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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사뿐 인류사를 거닌 ‘고양이’의 발자국을 따라

이른바 1000만 펫팸족(Pet+ Fam-ily) 시대. 지난 4월 26일(금) 발표된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반려동물 돌봄 시장 규모는 15억 6960만달러(약 1조 8182억원)로 나타났다. 최근 꾸준히 성장 중인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1%씩 성장세를 보였으며, 올해 수치는 8년 전인 2011년 결과의 약 2배 규모에 달한다. 이러한 국내 반려동물 관련 시장의 성장 가운데에는 ‘고양이’가 있다. 아주 오래전 야생동물이었던 고양이는 어느덧 애완동물의 의미를 넘어 반려의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고대부터 사랑받아온 고양이의 유구한 역사, 지금부터 살펴보자. 

 

고양이, 시대에 걸쳐 다양한 평가를 받다

 

 

야생동물이었던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산(産)의 야생 리비아고양이(Felissilvestris lybica)를 사육한 것이 전 세계에 퍼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집트인들이 곡물 창고를 습격한 쥐 떼들을 잡기 위해 천적인 고양이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와 관련된 여러 예술작품이 이 정설의 근거이지만, 당시 사육된 고양이들이 현 모든 반려묘의 조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인간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된 고양이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었다. 특히, 고양이 가축화가 발달한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고양이가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집트인들은 암컷 고양이를 음악과 풍요, 다산의 여신 ‘바스테트(Bastet)’로 숭배했다. 또 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은 세금을 감면해주기도 했으며, 고양이를 죽인 자는 사형에 처했다. 그렇다면 창고에 살던 가축, 고양이는 어떻게 신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농경 사회였던 고대 이집트는 급증하는 쥐로부터 곡식 창고를 지키기 위해 고양이가 필요했고, 이에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밤에 지정된 곳에 고양이를 데려다 놓고 다음날 아침에 찾아가게 했다. 그러나 고양이 주인들은 자신들의 고양이를 쉽게 내놓지 않았다. 이에 방법을 찾던 파라오는 그 해결책으로 고양이에게 반신인 바스테트의 지위를 부여했다. 당시의 관념에 따르면 살아 있는 신 ‘파라오’만이 반신 ‘고양이’를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쥐를 사냥하는 자신의 역할로 인해 인간에게 사랑받게 되었다. 이후 당시 고양이의 해외 반출이 불법이었음에도 페니키아 무역상들에 의해 고양이는 북아프리카, 남부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시대가 중세로 넘어가며 고양이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쁜 고양이’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모순적이게도 고양이의 ‘쥐를 잡는 특성’은 중세로 들어와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평소에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쥐를 잡을 때는 무섭게 돌변하는 고양이를 ‘신뢰할 수 없고 비윤리적인 존재’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고양이의 영화(榮華)는 단절되었고 고양이의 이미지는 더욱 하락해갔다. 고양이를 ‘마녀의 부하’라고 여기는 인식이 퍼져나간 것이다. 이와 관련해 1233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검은 고양이를 악마와 동일시하는 칙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18세기까지 고양이는 마녀사냥에 연루되어 많은 피해자들과 함께 학대당했다. 

어두운 시기를 지나 18세기 이후 고양이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의 『고양이 대학살』(1984)에 제시된 18세기 프랑스 수습생의 일지에는 파리 수습공들이 고용주의 부의 상징이었던 고양이를 학살한 사건이 나온다. 작가는 이 ‘고양이 학살’을 프랑스 대혁명 계급투쟁의 상징적 표출로 여기며 프랑스 혁명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고양이가 근대 저항의 제물이 된 것이다.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덧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고양이는 모순적이게도 20세기에 들어서며 도둑고양이 이미지로 민중과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양이,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고양이는 여러 예술 분야에서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대표적 문학작품 중 하나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검은 고양이』(1843) 속 ‘두 번째 고양이’는 죽은 첫 번째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영혼이 덧씌워져 한 인간을 몰락시키는 존재로 나온다. 이는 서양에서 ‘검은 고양이’를 망자와 산자를 이어주는 영매로 간주해온 미신을 보여준다.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미술사 속에도 많은 고양이를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서양미술사에서는 시대에 따른 고양이의 역할과 가치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일찍부터 고양이와 친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벽화, 미라 등을 통해 고양이를 종교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현대로 넘어온 20세기 이후의 미술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양이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양이가 담긴 작업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항 등으로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였던 20세기 현대인들에게 고양이는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38)의 <마르셀라>(1910)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의 <고양이와 여자>(1921)에서 잘 나타난다.  

