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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 사회,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당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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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런 맥락 없이 이 문장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의 논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본능’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주는 압박 때문이다. 이 문장은 본능이라는 명분으로 아름다움의 추구를 인정하고 허용해야만 한다고 주입하거나, 아름답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일반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본능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추구해야만 하며,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배척해도 된다는 논리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름다움’의 범주에 드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소외하는 시각이 커질 때, 우리 사회는 점차 ‘외모지상주의’ 사회로 변모하게 된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의 도래에 따라 사회의 기준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게 된다.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영화 <팻걸(Fat Girl, 2000)>의 주인공 자매 중 동생 ‘아나이스’처럼 말이다. 아나이스는 일반인들에 비해 뚱뚱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 자체보다도 더욱 그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아나이스의 친언니 ‘엘레나’가 인형처럼 예쁘고 날씬하다는 점이다. 외모만큼 성격도 정반대인 자매 엘레나와 아나이스는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미워하고 시기하는 자매다. 엘레나는 뚱뚱한 동생 아나이스를 보며 직접적으로 모욕감을 주면서도, 밤에 침대에 누워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를 하는 등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기도 하다. 자매의 대화는 매우 평범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하고 비상식적이기도 한데, 화면에 자매의 얼굴이 동시에 클로즈업 될 때 느껴지는 자매의 외모 차이와 아나이스의 오묘한 표정은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준다. 이러한 이질감은 결말부에 이르러 극대화되는데, 범죄자의 개입과 함께 사회적 폭력은 결국 외모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맞닿아 있으며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억압이 한 개인의 비정상적인 삶의 태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시사한다. 개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개인의 시각이 모여 왜곡된 사회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영화 <팻 걸(Fat Girl)>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아름다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외모’와 ‘내면’의 분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이의 삶은 어떨까? 백종열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 2015)>는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다양한 모습을 전부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진’은 남자주인공이지만 자고 일어나면 성별이 바뀌기도 하고 전혀 다른 연령대의 인물이 되기도 하며 심지어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별한 삶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살고 있을 무렵, 가구 판매점에서 만난 ‘이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지만, 매일 다른 사람의 외모로 다시 태어나는 우진과 그의 연인 이수는 각자 나름의 고충을 갖고 상처를 받게 되며 우진은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내면은 분명 그대로이나 하룻밤이 지나면 얼굴이 변하는 우진의 모습은 후반부로 갈수록 속도감 있게 전개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생과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유도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사람의 변화는 어느 정도 당연하나, 그 변화가 외모라면 어떨까. 영화는 잠깐의 이별 끝에 우진의 내면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그를 찾아가는 이수의 모습을 통해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진심, 진실된 사랑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깨달음을 관객 스스로 이끌어 내게 한다는 점이다.

외모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 없는 개인의 시각과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아름다움의 기준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사회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내면의 눈’이다. 에비 콘 감독의 영화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 2018)는 다소 익살스럽고 재치 있는 설정과 전개를 통해 ‘자신을 보는 눈’이 지닌 잠재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알려준다. 뛰어난 패션 감각에 매력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패션 및 뷰티 업종에 대해 남다른 재능과 열정도 가지고 있는 ‘르네’는 자신의 통통한 몸매가 불만이다. 르네가 꿈꾸는 뷰티 회사의 일자리는 키가 크고 마른 몸매를 지닌 모델들만이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욱 예쁘고 날씬해지기를 바라며 여느 날처럼 헬스클럽에서 스파닝에 몰두하던 중 운동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페달을 밟던 발이 미끄러져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게 된다. 잠시 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거울 속의 스스로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 물론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르네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연민의 눈빛을 보낸다.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소원 성취’를 이룬 르네는 그날부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스스로가 충분히 모델처럼 보였던 그녀는 꿈꾸던 일자리에 당당히 지원하고, 그녀의 자신감을 눈여겨 본 상사에 의해 원하던 일자리를 얻는다. 또한 특유의 재치와 입담을 발휘해 남자친구도 사귀는 등, 자기 자신을 보는 시각을 달리함으로써 예쁜 여자의 인생을 살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한 번쯤 남들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스스로를 상상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르네의 가치를 올려준 것은 사회의 판단이 아닌 스스로의 인식 변화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르네에게 걸린 마법이 풀린 후에도 그녀의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외모 가꾸기, 자기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 아닐까.  

사회는 아름다움의 추구는 본능이기 때문에 사회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 모두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과도해지면서, 아름다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이방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내면의 가치는 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힘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비추는 긍정의 거울이 사회로 확장되어 개개인의 내면의 가치가 더욱 중요시되는 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자. “I Feel PR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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