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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지음, 아카넷, 2017

<독어독문학과> 윤순식 초빙교수가 추천하는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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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문예이론가 G. 루카치는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꼽는 질문에 즉답으로 토마스 만을 꼽았다. 한마디로 토마스 만이 20세기 전반의 가장 위대한 독일 작가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192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의 마지막 장편소설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몇 가지 특이한 점을 지닌다. 집필 기간이 거의 50년에 가깝다는 점과 자전적인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특히 중요한 점은, 토마스 만의 다른 모든 작품은 주도면밀한 가공에 따라 완결되어 출간한 데 반해 마지막 작품인 이 작품은 미완의 단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작가의 삶의 전 과정을 같이 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재와 지성이 가장 균형 잡힌 형식으로 소설화된 이 작품은 토마스 만 문학의 핵심인 삶과 정신 사이의 조화 원칙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크룰의 사기꾼 행로는 어린 시절에 사탕을 훔쳐 먹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크룰은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부의 소개로 파리의 한 호텔에서 일하기 위해 파리로 여행하는 도중, 자신도 모르게 어느 부인의 보석을 갖게 된다. 여류작가이자 알자스 지방의 변기제조업자 부인인 우플레 부인의 보석이 든 귀중한 가죽 상자가 그의 트렁크에 우연히 섞여 들어온 것이다. 이후 파리 한 호텔의 엘리베이터 보이로서 일하던 그는 우플레 부인과 다시 만나 임시애인이 되고, 관세 통관 시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에 관해 그녀에게 털어놓는다. 열정에 타올라 크룰의 애무에 희열을 느끼는 이 여류작가는 그의 도둑질과 성적 능력을 인정하여 그에게 나머지 보석도 선물로 준다. 또한 이곳에서 크룰은 파리의 3류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베노스타 후작을 만나게 된다. 후작의 부모는 이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막기 위해 아들을 세계여행에 보내지만, 후작은 여배우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크룰과 자신의 신분을 바꾼다. 그렇게 크룰은 후작이 되어 리스본을 향해 여행하고, 실제 베노스타는 크룰로서 파리에 남는다.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리스본의 고생물학자 쿠쿡 교수와 대화를 나누게 된 크룰, 즉 가짜 베노스타 후작은 자신의 실존의 매우 특이한 정당성을 알게 된다.

펠릭스 크룰은 원칙을 가진 사기꾼이자, 자신의 정신적 독립성을 귀중하게 여기고 삶을 아이러니의 측면에서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과감하게 세상에 뛰어들지만 세상에 대해 시민적 방식으로는 봉사할 수 없었기에 세상이 자신에게 빠져들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를 통해 그가 순간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기꾼이 아니라, 소명을 자각하는 사기꾼, 즉, 예술을 위해 예술을 수행하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예술 또는 예술의 사명에 헌신하기 위해 삶에 불성실하며 고독에 빠졌다. 그러나 크룰은 고등사기 행각을 보다 높은 사명의 행위로 인식하며 그것을 쟁취한다. 이렇게 크룰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조화시키며, 토마스 만이 의도한 최종적 웃음인 아이러니적 웃음을 선사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평범한 사기꾼의 허욕(虛慾)에서 나온 사기 행각과 내면의 기록이 아니고, 인간의 본연의 상태 속에 깃든 병적인 성향에 대한-토마스 만이 말하는 예술가적 기질-치밀한 해부인 동시에 무겁고 어두웠던 삶과 예술이라는 가상세계가 청랑성을 통해 사라지며 조화가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600페이지의 분량이 다소 부담되긴 하지만,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가 우리처럼 작은 존재들에게 자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그 산술적인 양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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