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우리는 ‘아바타 세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인터넷 문화를 접했던 20~30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미니홈피 아바타를 꾸며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토리(사이버 화폐의 명칭)를 모아 내 아바타의 옷을 사고, 아바타가 사는 공간을 꾸며줄 각종 가구와 장식을 사는 등 마치 ‘또 다른 나’를 키우는 듯한 재미에 흠뻑 빠졌었다. 이러한 아바타에 대한 경험과 예전에 화제가 되었던 모 정치인의 ‘제가 아바타입니까?’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아바타라는 단어는 우리 삶 속에 ‘누군가의 분신(分身)’이라는 의미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아바타라는 말이 지금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지는 의외로 30년이 조금 넘지 않았다. 과연 아바타는 원래 무슨 의미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아바타가 되었는지, 아바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알아보도록 하자. 

 

아바타, 신(神)의 화신(化身)에서 개인의 분신(分身)이 되다

▲힌두교의 신 비슈누(Vishnu)와 10신(神)의 아바타
▲힌두교의 신 비슈누(Vishnu)와 10신(神)의 아바타

아바타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된 말로, 주로 지상에 강림한 신이 사람 또는 동물의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인 화신(化身)을 뜻한다. 이외에도 ‘분신(分身)’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바타(Avatar)’가 그 어원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아바타라는 말을 번역할 때 눈여겨봐야 할 점은 아바타라는 말이 산스크리트어로는 ‘화신’을 뜻함에도 영어로 번역될 때에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으로 번역되거나 혹은 원어 그대로 화신(Avatar)이라고 사용되는 경우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문화권인 힌두교의 신과 영어 문화권인 기독교의 신 예수의 속성이 가지는 차이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힌두교의 신들은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형상만 인간의 모습일 뿐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들의 능력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수는 인간과 똑같은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고통을 받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여겨지며, 이러한 신을 성육신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화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 구분을 위해 일반적으로는 Incarnation(성육신)으로 번역되지만, ‘신의 화신’이라는 의미가 유지되는 경우에는 원어를 존중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화신’과 ‘성육신’을 구분하는 각 어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이렇게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던 ‘아바타’라는 단어는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지금의 아바타라는 개념은 1985년 미국의 비디오 게임인 <하비타트(Habitat)>에서 최초로 도입되었으며, 해당 게임은 현대 아바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 사용자의 분신’이라는 틀을 개척했다. 국내에는 1997년 3월 PC통신 업체 ‘하이텔’에서 제공한 <유리도시>라는 게임의 채팅 시스템에 아바타가 도입된 것이 시초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 각종 커뮤니티 및 포털 사이트, 온라인 게임 시장의 확대와 함께 아바타가 대유행하였고,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유료 결제 아이템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02년에는 아바타 관련 사이버 시장의 규모가 연간 약 5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특히 주 수요층이었던 10대를 겨냥하여 학습 프로그램 내에 아바타를 등장시켜 학습 성취도가 높아지면 아바타가 그에 따라 성장하도록 만드는 서비스까지 등장했을 정도였으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아바타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사이버 공간 사용자의 분신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크게 퇴색되고 상업적 용도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아바타, 자유의지와 현실감을 얻어 새롭게 태어나다

비록 인터넷 시대 초창기에 전성기를 누리던 아바타의 모습은 사라진 지 꽤 되었지만, 아바타의 의미를 계승한 시스템은 여전히 온라인 게임 등지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익숙한 예를 들자면 RPG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의 캐릭터 스킨을 들 수 있다. 또한 아바타 관련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게 아바타 내에 자유의지를 부여하여 아바타가 진짜 삶을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임이 등장했는데, 이 대표적 예시가 맥시스(MAXIS) 사에서 개발한 <심즈 시리즈(2000~)>다. 심즈 시리즈는 기존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2D 그래픽에서 벗어나 3D 그래픽으로 입체감과 현실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또한 이전의 아바타 시스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자유의지’라는 요소를 넣음으로써 사용자가 굳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아바타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하여 아바타에 생동감과 주체성을 부여했다. 이전에 개발되었던 대부분의 아바타는 게임 운영사 혹은 웹사이트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기성품(Ready-made)을 이용하다 보니 이용자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심즈 시리즈는 옷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몸의 체형, 심지어 눈, 코, 입 등 신체의 작은 일부분까지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가 원하는 아바타의 모습을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심즈 시리즈는 아바타에 큰 혁신을 불러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2013년 9월 기준 총 1억 75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아바타와 ‘진짜’ 인생에 대하여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만큼 영화 <아바타(2009)>에 대한 이야기 역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내에서 인류는 먼 미래인 2150년, 외계 행성의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행성을 개발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행성의 원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 원주민과 인간의 DNA를 적절히 섞은 아바타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영화의 주인공도 아바타의 정신에 접속해 아바타를 조종하는 인간들 중 하나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점점 원주민들에게 동화되어 결말에는 인간을 배신하고 원주민들 편에서 싸우게 되고, 급기야는 진짜 원주민이 되어버린다. 결국 인간이라는 원형은 사라지고 아바타만이 남은 셈이다. 영화의 주제는 ‘인간의 욕심으로 일어난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이지만, 주인공의 아바타화는 관객들을 ‘아바타로서의 삶을 가짜 인생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주제에 도달하게 한다. 주인공이 아바타를 조종하게 된 계기는 수동적이었을지언정, 마지막에는 자신의 의지로 아바타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아바타는 가짜이고, 현실의 모습은 진짜’라는 고정관념이다. 사실 현실 속 우리의 삶도 알고 보면 타인의 모방에 불과한 것들이 매우 많다. 당장 어린아이가 어른들의 특정 행동을 따라한다거나, 책을 읽고 이를 참고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모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그렇다고 남을 그대로 따라한 가짜로만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방의 매개체가 되는 원형 자체에 엄연히 개인 혹은 주체의 고유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을 거듭하다 보면 고유한 것과 모방한 것을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일부 철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기원에 대한 향수가 표현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 B.C 428-B.C 348)이 주창한 ‘이데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개체들은 이데아를 모방하고자 노력하며, 우리는 그 모방한 것과 이데아를 구분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앞에서 언급되었듯 기존의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모방에 대한 욕구만이 남고 구분의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한 ‘주체의 죽음’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아바타는 자신의 모방 욕구를 표현하는 통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주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바타는 어디까지나 주체의 ‘표현물’일 뿐, 시시때때로 변하는 주체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멋있고 꾸미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아바타를 이용하기 보다는 한 번쯤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아바타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