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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서: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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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상대적 가치

동양은 노자를 비롯해서 상대적인 사고에 기반을 두고 비어있는 것의 가치를 역설했고 서양은 절대적이고 수학적̇̇·논리적 기틀 위에 문화를 발전시켰다. 먼저 동양을 살펴보자.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가 중에 한 명인 공자는 최고의 가치를 “중용”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자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남녀유별을 지켜서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여자의 손을 잡더라도 구해주는 것이 좋겠습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상황에 맞추어서 행동하라고 말한다. 이처럼 덕(德)이라는 것은 주변의 여건에 따라서 다르다는 상대적인 가치관을 보여준다. 유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가치인 효(孝) 역시 부모와 자식이라는 두 개의 다른 존재 사이의 관계성 안에서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상황에 따라서 아들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마치 바둑돌이 위치에 따라서 그 힘이 달라지는 상대적 가치관과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십계명 같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있다. 동양의 상대적 가치관과 서양의 절대적 가치관의 대립은 이런 데서 극명히 나타난다. 

그 밖에도 동양은 비움에 긍정적인 가치를 둔다. 노자의 경우에는 그의 유명한 저서̒ ‘도덕경’̒̓̓̓̒̓̓̕ 11장에서 “그릇이 쓰임을 가지는 것은 찰흙이 단단히 굳어 흙의 성질은 없어지고 그릇의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이 방으로 쓰임이 있는 것은 창과 문이 있기 때문이다. 벽을 쌓고 창호를 뚫었기 때문에 방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물건의 유용한 기능은 비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비워진 상태를 부정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100%의 긍정적인 상태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이 잘 드러난 것이 도가사상을 반영한 일본의 ‘선의 정원’이다. 선의 정원은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정원이 아닌 비어있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예가 교토에 있는 ‘료안지’라는 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나무가 없고, 직사각형의 마당에 파도를 상징하는 줄무늬가 긁혀져 있는 모래사장위에 15개의 돌이 놓여 있다. 재미난 것은 이 정원을 디자인한 사람이 어느 각도에서 정원을 바라보든 14개의 돌만 보이고 나머지 1개는 숨겨지게 돌을 배치했다고 한다. 이렇듯 바라보는 사람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의미를 전달하는 1인칭 관점의 디자인이 동양적인 건축디자인의 특징이다. 

반면에 동시대에 만들어진 서양의 정원을 보면 직사각형, 원, 사선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에 맞추어서 정원이 구획되고 나무가 심겨져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어떤 생각에서 발전한 것일까? 그 배경을 살펴보면 노자, 공자, 석가모니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유클리드나 피타고라스 같은 서양의 사상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의 절대적 가치

서양의 사상가들은 절대 선을 추구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국민윤리에 따르면 플라톤은 ‘이데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데아라는 것은 절대적인 선을 뜻하는 가치로서 실존하지만, 동굴의 벽만을 바라보도록 손발이 묶인 인간은 그 동굴 벽에 비친 이데아의 그림자만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의 사상은 이처럼 절대성에 기반한다. 따라서 서양의 기독교에는 이데아와 비슷한 절대적인 선의 가치를 반영하는 천국이 있는 반면에 상대적인 가치관을 가진 동양의 이상향은 샹그릴라나 무릉도원으로 표현된다. 무릉도원은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서 어느 곳에 갔더니 신선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는 마을이다. 샹그릴라나 무릉도원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과 동일한 세상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데아의 경우처럼 서양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세상이 있고, 그 신적인 선(善)은 수학적인 방식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배경에는 피타고라스가 있다. 피타고라스는 과거에는 종교적인 지도자와 수학자를 겸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의 믿음은 수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한다는 데 있다. 재미난 것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는데, 소크라테스는 수학을 무시한 반면에 플라톤은 자신이 설립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사람의 입학조건으로 수학적 이해를 요구할 정도로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한 배경에는 플라톤이 젊어서 ‘큐레네’에서 테오도로스로부터 기하학을 배웠고, 이집트 지역을 여행하면서 당시에 피타고라스의 제자들과 친분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수학은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기하학의 기본이 유클리드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수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려고 한다. 그래서 서양의 많은 종교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기하학적인 공간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의 판테온이다. 이 건물은 평면과 단면에서 모두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몇 백 년 지나서 지어진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 건물은 좀 더 복잡한 형태로 3개의 원형 돔이 1개의 큰 돔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과 같이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건축에 반영이 되었다고 본다. 

이 같은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건축물에도 반영되면서 이슬람의 영향력은 더욱 더 증폭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던가. 아마도 이슬람은 예로부터 오랜 유목민족 생활로 소나 양의 숫자를 세면서 숫자에 대한 개념이 발달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동양과 서양 사이의 지리적인 위치에서 중계무역이 발달했을 것이고 당연히 수에 대한 개념이 다른 민족보다 앞섰을 것이다. 로마가 수도를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나서 지은 건축물이 하기아소피아였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천막이나 치면서 양을 치던 이슬람 사람들로서는 돌로 지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하기아소피아 성당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슬람의 사원은 모두 하기아소피아 성당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 로마가 서로마와 동로마로 쪼개지고, 서로마는 일찌감치 망하고 동로마만 오랫동안 살아남았다가 서기 1453년에 망하게 된다. 이때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발달된 수학을 경험한 동로마제국의 많은 학자들이 이탈리아반도로 망명을 가게 되어서 그 문화의 영향으로 피렌체를 비롯한 도시국가에 르네상스의 바람이 불게 된 것이다. 갈릴레오 같은 과학자도 이런 역사적인 흐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람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서양은 계속해서 수학의 발전이 있었고, 이러한 수학적 발전은 더 복잡한 수학적 형태의 건축물로 나타났다. 지금도 서양의 건축가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아주 복잡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얼핏 보기에는 다른 종류의 건축 같지만 그 배경에는 수학에 근거한 필연적인 디자인이라는 수천 년 된 전통이 깔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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