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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초콜릿 속으로 퐁당!

“오, 성스러운 초콜릿이여! 사람들은 무릎 꿇고 갈고 있고, 두 손 모아 당신을 부수고 있구나. 그리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신을 마시네.” 

 

스페인의 한 시인이 쓴 초콜릿을 찬양하는 시다. 이 시의 묘사처럼 초콜릿은 아주 오래전부터 성스럽고 귀하게 여겨진 음식이다. 초콜릿의 원산지인 남미의 마야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를 보면 카카오나무에 옥수수 신의 머리가 달린 그림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마야인들이 초콜릿을 주식인 옥수수만큼이나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이렇듯 초콜릿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음식일뿐더러, 사랑의 징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인 사랑의 징표로 여겨질 만큼 달콤한 초콜릿 속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초콜릿, 그 달콤함의 유래와 역사

본래 초콜릿은 ‘먹는 음식’이 아닌 ‘마시는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수많은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동안 초콜릿 제조에 노력을 쏟았지만, 수천 년 동안이나 인류 곁에 있던 ‘카카오’가 음식이 된 역사는 겨우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 시작은 멕시코의 원주민인 마야족과 아즈텍족이 카카오 콩으로 만든 초콜릿만의 특징적인 색깔과 독특한 쓴맛, 향을 내는 음료 ‘초콜라틀(Chocolat)’이였다. 당시 멕시코 원주민들 사이에서 카카오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에게 카카오 열매는 사람의 심장을 상징했고, 초콜릿은 인간의 혈액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또 아즈텍 부족 사이에서는 한 공주가 왕국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때 흐른 피에서 자란 것이 바로 카카오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초콜라틀(Chocolat)은 그녀의 고통처럼 쓴 맛이 나고, 그녀의 피만큼 진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처럼 이들 부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중에는 카카오가 자주 등장하며, 자연스럽게 카카오와 초콜릿은 제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또한 초콜릿은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라는 나무에 열리는 카카오 콩으로 만드는데 ‘테오브로마(Theobroma)’는 그리스 어로 ‘신들의 음식’이란 뜻이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원래 초콜릿이 고대의 중앙아메리카에서 부족장이나 성직자처럼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 마실 수 있는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에 카카오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며 초기에는 음료나 약으로 사용되었다. 한 때는 화폐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카카오 10알로 토끼 한 마리를, 100알로는 노예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는 스페인의 황제 카를 5세에게 멕시코에 원정을 갔던 신하가 보고한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카카오 콩은 그 가치 때문에 화폐로 활용하거나 피로회복 음료 또는 영양제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너도 나도 초콜릿 홀릭

한편 초콜릿이 처음 유럽에 발을 들이게 된 시기는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 여행 도중 카카오 열매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스페인의 헤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였다. 그가 남미를 탐험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가 카카오 열매를 소개하면서부터 초콜릿 음료가 본격적으로 유럽에 퍼지게 되었으며, 이 음료는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화려하고 정교해졌다. 이렇게 화려해진 초콜릿은 귀족들의 아침 식사로 애용되는 등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그 후 250여 년 동안 초콜릿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유럽 전역에서도 카카오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카카오 수확을 위해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노예제도에 의지했다는 어두운 역사를 포함한다. 늘어난 카카오의 수요는 곧 카카오 재배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고, 유럽인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던 인디오와 흑인들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로 강제로 끌려온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은 카카오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결국 17, 18세기에 유럽인들이 마신 초콜릿은 대부분 노동 착취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선 초콜릿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그 유래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음식 시중을 들었던 손택이라는 여인이 초콜릿을 황제에게 진상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초콜릿이 소개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초기에 우리나라에서 초콜릿은 마냥 달콤하기만 한 간식은 아니었다. 개화기에 ‘저고령당’이라고 불렸던 초콜릿은 서양문물에 반대하는 보수세력에 의해 소의 피를 흑설탕에 갠 오랑캐의 음식으로 매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대받던 초콜릿이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였다. 이 시기에 초콜릿은 미군의 구호물자 중 하나로 암거래되었고, 정식으로 수입된 초콜릿은 일부 부유층의 사람들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으로 대접받았다. 귀한 대접을 받던 초콜릿이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는 사랑을 상징하고,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는 등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연인의 사랑부터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기까지

초콜릿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단연 ‘밸런타인데이(Valentine Day)’다. 과연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밸런타인데이와 관련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사제 발렌티누스의 일화이다. BC 270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 2세는 원정에 징집된 병사들이 출병 직전 결혼을 하게 되면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결혼을 금지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안타까워했던 발렌티누스 사제는 이들 사이의 결혼을 몰래 허락하고 주례를 섰다가 270년 2월 14일에 사형을 당했다. 이후부터 밸런타인데이는 로마 황제에 반대했던 사제 발렌티누스의 이름을 따 그를 기리는 날이 되었다. 또한 1477년 2월 14일에 영국의 시골 처녀인 마거리 부르스가 몇 년째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2월 14일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초콜릿을 주는 행위는 사랑을 담아 마음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 속에서 초콜릿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초콜릿은 그 자체로 꿈과 희망, 사랑의 달콤함과 씁쓸함까지 담고 있다. 초콜릿이 지닌 다양한 상징들은 여러 작품 속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초콜릿 음료가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았던 17, 18세기의 정물화 속 초콜릿은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당시 그림에는 오늘날 구경하기 힘든 초콜릿 주전자나 만세리나 같은 아름다운 초콜릿 잔, 몰리니요(초콜릿 거품을 내는 기구) 등과 함께 초콜릿을 마시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화가 장 에티엔 리오타르(Jean Etienne Liotard)(1702~1789)의 〈초콜릿을 끓여가는 아름다운 시녀〉(1743)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리오타르는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비엔나에 초대되었는데, 그는 방문기간 동안 매일 아침 맛있고 따뜻한 초콜릿을 날라주는 아름다운 시녀를 그림에 표현했다. 또한, 작가는 〈아침 식사〉라는 이름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는데, 여기에서 아침 식사란 바로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을 의미한다. 1790년 모차르트가 쓴 오페라 〈코지 판 투데(Cosi Fan Tutte, 여자는 다 그런 것)〉의 1막에서는 하녀인 데스피나가 쟁반에 컵과 초콜릿 주전자를 가지고 등장하면서 초콜릿을 마실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이는 귀족들만 즐기던 음식이었기 때문에 초콜릿의 냄새만 맡으며 음료를 즐기지 못하고 열심히 거품을 내야만 했던 하녀들의 당시 모습을 보여준다.

초콜릿의 문학적 묘사의 1인자인 로얄드 달((Roald Dahl, 1916~1990)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조니 뎁 주연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서 우리는 원 없이 초콜릿을 간접체험 할 수 있다. 겨우 초콜릿 하나 살 돈도 여의치 않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찰리에게 초콜릿은 온 가족과 나눠 먹는 사랑의 매개물이다. 그러나 찰리와 함께 황금 티켓에 당첨된 다른 아이들에게 초콜릿은 원초적 충동과 욕망을 상징하는 달콤함을 상징한다. 영화의 말미에 나오는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이라는 나레이션은 초콜릿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삶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렇듯 우리 곁에 수천년 간 존재해오던 시간 동안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인 초콜릿은 소수만 먹을 수 있던 시절을 지나 모두가 즐기는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초콜릿의 달콤함과 씁쓸함 양면의 맛에는 한 부족의 전통과 전설이, 귀족들의 사치가, 또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며 한편으로는 연인 간의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를 곱씹어보면서, 초콜릿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채원 기자  won623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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