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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 『소나기』(1953)

‘짧은 시간에 온 세상을 적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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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어린이날이었다. 기자는 취재 차 이른 아침 전철을 타고 양평으로 향했다. 전철의 사람들은 모두 오랜만에 돌아온 휴일을 즐겁게 맞이하는 듯 보였다. 간만의 소풍에 설레하는 아이들 옆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기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도착하기까지는 약 두 시간 반, 그동안 이번 호에 실릴 작품 『소나기』(1953)를 읽어보았다. 문학을 처음 접했을 어린 시절, 모든 아이들은 『소나기』(1953)를 읽었을 터다. 성인이 된 지금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지난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순수함’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깨달았다. 작품 속 소녀와 소년의 순수한 사랑은 기자의 코끝을 시리게 했다. 그들의 사랑을 회상하던 기자는, 어느새 양평에 위치한 소나기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자의 기나긴 양평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개울가에서 소녀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녀는 개울에 손을 잠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전철에서 내린 뒤 기자의 눈앞에 펼쳐진 양평의 풍경은 따스한 봄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민들레 씨로 가득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역 근처는 놀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기자는 그 사이를 헤집고 뜨거운 햇살 아래, 카메라 한 대만을 쥔 채 홀로 소나기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소나기』(1953)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장소들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마을 초입에 있는 개울가였다. 작품 속에서 소년은 소녀를 개울가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서울에서 온 소녀가 그곳에서 물장난을 치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을 소년의 모습이 기자에 눈에 선명히 떠올랐다. 기자는 좋아하던 친구를 교실에서 남몰래 훔쳐보던 기자의 어릴 적 추억을 함께 떠올리며, 그 기억을 소년과 소녀 옆에 살포시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났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 근데 이 양산같이 생간 노란 꽃은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옴큼을 꺾어 싱싱한 꽃가지를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봄이 찾아온 양평은 그야말로 꽃들의 향연이었다. 어디를 바라보던 꽃이 펴있었고,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들꽃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소나기 마을에선 소년과 소녀가 보았을 보랏빛의 도라지꽃도 찾을 수 있었다. 햇살에 비쳐 보라색을 더욱 뽐내던 도라지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소년의 순수한 사랑이 기자에게 더욱 다가오는 것 같았다. 기자에게도 꽃을 꺾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네곤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소녀가 들어선 곳도 비가 새기 시작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은 수수밭 쪽으로 달려간다. 세워 놓은 수숫단 속을 비집어 보니, 옆의 수숫단을 날라다 덧 세운다. 다시 속을 비집어 보더니 소녀 쪽을 향해 손짓을 한다. 수숫단 속은 어둡고 좁았지만, 그래도 비는 새지 않았다. 

 

소년과 소녀가 꽃놀이를 하는 동안 먹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 내렸다. 소년은 수숫단을 덧세워 그곳에 소녀를 앉혔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소년은 서서 비를 맞아야만 했다. 기자가 있던 소나기 마을엔 이들이 잠시 비를 피했을 수숫단이 재현되어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기자도 한 번 그곳에 들어가 앉아 보았다. 기자의 시선엔 산과 들, 꽃 그리고 그 옆을 지나쳐가는 화목한 가족들이 머물렀다. 한없이 평화로운 낮이었지만, 기자의 마음 한구석은 쓸쓸함으로 가득 찼다. 홀로 이 마을에 와서일까, 아니면 소녀를 향한 소년의 예쁜 마음이 기자를 외롭게 한 것일까.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기자는 이제 소나기 마을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전에 없이 소녀의 까만 눈에 쓸쓸한 빛이 떠돌았다.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자 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것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소녀는 서울에서 사업이 실패해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 집마저 팔게 되어 또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 소년은 소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날 밤,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밭으로 달려간다. 그리고선 주머니 속에 호두 송이를 한 아름 담는다. 호두 송이를 맨손으로 만졌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동네에서 제일간다는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소녀에게 맛 보여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테니까. 

 

“윤 초시댁두 말이 아니어. 그 많던 논밭을 다 팔아 버리구…,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중손이라곤 기집애 그애 하나뿐이었지요?”

“글세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두 변변히 못 써 봤다드군. 지금 같애서는 윤 초시네두 대가 끊긴 셈이지. …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은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구…”

 

안타깝게도 소설은 소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위 구절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어찌하여 소녀는 자신이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 묻어 달라 했을까. 아마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소년의 등에 업힌 소녀는 자신의 옷에 묻은 그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비록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소년과의 추억을 간직하려 한 것이 아닐까. 기자는 어릴 적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소나기’일까 생각해보았다. 그 당시엔 단순히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맞았기 때문일 것이라 여겼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소나기라는 특성은 소녀와 매우 비슷하다. 소나기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온 세상을 흠뻑 적시곤 한다. 소년에게 소녀도 소나기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아주 짧은 시간만을 소년의 곁에 머물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소년에게 매우 커다란 존재였을 것이다. 소설의 끝에선 소녀의 죽음 이후의 소년을 그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은 아마도 소나기와 같은 소녀와의 추억들을, 그 찰나의 순간들을 평생 그리워할 것이란 걸.

기자는 그들의 순수하지만 씁쓸한 사랑 이야기를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 시각 버스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치고 있었다. 기자의 귀엔 서울에서 도통 듣기 힘든 새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언제나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늘어서 있는 고층 빌딩들 사이를 지나가던 서울에서의 일상과는 매우 상반된 감각이었다. 그렇게 기자는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에 한없이 취해 창문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저물며 논과 밭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기자는 변해가는 색들을 자세히 지켜보고자 무작정 버스에서 내렸다. 처음엔 붉게, 그 후엔 노란빛, 보랏빛으로 변해가는 이 세상의 색들에 숨을 죽이고 그저 지켜보았다. 시간이 더욱 지날수록 이 아름다운 색들은 이내 어두운 검정으로 칠해질 것을 알았기에 기자는 떼기 힘든 발걸음을 재촉해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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