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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쓴 이야기, 목적 재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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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항상 절차나 형식에 먹히곤 한다. 절차는 공식적인 권한이나 권력을 부여하고 부여받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 절차가 적은 곳이 있다. 바로 매체 공간이다. 공적 의무를 이행하는 국가기관들보다 예술작품이나 미디어 등의 매체는 그 제작과 생산에 비교적 적은 동의를 필요로 한다. 곧 이들의 생산 절차는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그 덕분에 권한과 권리도 적다. 다수와 합의된 실무의 이행, 혹은 기능이나 절차에 대한 충족이 아닌 그저 판단이며 시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나 언론은 세상을 이끌어가기보단 그저 바라보고, 이를 표현하는 매체를 생산한다. 이때 매체는 무엇보다 사적이고 사소해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무엇보다 사회적이고 거시적이며 혁명적인 대의를 제시하면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매체 생산에 있어서도 일종의 절차와 형식, 규제는 존재한다. 저작권법은 그 규제들 중 하나이다. 저작권법은 창작물의 ‘아이디어’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 재생산을 독려한다. 하지만 ‘표현’의 복제와 재생산은 금지하고 있다. 난 이것이 모든 매체의 생산에서 고려되어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위 저작권법의 규제 방식을 바탕으로 매체 제작의 ‘절차나 형식’을 ‘표현’에, ‘목적’을 ‘아이디어’에 대입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목적은 상실한 채 절차는 끔찍이 따라갈 때가 있다. 이는 마치 좋은 아이디어는 묵혀둔 채 표현만을 열심히 베껴대다가 표절 혐의를 받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본인의 매체는 어떠할까. 아이디어는 지키되 표현은 다양화하고 있을까. 이 코너 달콤쌉싸름은 본지 편집국장의 칼럼이 실리는 코너다. 매주 찾아오는 이 코너가 사실 기자에게 꽤나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고심 끝에 전임 편집국장들의 달콤쌉싸름 기사들을 쭉 읽어보았다. 당시 시끄럽던 논란거리에 대한 서술과 감상, 평가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신문사 ‘바깥’의 이야기였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어떻게 하면 바깥세상이 바뀔까’ 하는 것들. 소재는 다양했으나, 그 흐름은 비슷했고 주제의 범주도 유사했다. 그러나 그 누가 국장단에게, 혹은 편집국장의 인수인계 시점에, ‘편집국장의 칼럼은 이렇게 쓰는 거란다’라며 규정을 해주었겠나. 그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만 결국 역대 국장들은 모두 전대 칼럼들을 기준 삼아 이를 이어가면서 이 코너를 지켜왔을 것이다.

대학 학보사들 중 본지와 같이 신문 매호에 편집국장 칼럼을 싣는 학보사는 굉장히 드물다. 이 코너의 목적은 무엇일까. 신문 편집 실무를 총괄한다는 편집국장의 어록을 보여주고자? 신문의 방향성을 알리고자? 혹은 그저 국장의 심경을 느껴보라는 것일까? 글쎄, 지금까지의 달콤쌉싸름은 그저 당시 대학과 사회 이슈들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이었다. 바로 이것이 이 코너의 성격이고 틀이었으며 일종의 서술 ‘형식’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저 투고 사설과도 같았다. 해당 신문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도 아니요, 신문사 내부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해당 신문에서 다루지 않은 별도의 이슈에 대한 서술이었다. 자유로운 칼럼이라기보다는 마치 ‘확장된’ 보도기사와 같았고, 어쩌면 꼭 본지 사회면인 7면의 ‘무슨일이슈’ 기사가 조금 더 멋들어지게 작성된 형태와도 같았다. 물론 다른 기사 형태로는 다루지 못한 이슈들을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것엔 효율적인 코너였다. 하지만 이 코너는 그런 기능으로만 활용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이슈는 사회면에서, 학내 큰 사건은 1면에서 다루면 될 일이다.

이 코너는 11면, S동 211호라는 코너 바로 위에 위치한다. S동 211호는 홍대신문 기자실인 서울캠퍼스 S동 211호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기자 생활에 대한 기자들의 수기를 싣는 코너다. 사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기자들의 푸념이나 다짐이었다. 이런 기자들의 다짐 위에 그저 사회적인 이슈만을 제시하는 글이 위치했을 때, 이들은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S동 211호 위, 달콤쌉싸름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달고 쓴 이야기. 재밌고 흥미로우면서도 사건이나 세태의 허점을 찔러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

물론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자는 부담을 덜기로 했다. 이 기사는 ‘이번 주는 무슨 일을 쓰지’라며 쓰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기사가 아니라, 골머리를 앓기 때문에 써 내려갈 수 있는 기사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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