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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水城)은 매홀(買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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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애오개역, 애오개역입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이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있는가? ‘애오개’는 ‘충정로’와 ‘공덕’ 사이에 있는 아현동의 지하철역이다. 지하철역의 이름은 참 다양한데, 보통 오랜 과거에 지역의 지리적 특성이나 특정 지형지물을 본 따 지어진 후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름이다. 그래서 지하철 노선도에는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순우리말을 찾는 재미가 상당하기도 하다. 그런데, ‘애오개’라는 이름은 따로 보면 참 낯설고 그 어원을 유추하기도 힘들다. 과연 애오개는 무슨 뜻일까?
애오개는 서대문네거리에서 충정로삼거리를 지나 아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만리현과 대현이라는 두 개의 큰 고개 중간에 있는 작은 고개이므로 과거 ‘아기고개’라는 의미의 ‘애고개’로 불렸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한자가 유입되며 지명의 한자어 표기가 이루어진 이후, 애고개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아현(兒峴, 아이 아, 고개 현)’ 또는 ‘아현(阿峴, 언덕 아, 고개 현)’으로 부르게 됐다. 즉 ‘애오개역’은 ‘아현’의 옛이름인 ‘애고개’에서 ‘ㄱ(기역)’발음이 약화된 형태로 지하철역 이름이 된 것이다. 
2019학년도 1학기 기자를 가장 괴롭게 한 전공과목은 단연 ‘국어사’다. 한자를 시작으로 각종 외래어의 유입에 따른 우리말의 양상은 매우 복잡다양했으며 언어의 변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역사적·정치적 배경이 개입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자의 이해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단어를 친숙한 단어와 연관지어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지명의 변화에 대해 한자로 쓰인 기록 중에는 우리말로 ‘수성(水城)은 매홀(買忽)이(었)다’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 즉, ‘수성’이었던 지역명이 더 옛날에는 ‘매홀’이라고 불렸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언어에 개입된 인위적인 변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은 지명을 한자어 훈독(한자를 뜻으로 읽음)으로 대폭 교체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고구려 시대 음독(한자를 음으로 읽음)되던 ‘매홀’은 신라 경덕왕 시대에 이르러 한자어를 훈독한 ‘수성’으로 불리게 됐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물’을 평생 ‘물’이라는 글자로 읽고 써 왔던 기자가 고구려 시대에 물을 ‘매(買)’라고 불렀다는 것을 이해하는 점이었다. 수성 이외에도 경덕왕 시대에 전격 교체된 여러 지명들이 예시로 쏟아졌고, 기자는 이 한자가 음독인지, 훈독인지 일일이 써가며 수업을 겨우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긴 역사 속에서 언어가 전혀 변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껏해야 훈민정음 창제를 전후하여 일부 어휘만 변하였을 뿐 현재 언어의 모습에서 과거의 양상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언어는 하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모습을 변화하고 있었다. 고구려 매홀에서 신라 수성으로 불렸던 그곳이 현재의 경기도 수원(水原)인 것처럼 말이다. 
언어의 유구한 역사를 서툴게나마 배우며, 기자는 언어의 기록과 표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과거 언어 추적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료의 부족이다.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매일 말하고 쓰는 언어의 기록이 먼 미래에는 우리 언어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말의 변천사와 그 변화의 가치를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매일 쓰는 우리말 언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사랑하는 것이 그 의무의 첫 발걸음일 것이다. 오늘도 기자는 홍대신문의 지면 속 언어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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