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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속의 스승

몇 년 전 ‘여왕의 교실’이라는, 교육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원작이 일본드라마였기에 줄거리의 파격성에 비해 화제성은 낮았지만 경쟁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학교현장은 오늘날 교육과 스승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드라마 속에 등장한 산들초 6학년 3반 마여진 교사는 억압적이다. 매주 쪽지 시험을 보고 석차순으로 성적을 공개한다. 학생들의 개인 신상 정보를 폭로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허상을 깨게 하고, 왕따를 당하는 학생에게 교실의 스파이 노릇을 시키는가 하면, 부당하게 오해를 받는 학생이 있어도 모르는 척한다. 학생들을 존중하는 동료 신임교사의 열의를 비웃고, 무능함을 꼬집는다. 반면 학부모에게는 성적을 올려주고 미래를 준비시키는 믿음직한 교사로 인정받는다. 비정한 현실논리들이 여과없이 교실 속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은 교사의 권위에 눌려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궁지에 몰린 아이들은 어른들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기적이고 잔인한 배신으로 스스로 살아남고자 한다. 서로를 할퀴고 상처를 주던 아이들이 교사의 억압 속에서 결국에는 서로 힘을 모으게 되고 서로를 다시 친구로 보게 된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담임의 전횡에 맞서 새롭게 자신들의 질서를 찾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담임이 의도한 것이었음을 알아가는 대목은 이 드라마의 반전이다. 

극히 비상식적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이끄는 한 교사의 복잡한 내면을 통해 ‘스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동양과 서양의 전통교육에서 스승은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였다. 인간으로서의 도를 향해 가는 길을 이끌어주는 사람들이었으며, 학문과 도덕적 교양의 세계에 입문해있는 사람들로서 그 삶과 지적 태도를 통해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스승의 눈높이를 따르는 것이 교육이었다. 20세기 이후 대중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지적 도덕적 ‘모범’으로서보다는 성장발달의 주체인 학습자를 ‘조력’하는 역할이 강조되어온 경향이 있다. 교육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교육에서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교육으로 강조점이 변화해온 것이다. 이렇게 시대가 변화했고 스승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는 ‘존사’의 전통은 희석되어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교육자에게 단순한 지식전달 이상의 인격적 귀감이나 지도를 기대한다. ‘스승’이라는 용어를 통해 인생을 이끌어주고 역사, 문화, 세계와 매개가 되어 줄 교육자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육’을 둘러싼 상식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교육에 소위 ‘시장 논리’가 들어오면서 교육의 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구매와 판매의 거래행위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가 낸 등록금(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적반하장으로) 훈계하는 사람’이라는 불만 섞인 ‘소비자주권적’ 교육 담론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교육의 공적 성격과 재원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 등 보다 복잡한 배경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런 교육자관이 기존의 ‘스승’관과 크게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교육은 역사․문화를 매개로 하여 사회적 성장 발달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여왕의 교실’의 역설은 ‘거꾸로 된’ 교육 속에서 비로소 참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비인격적 경쟁과 억압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협력의 필요성과 주체의식을 형성하고 교사의 숨겨진 가르침을 파악해나가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드라마적 감동이 있으면서도 그 역설로 인해 개운하지 않은 잔상을 남기기도 한다. 

‘숨겨진’ 교육의도가 아니라 ‘드러난’ 가르침을 통해 미래역량으로 필요한 주체성과 협력의식을 키워줄 수는 없을까. 시험과 경쟁 그리고 선발 속에서 억압된 개개인들의 삶의 의미를 다양하게 실현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왕이라는 ‘가면’을 벗고 미래 주체들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실 속에서 앎과 삶을 이끄는 ‘스승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교육자들이 스스로 능동적이고 성찰적으로 그러한 소임을 고민하고, 사회도 그 역할을 신뢰할 때 교육의 미래가 더 밝아지리라 생각한다. 사회가 비트는 교실의 모습을 다시 비틀어 바로잡을 수 있는 교육과 스승의 오래된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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