그 외에도 음악 분야에서 고양이는 특유의 발걸음과 행동 패턴으로 영감의 존재가 되었다. 프레데릭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건반 위를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화려한 대왈츠 바장조>(1838)를 작곡했는데, 이는 경쾌하고 화려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해당하는 3곡 중 제3곡은 ‘고양이의 왈츠’라고도 불린다. 한편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산업에서 고양이는 방해자나 심술의 기질을 가진 캐릭터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트위티를 쫓는 ‘실베스터’, 스머프를 괴롭히는 가가멜의 고양이 ‘아즈라엘’, 톰과 제리의 ‘톰’이 대표적 예이다. 이렇듯 여러 예술 분야에서 고양이는 다양한 매력과 특성을 통해 영감을 주는 ‘황금 소재’가 되었다.

 

고양이를 향한 관심, 그 이면의 어두운 시선

 

 

애묘인이 많아지며 고양이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어느덧 사람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매체를 통해 애완묘의 일상을 사회와 활발히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팔로워(follower)를 얻은 고양이들은 ‘SNS 스타’가 되었다. 이러한 세태에 맞춰 강아지와는 다른 고양이의 특성을 활용한 전문 산업 등장하면서 고양이 관련 산업의 규모가 확장되기도 했다. 산업은 애완용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바, 고양이 호텔, 고양이 카페 등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도시의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른바 ‘캣맘, 캣대디’ 인구 증가에 따라 고양이 사료 시장 또한 성장했다. 

그러나 밝음의 이면에는 어둠이 있듯, 애완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윤리 의식의 부족으로 고양이를 학대 및 살해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함께 살던 고양이를 책임지지 않고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로 인해 유기묘, 즉 ‘길고양이’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8년 4월 발표한 「2017년 동물보호와 복지 관리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구조된 유실·유기동물의 수는 10만 2593마리로 전년보다 14.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유기동물 수치는 동물 종류별로는 개(7만 4300여마리)가 전체의 70%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고양이(2만 7100여마리), 기타(1200마리)가 뒤를 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현 동물보호법을 원인으로 뽑았다. 한편, 길고양이에 대한 논의는 그에 대한 상반된 시선으로 인한 양측의 충돌을 야기했다. 갈 곳 없는 길고양이를 돕고 기르고자 하는 관점과 위생, 알레르기 등으로 인해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관점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람과 길고양이의 공존을 위한다는 목적 아래 행해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은 길고양이의 개체 수 감소를 위해 시행했던 기존의 살처분과 안락사보다 인도적인 방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길고양이를 향한 또 다른 학대로 여기는 관점도 존재한다. 고양이를 향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신으로 여겨지다 다시 부정적 존재로 여겨졌던 고양이는 어느덧 다시 신의 위치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애정 이면에는 식어버린 싸늘한 시선 또한 공존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지만, 인간과 고양이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서는 우선 단순한 관심을 가지고 고양이를 분양한 후 버리는 행위 등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에 의한 생명의 소비 먼저 사라져야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이동섭, 『동물로 본 서양미술사』, 네이버캐스트, 2015~2016.

로버트 단턴, 조한욱 역,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지성사, 1996.

 

 

조수연 기자  suyeon9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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