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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도시 속에서 인간성과 주체성을 생각하다

전란 후 서울의 도시화 과정을 담은, 『서울은 만원이다』(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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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만원이다』는 1966년 2월 8일부터 11월 26일까지 총 250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호철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에서는 남해안 통영에서 가난을 뒤로 한 채 무작정 상경하여 몸을 팔아가는 ‘길녀’와 그녀의 친구 ‘미경’을 통해 근대화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위선과 거짓을 낱낱이 드러내며 도시의 확장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함을 그려내고 있다.

당시 서울은 8.15 해방과 6.25 전쟁전 후에 온갖 사람들이 시골로부터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서울에 수렁처럼 빠져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정착하지 못한 자들이 모여드는 곳, 서울.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걸어보았다.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380개나 된다. 동쪽으로는 청량리 너머로 망우리, 우이동 동북쪽으로는 의정부를 지척에 둔 수유리, 서쪽으로는 인천가도 중간의 영등포 끝, 동남쪽으로는 한강 너머의 천호동 너머, 서남쪽으로도 시흥까지 이렇게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명이 정작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해방 전후 100만 명을 유지하던 서울 인구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해 1970년 550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 서부이촌동, 청계천 등 공식 통계 상 13만 채, 비공식적으로는 20만 채 이상의 판잣집으로 뒤덮였고, 차량의 범람으로 시민들은 교통지옥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하수구가 없어 비가 오지 않아도 진창이 되는 곳은 수두룩했다. 무엇보다도 주거난과 교통난 해결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과거의 서울 모습에서 벗어나 현재의 서울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수도 시설과 대중교통 시설이 완비되었지만 빌딩 숲이 우거져 사람들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음을 느꼈다. 기자는 개발 전후의 서울 곳곳의 모습을 비교해보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탔다.

  

“요즈음 사람들은 모두 그 정도로 상투적으로만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이것도 모두 어렵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 하나의 소극적인 도피의 방법일까. 사람들이 날로 얄팍해져 가고 비겁해져 가고 있는 듯 하였다.”

  

도시가 주는 소외감은 더욱 심해지고 진정한 의사소통의 단절은 이미 1967년에 움트기 시작하였다. 서린동 뒷골목 방 한 칸에 세 들어 사는 길녀는 단골로 드나드는 예닐곱의 남자들에겐 이름이 없다. 그들은 서로 이름은 묻지도 않고 알려 주지도 않는다. 기자는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저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이렇게 급속한 도시화는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사회적 관계를 파편화시켰다.

  

“어차피서울의 생활이란 모두가 들뜬 생활이요, 저저끔 외톨로 살아가야 하는 상이다. 남의 푸념도 들을 때나 머리를 끄덕이지, 듣고 나면 저저끔 제 일만 바쁠 판이다.”

  

종로역 주변에는 뉴 코리아 호텔, 대한항공등 10층이 넘어가는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반면 종묘공원에는 무료급식을 기다리거나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있는 노인들을 볼 수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노인에게 무관심한 채 지나가기 바빴다. 길녀는 상경하여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유일하게 정을 주고, 감정을 가지게 되는 남동표는 자신의 모습을 거짓으로 포장하며 그녀의 소박한 꿈을 우습게 걷어차 버리곤 한다. 기자는 노인에게 무관심하며 정을 주지 않는 길거리의 사람들이 남동표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남동표 성질로 취직 생활은 곧 죽인대도 이젠 할 수가 없었다. 취직 생활할 팔자로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지, 자기 성질로는 도저히 그 짓을 못하겠다 싶었다. 그러니 세상 사는 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손쉬운 방법은 돈 많은 과부를 무는 길밖에 없었다.”

  

기자는 종로의 거리를 지나다가 귀금속 거리를 발견하였다. 1960년대의 이 일대에는 서울 최대의 직장가와 함께 유흥지대가 있었다. 과거의 종로와 작품 속의 종로는 길녀와 같은 매춘부들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고 남자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들의 집을 드나든다. 길녀는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한 남동표를 저버리고, 돈 많은 서린동 영감과 살림을 차린다. 이 같이 길녀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격동기 속에서 돈의 질서에 순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요즘 서울 사람들의 인생이란 너 나 없이 모두가 자의반 타의반의 인생이다. 타의에 구애 없이 주체성만 가지고 자의로만 살아가노라고 뻔뻔한 낯짝으로 지껄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에 나서 보라.”

  

기자가 서울 중심부를 살펴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에는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직장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은 하루가 끝났다는 행복감과 피곤함이 뒤섞인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돈을 번다는 목적에 있어서 자신의 꿈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과 길녀 역시 나름대로의 직관과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자신의 앞에 다가선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거나 개척할 힘은 없다. 당시 상황에서 순수한 자신의 꿈과 소망을 생각할 여유를 마련하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인물들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변질되어가며 주체성을 잃고 수동적인 삶으로 끌려다니기 쉽다.

  

“우리의 근대화가 흔하게 돌아가는 말대로 이루어지고… 모두 하루하루의 삶이 건실해지고 활기에 차 있게 될 때, 그 때 우리 앞에 새 옷으로 단장한 길녀도 나타날 것이다.”

  

작가의 희망이 담긴 문장을 읽으며 이 소설은 현재의 서울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일례로 관심사에 따라 쉽게 모이고, 해체되는 사회 집단이 증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다양한 삶의 방식을 체험할 수도 있다. 또한 우리 현실을 비추어 주는 거울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도시에 압도되기 보다는 자신의 인간성과 주체성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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