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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우리’가 되는 그 순간까지진정한 천국을 찾아서, 『당신들의 천국』(1976)
▲소록도 내 위치한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의 모습이다.

남해안에 비가 내리는 8월의 어느 날, 기자는 맑은 하늘을 뒤로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섬, 소록도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반도의 끝자락이라 볼 수 있는 전라남도, 전라남도에서도 남쪽 끝에 덩그러니 위치한 소록도까지 버스를 타고 무려 6시간을 가야 했다. 3번의 버스 환승과 6시간이라는 긴 시간 탓이었을까. 기자가 느끼기에 소록도라는 섬은 사람들에게서 고립돼 어쩐지 외로운 느낌이 드는 섬이었다. 소록대교에서 비 내리는 소록도와 바다를 바라보니 우울한 감정이 기자를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당신들의 천국』(1976)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기 위해 소록도를 탈출하려고 한 한센병(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 환자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섬을 빠져나가는 사고가 어젯밤 말고도 자주 있었소?”
(중략)“자주라곤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심심치는 않을 정돕니다.” 상욱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중략)“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번 사고는 새 원장님께 대한 부임 선물쯤으로 여기고 지내보시면….”
“부임 선물이라…. 거참 부임 선물치고는 썩 맘에 드는 편이 아닌데, 내가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겠소.”

이 소설은 조백헌 원장 부임 첫날 한센병 환자의 탈출 사고로 시작한다. 조백헌 원장은 이상욱 보건과장에게 한센병 환자가 섬을 탈출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에 이상욱은 탈출 사고를 ‘부임 선물’이라고 칭하며 새 원장이 부임할 때마다 발생했다고 말했다. 탈출이라는 것은 현재 있는 곳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증거다. 특히 손과 발이 성하지 않은 한센병 환자들의 섬 탈출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다. 조백헌은 환자들이 탈출하는 이유와 선물의 의미를 알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한센병 환자들은 새로 부임한 원장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한센병 환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고자 한 섬,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환자들이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바다를 바라보니 기자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소록도 중앙공원 내에 세워진 구라탑(救癩塔)의 모습이다.

 

“원장님께선 아까 이 섬 전체가 온통 불신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런 불신과 배반이야말로 바로 그 수많은 주정수의 동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아마 원장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부임 첫날부터 큰 선물을 받은 원장은 선물의 의미를 차츰 알아가기 시작한다. 환자들은 환자로서 배척받는 삶, 원장이라는 지배자에게 착취당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과거 주정수 원장은 소록도를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겠다 연설했고 실제로 차츰 실현해나갔다. 그러나 주정수로부터 시작된 일방적인 명령, 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은 권력 관계를 심화시켰고 환자들 간, 일반인과 병력자 간의 배반을 불러일으켰다. 주정수 원장의 연설대로 소록도엔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됐고 이런 원장의 공로를 기리는 동상도 세워졌지만, 소록도는 환자들의 천국이 아니라 원장의 천국이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공사에 강제 동원됐고 거부할 시엔 감금실에 끌려가 거세당했다. 조백헌 원장은 주정수 원장과 달리 환자들을 착취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을 세우지 않고 소록도를 ‘환자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겠다며 환자들의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원장의 말에 대꾸하지 않거나 조소를 띄었다. 기자는 환자들이 끌려갔던 감금실을 둘러보았다.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겠다던 원장의 말에 미래의 천국을 그리며 공사에 참여했을 환자들, 그들의 꿈이 이곳에서 무참히 짓밟혔을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천국이라는 선한 명분으로부터 받은 배반 때문에 새 원장의 계획에 비웃음을 보낸 환자들이지만, 비웃음을 날리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으리라.

▲소록도 중앙공원 옆 운동장의 모습이다.

 

어쨌든 선수들은 이번에도 이기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들이 시합을 이기고 돌아오던 날 소록도는 이 섬이 생긴 이후로 가장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다. 선수들이 건너오는 나루터엔 솔문을 만들어 세우고 교회에 걸어두었던 만국기를 가져다 바람에 나부끼게 했다.

조백헌은 이전 원장처럼 환자들을 동원해 동상을 세워 자신의 위엄을 기리는 원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을 설득해 축구팀을 만들었다.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처음에 환자들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대회에 나가 실적을 거두고 마을 사람들이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소록도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백헌은 섬사람들에게 건강인과 싸워도 그들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이 덕에 환자들은 원장에 대한 불신과 일반인에 대한 일방적인 질투를 지워나갔다. 기자는 비가 잦아들자 원장의 노력과 환자들의 희망이 담겼던 운동장에 찾아가 보았다.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탓인지 운동장에는 생기가 느껴졌다. 불신과 배반으로 가득 차 목숨을 건 탈출이 빈번하던 섬 특유의 암울함이 아닌, 화합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원장을 더욱 더 흐뭇하고 놀라게 한 것은 얼마 전 섬을 탈출해 나간 축구팀의 한 사람이 제 발로 다시 공사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중략) 원장은 유청년을 퉁명스럽게 응대해 내보내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이때처럼 사람이 반갑고 고마워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원장은 자신이 ‘부임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생겼는지 새로운 사업인 득량만 매몰 공사에 돌입했다. 오마도 해안을 간척해 그 땅을 환자들이 일궈나가자는 것이었다. 이에 육지의 주민들은 반발했지만 원장은 이들을 설득했고, 환자들은 저마다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공사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나 하늘과 육지는 그들의 행복을 마냥 지켜보지 않았다. 하늘에선 태풍을 내려 환자들이 애써 쌓은 돌둑을 무너뜨렸으며, 육지에선 간척사업을 뺏어 이득을 취할 궁리 중이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환자들은 조백헌 원장에 대한 불신과 배반의 감정을 키웠다. 결국 환자들에게서 조백헌 역시 천국 건설이란 명분을 내세워 성과를 내고자 한 원장이라는 불신이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육지에선 국가에 압력을 넣어 조백헌을 다른 병원으로 발령토록 했다. 기자는 환자들과 원장의 희비가 공존했던 이곳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이따금 어깨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기자에게 부는 바람이 원망스러웠다. 이 비와 바람만 아니었으면 고통스러운 순간으로만 가득 찼던 그들의 인생에 희망의 빛이 깃들 수 있지 않았을까.

“흙더미가 쌓여 방둑은 이어졌으되 그 이어진 방둑을 오가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흙과 돌멩이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윤해원과 서미연 두 사람의 결합은 그 두 사람의 처지가 특히 남다른 바가 있었던 만큼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일 가운데 더욱더 뜻이 깊고 튼튼한 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백헌은 5년 뒤 다시 소록도로 돌아온다. 원장이란 직책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으로 말이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선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 되기 위해선 지배자와 피지배자, 환자와 일반인을 구분 짓지 않고 수평적으로 교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조백헌은 음성 병력자인 윤해원과 건강인인 서미연의 결혼을 도우며 교감과 사랑에서 비롯된 ‘우리들의 천국’의 가능성을 열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과거 원장들의 하향식 개발 독재, 환자들이 받은 고통, 이로부터 비롯된 배반과 불신의 역사를 보니 ‘당신들의 천국’ 속에서 살았을 사람들의 공허함이 전해졌다. 매 순간 천국을 꿈꿨지만 원장들의 천국 건설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기자는 슬픈 사연이 담긴 소록도를 뒤로 한 채 다시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여전히 우중충한 날씨지만 다행히 비는 그쳐 소록도의 풍경을 제대로 보고 떠날 수 있었다. 비가 그쳐서인지 부임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원장 덕인지, 소록도는 더욱 푸르게 보였다. 

이소현 기자  sohyun0911@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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