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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군선축수도〉, 근대, 지본담채, 35×24.5cm, 소장번호: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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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18~19세기에 유행한 신선도(神仙圖)는 양란(洋亂)을 거친 뒤 혼란한 시기에 등장하였다. 궁중회화에서 민간으로 퍼진 신선도는 국가의 명운이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생명력의 지속에 대한 열망으로 더욱 유행하였다. 시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임금의 만수무강(萬壽無疆)과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고, 왕조의 영원을 위해 궁중 헌납용으로도 그려졌다. 따라서 도교의 신선사상은 생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느껴지는 사회적 혼란기에 유행하였고, 신선도는 그 영향으로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신선도는 도교가 바탕이 되는 회화이며, 그에 따라 현세를 지향하는 도교적 특징이 엿보인다. 도교는 내세나 피안에 대한 기원이 아닌 현세를 연장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다. 따라서 신선은 현세를 오래 유지시켜주며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들을 숭배하며 자연스레 신선도가 그려졌다. 이러한 종교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신선도는 무엇보다도 수(壽)와 복(福), 길상(吉祥)을 상징하고 염원하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선은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이자 수복의 상징이다. 결국 신선도는 신선의 이러한 상징을 드러내기 위해 그려지는데, 여러 가지 도교적 염원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서 2차원 화면 위에 신선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선은 신인(神人)과 선인(仙人)이 결합된 용어로, 고대부터 신(神)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관념과 선(仙)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높은 산에 산다는 관념이 지속되었다. 따라서 신선은 불사하며 하늘 위를 나는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신선도는 길상의 상징을 중시하는 특성에 따라 회화적 표현과 감상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생일을 맞은 사람의 장수를 기원하는 축수화(祝壽畵), 새해를 송축(頌祝)하는 세화(歲畵)로서 그려지는 등 신선도는 실용적인 용도로 그려졌다.

관제 이도영(李道榮, 1884~1934)이 그린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군선축수도(羣仙祝壽圖)〉는 바로 장수를 기원하는 축수화의 일례이다. 화면에는 산 위를 오른 인물 세 명과 학을 타고 날아오는 인물이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변각구도 안에 전경의 왼쪽 화면 가득 산 위의 늙은 소나무 두 그루와 날아오는 신선을 맞이하는 세 명의 무리가 있다. 후경으로는 높은 산의 모습이 옅은 담채로 묘사되었다. 오른쪽 화면에는 하늘에서 학을 타고 내려오는 한 명의 신선이 나타난다. 학의 등을 타고 몸을 낮춘 하늘 위의 신선은 담담한 표정을 하고 아래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 위 신선의 옷자락은 바람에 휘날리듯 그려져 날아오는 속도감이 나타난다. 마치 그 아래 소나무가 날아오는 신선의 영향으로 가지가 크게 휘어있는 듯하다. 나무 아래에는 신선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는 남성과 동자가 서있고, 그들의 뒤로 표주박을 메고 지팡이를 짚은 한 남성이 다리 하나를 들어 올리고 서있다.

 

※ ‘박물관에 가다’에 소개된 소장품의 이미지는 홍대신문 홈페이지 <문화> 섹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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