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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물꼬를 트러 가는 길 위에서공감으로 분단의 고통을 넘어설 때, 『공동경비구역 JSA』(2000)

2017년,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한과 북한은 전쟁 직전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2018년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측과의 대화에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응하며 대화의 불꽃이 살아났다. 같은 해 4월 27일(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만나 1차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날 회담에서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은 ‘도보 다리’ 회담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도보 다리에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협의의 결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남북 고위급 회담 조속히 개최 △적대적 군사 행위 중지 등의 내용이 담긴 ‘판문점 선언’이 천명되었다. 이후 두 정상은 두 차례 더 만나며 남과 북 사이 공감의 폭을 넓히고자 노력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도 남북의 네 인물이 갈등과 오해 속에 있다가 대화를 통해 상호 공감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모습이 위와 비슷하다. 기자는 부모님과 함께 판문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임진각 일대를 둘러보며 영화 속 인물들이 걸어갔던, ‘공감의 길’을 따라가 보았다.

 

수혁: 가까이 오지 말랬지! 한 발 더 가까이 오면, 나 진짜 발 떼어 버린다

(경필과 우진, 그 말을 듣고 도망간다)

수혁: 야, 개XX들아! 그냥 가면 어떡해?

경필: 네가 가라 하지 안캇어?

수혁:…. 살려주세요

 

임진각에 도착한 기자는 관광로를 따라가다 한 팻말을 보게 되었다. 임진각에서 개성이 22km, 서울은 53km 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리숙한 얼굴로 팻말을 바라보는 기자에게 임진각의 안내를 맡으신 선생님께서 말을 걸었다. “서울보다 개성이 여기서 더 가깝죠?” 수혁이 순찰 중 밟은 지뢰의 해제를 부탁하기 위해 북한 경비병에게 다가간 것처럼, 기자는 북한 땅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어른들이 가지 말란 곳을 간 이후 느끼는 죄책감과 신세계를 본 듯한 신기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수혁은 경필과 우진이 해제해준 지뢰를 뒤로 한 채 남측 경비 초소로 복귀한다. 수혁은 초소로 향하며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까.

 

수혁: 지난번엔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형한테 되게 미안했어요. 형이라 불러도 되죠? 전 형 있는 게 소원이거든요.

경필: 맨날 동지, 동지 소리만 듣다가 형 그리니까 좋구나야

 

기자는 버스를 타고 민간인 통제구역 내부로 들어갔다. 통일대교를 앞에 두고 헌병 완장을 찬 군인이 신분증 검사를 하니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검사가 무사히 끝나고, 버스는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버스는 누구나 뉴스에서 본 적 있을 법한 통일대교를 통과해 여러 바리케이드를 거쳐 목적지로 갔다. 기자는 도라산역을 둘러보다 평양행 승강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당연히 이곳을 오가는 기차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자는 북측을 오가며 그쪽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영화 속 수혁은 남측 초소에서 편지를 써 돌돌 말아 북측 경비 초소로 던졌고, 경필과 우진은 그것을 찾아 읽고 답장을 해주었다. 이렇게 그들은 편지로 이념을 넘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기자는 역을 나오며 다음의 문구를 보게 되었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어느 날 밤, 수혁은 우진의 편지를 읽고 비밀리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북쪽 초소로 가게 된다. 그가 북쪽으로 간 첫 번째 남쪽 경비병이 된 셈이다.

 

경필: 근데 광석인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야, 야 광석이를 위해서 딱 1잔만 하자

(중략)

경필: 기태까진 어쩔 수 없이 이 쪼꼬파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버스는 기자를 태운 채 제3땅굴로 향했다. 이 땅굴은 1970년대 북한의 남침 땅굴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 발견 당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관계자는 기자에게 그다지 높지 않은 땅굴이 아니기에 안전모가 없으면 크게 다친다는 주의를 시켰다. 그렇게 기자는 안전모를 쓴 채 땅굴 깊숙이 들어갔다. 한편 수혁과 만난 경필과 우진은 당황해하며, 우진이 쓴 장난스러운 편지에 수혁이 정말로 건너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들은 모두의 눈을 피해 초소 내 지하 벙커에서 남한의 90년대 유명 가수인 김광석의 노래를 같이 듣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날이 반복되고, 수혁은 최전방에서의 생활에 외로워하던 남성식 일병도 북쪽 초소로 데려온다. 남 일병을 포함한 넷은 ‘쪼꼬 파이’(남한의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닭싸움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기자는 그들이 맛있게 먹었던 초코파이를 입에 문 채, 지하 300m 경사로를 힘겹게 내려가며 군사분계선까지 오게 되었다. 군사분계선 표지를 바라보며, 기자의 아버지께선 당신이 군 복무를 하실 땐 남측의 소수 군인만 출입할 수 있었던 이곳에 현재 남측 민간인도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이 놀랍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아버지는 제3땅굴에 북측 민간인들도 자유롭게 와서 영화처럼 김광석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내비치셨다. 

 

수혁: 시X.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우린 모두 적이야!

(중략)

경필: 내가 남(쪽) 초소에서 그랬다면 내가 먼저 쐈을 겁니다

 

기자는 버스 투어를 마치고, 다시 임진각으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한 낡은 기관차가 놓여있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소개된 바 있는 이 기차의 정확한 이름은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다. 차체에는 총알의 상흔이 여러 군데 박혀 있다.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이 기차를 보니 수혁이 자연스레 생각났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수혁과 경필 등 네 인물이 있는 벙커에 갑작스레 북측 상사가 들이닥치며 비극은 시작된다. 수혁이 북측 상사에게 총부리를 겨누자, 경필은 상사와 수혁의 갈등을 중재하려 한다. 하지만 수혁이 상사에게 총을 쏘며 일은 더 커지게 된다. 성식은 자신과 수혁을 보호하기 위해 친구로서 지냈던 우진에게 총을 난사한다. 성식에게는 우진이 비록 친구였으나, 적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크게 각인돼 있었다는 것이다. 사건 이후, 성식과 수혁은 죄책감 속에 자살하게 되고, 경필은 군을 떠나 개성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병원에서 조사관의 물음에 자신도 같은 상황이라면 성식과 같은 행동을 했을 거라며, 그의 난사 행위를 이해한다. 이를 통해 기자는 네 인물이 이념을 넘어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 년 세월 (중략)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게 불러 봅니다’

 

기자는 임진각을 떠나며  망향의 탑에 새겨진 <잃어버린 삼십 년> 노래 가사를 곱씹어 보았다. 이산가족들이 긴 시간 느꼈을 그리움의 감정이 가사를 통해 깊이 느껴졌다. 이들의 그리움이 언제쯤 만남의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을까. 서울로 오면서 기자는 유독 총알이 박힌 증기기관차가 생각났다.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옆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놓여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자 옆에 계셨던 어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혼잣말이 떠올랐다. 그는 이 기관차에 총탄이 박혀 있고 낡았지만, 통일되어 종착지인 의주(현 신의주)까지 운행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낡은 증기기관차가 분단을 넘어 통일을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도 평화의 시대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경필이 보여줬던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남북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더불어 그때쯤이면, 임진각 너머 보이는 남북을 경계 짓는 철조망도 사라지지 않을까. 

박주형 기자  timpark091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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