찾은 빅터의 모습은 전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문학 치유적 책읽기’의 본질을 선사한다.

 

넘어져 깨진 무릎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상처가 곪아 언젠가는 썩게 된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유년기의 기억을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10대의 기억을 철없던 시절일 뿐이라는 이유로 그때의 상처를 묻어두면 상처가 문드러지며 결국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책읽기를 통한 주인공과의 동일시 또는 거리감 느끼기를 통해, 독자는 주인공과 같은 시기를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과거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현재 모습에 대한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꼭 자신과 연령대가 맞는 책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어떤 책이든 독자의 상황과 경험에 맞는 문학 치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과의 대화의 장’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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