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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딸이자 언니이자 어머니였을 『몽실 언니』

그때 그 시절,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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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전국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기자가 타고 있던 안동행 고속버스는 비 오는 도로를 세차게 달렸다. 도착하기까지는 약 네 시간 반, 그동안 기자는 『몽실 언니』(1984)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책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으로, 해방 직후부터 한국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었다. 계속되는 마감에 지칠 대로 지친 기자에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생(生)의 끈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들의 슬픈 사연과 저마다의 처절한 삶은 기자에겐 채찍질과 같았다. 지금껏 무얼 탓하며 살아온 것인지 반성하게 했으며,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찰하게 했다. 그렇게 기자는 안동에 머물며 몽실 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그때 그 시절, 그들의 참담했지만 정 깊던 이야기를 다시금 회상해보면서 말이다.

 

만주나 일본 같은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줄지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조국의 품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쌀쌀했다. 그래서 말만으로 해방된 조국에 빈 몸으로 찾아온 그들은 살아갈 길이 없었다.

 

작품은 해방 직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35년이란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우리 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갖가지 고생을 하며 살아남았지만, 돌아온 조국은 더 이상 과거의 따스한 고향이 아니었다. 몽실 언니도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몽실 언니의 아버지 정 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주 집을 비웠으며, 어머니인 밀양댁은 구걸을 하며 애써 딸 몽실이를 먹여 살렸다. 그들의 악착같은 삶을 뒤로한 채 기자는 안동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몽실은 어쩔 수 없이 밀양댁 손에 끌리어 일어섰다. 고개를 넘어 골짜기를 벗어나 조금 넓은 들판에 나왔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조그만 마을에 닿았다. 두고 온 동네와 같이 감나무가 있고 대추나무가 있는 마을이다.

 

정 씨 아버지가 일감을 구하러 집을 오래 비운 사이, 밀양댁은 정 씨 몰래 새 남자 김 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몽실 언니는 새아버지인 김 씨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정 씨 아버지가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기자가 둘러본 작은 마을 역시 몽실 언니네와 같이 감나무가 여럿 보였다. 언제나 사람으로 붐비던 도심과 달리 안동은 매우 한적한 동네였다. 흙집부터 초가집, 전통 한옥까지 보존된 마을은 기자에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곳에서 기자는 외딴곳으로 넘어와 아버지를 그리워했을 몽실 언니를 떠올렸다.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을 어린 소녀는 아마 지극히도 외롭지 않았을까.

 

몽실은 그렇게 해서 한 달 동안을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한 달이 지나자 그래도 신통하게 버티고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몽실의 다리는 전과 같이 꼿꼿하지 못하고 무릎이 굽은 채 뼈가 굳어 버렸다. 절름발이가 된 것이다.

 

김 씨 아버지와 새 할머니에게 구박받던 몽실 언니는 밀양댁과 김 씨 사이 아들 영득이가 태어나자 나날이 심해지는 구박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의 폭행에 넘어진 몽실 언니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름발이가 되고 만다. 기자가 걷고 있던 마을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아니면 소설 속 몽실 언니가 너무도 가여워서인지 기자의 마음은 한없이 우울했다. 이런 기자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때마침 새들은 비 오는 처마 위에 올라가 슬픈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날 이후 몽실은 딴사람처럼 되었다.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몽실 언니의 친아버지인 정 씨는 밀양댁이 자신을 버린 사실을 깨닫고 몹시 화를 내며 몽실 언니를 데려오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새 아내 북촌댁을 맞이한다. 몽실 언니는 북촌댁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만, 어느새 그녀와 정을 주고받게 된다. 기자는 마을에 있던 한 초가집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의지했을 몽실 언니와 북촌댁을 떠올렸다. 그리고선 그들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기자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북촌댁이 몽실 언니의 동생 난남이를 낳다가 그만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해 아버지 정 씨도 징집되고 몽실 언니는 난남이와 둘이 남게 된다. 기자는 묵고 있던 숙소 텃마루에 걸터앉아 머릿속으로 몽실 언니와 난남이를 그려보았다. 갓난아기를 업은 채 어쩔 줄 몰라했을 어린 소녀를 말이다. 저절로 가슴이 저미어 왔다. 기자가 몽실 언니와 같은 나이였을 무렵, 기자는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데리러 온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 어린 소녀의 뒷모습은 이제 먼 꿈처럼 회상되었다.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둘은 잠시 조용히 그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인민군 여자가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노랫소리가 구슬퍼서 그런지, 별빛이 아롱아롱 물기를 가득 머금고 몽실의 눈으로 흔들리며 내려왔다. 몽실은 인민군 언니의 손을 꼭 쥐었다.

 

북한의 남침이 계속되는 동안 몽실 언니네 마을은 폭격과 인민군의 횡포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홀로 집에 남아 난남이를 키우던 몽실 언니는 먹을 쌀이 떨어지자 동네를 돌아다니고 한 인민군 언니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보낸 하룻밤 동안 몽실 언니는 아주 오랜만에 사람의 정을 느껴 행복해한다. 기자가 있던 안동에도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몽실 언니가 보던 꽃밭 같은 별들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온종일 내리던 비가 고요히 그러나 큰 울림으로 기자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기자는 큰 창을 열어 비 오는 안동의 한적한 풍경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캄캄한 어둠 뒤로 인민군 언니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자는 그녀의 노래를 되새기며 잠을 청했다.

 

“어어 엉 달구영, 어어 엉 다알구영…”

달구질소리였다. 집터 다질 때나 묘를 다질 때 부르는 소리다. 몽실은 그 소리에 끌리듯이 고갯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달구질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몽실은 자꾸자꾸 달렸다. 

 

몽실 언니는 만나지 못하는 친어머니 밀양댁을 언제나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밀양댁이 몹시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되고, 몽실 언니는 그녀가 있던 댓골 마을로 달려간다. 하지만 몽실 언니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밀양댁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두 어머니를 연달아 잃은 몽실 언니의 슬픔은 기자의 아침마저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달그락-달그락 주인집 할머니의 아침밥 짓는 소리에 눈을 뜬 기자는 마을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산 고개로 달려갔다. 어쩌면 몽실 언니가 밀양댁을 만나러 가기 위해 뛰어가던 고개일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그곳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니 어제는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던 마을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무언가 망가진 듯했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영문을 모른 채 기자는 서서히 안동에서의 시간을 마무리지어가고 있었다.

 

새벽녘 정 씨는 숨을 거두었다. 길바닥에서 줄 서 기다린 지 꼭 열엿새 만이었다. 정 씨의 시체는 거기서 그렇게 죽어 간 다른 사람들처럼, 가마니때기에 싸여 파출소 순경이 보는 앞에서 노무자 아저씨들이 트럭에 싣고 갔다.

징집에 끌려가 생사조차 모르던 정 씨 아버지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망가져 위독한 상태였다. 부산에 무료 진료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몽실 언니는 난남이와 아버지를 데려가지만, 이미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줄이 늘어져 있었다. 결국 진료 순서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죽고 만다. 기자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몽실 언니가 부산에 가기 위해 들른 운산역에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서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을 터다. 이내 이뤄지지 못한 소망은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서울행 버스 안에서 기자는 참으로 고단한 생애를 산 몽실 언니를 떠올렸다.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기자에게 책 속 인물들의 삶은 처절한 외침으로 다가왔다. 몽실 언니는 그야말로 그 시절 누군가의 딸이자 언니이자 어머니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기자는 앞으로 비 오는 안동에서의 기억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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