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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프레임을 지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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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은 우리가 사물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화당과 변화의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당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와 진보의 양당정치가 이어져 왔다. 즉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 성향의 프레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역적 기반이 정당의 기반을 형성했다. 어느 지역 출신인가에 따라 해당 정치인의 정치적 색채가 결정되었고, 따라서 지역 기반이 정치적 성향의 프레임이 되어 왔다. 최근 브렉시트와 트럼프 정부의 도래와 함께 국제적으로 개방과 고립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프레임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개방과 고립을 기준으로 새로운 정당 구도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프레임은 어느 개인, 집단, 조직을 올바르게 구분하거나 평가하기 위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올바르지 않은 프레임으로 사고한다. 창업 지원에 대한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를 평가할 때 지원 예산에 의한 창업 기업의 수를 세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이다. 기업에서 우수한 영업 사원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원과의 실적 비교를 통해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기업의 성과를 시장점유율로 평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수량적 평가는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부실한 신생 기업의 양산, 과도한 내부 경쟁, 이익률을 희생하는 비용 지출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량적 평가 방식이 채택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객관성이라는 프레임을 대체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것은 공정하고 주관적인 것은 불공정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교내 수상 실적만 기록할 수 있고, 대학교 강의실에서의 성적은 강제 할당된다. 물론 주관적 평가에 수반되는 숱한 부작용이 존재함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객관성과 주관성이라는 이분적 프레임이 적용되는 것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 즉 주관적 평가를 악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을 막기 위해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한 더욱 치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사물을 평가할 때 단순히 객관적과 주관적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아무리 치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도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가볍게 상식을 뛰어넘는 부정을 저지르는 집단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고, 또한 형식적으로만 객관적이고 실제적으로는 편파적인 기준도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놀랍게도 매우 ‘객관적인’ 방식으로 비선 실세가 활동해 왔음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상식적과 몰상식적, 이성적과 비이성적, 정상적과 비정상적이라는 프레임이 더 나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은 정상적으로 수행되었는가? 해당 영업 사원은 상식적으로 바람직하게 영업 활동을 펼쳤는가? 해당 기업은 정상적인 이익을 추구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주관적인 판단 절차에 있어서 특정 집단의 이득을 위한 편파적인 기준과 방법이 사용되었는가? 이러한 주관적 평가 과정은 객관성의 프레임을 단순 적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많은 개인, 집단, 조직은 객관성이라는 프레임을 필요 이상으로 적용하여 현상의 문제를 고의적 또는 비고의적으로 왜곡한다.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고 비고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무지한 것이다. 이것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방해한다. 보다 다각적인 접근법으로 현상의 문제를 이해할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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