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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 없던 대결의 결말

요즘 글을 읽는 것이 조금 불편해졌다. 아니 불편해졌다기보다는 좀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글을 보더라도 그 글의 구조나 문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습득해야 한다는 등의 부담감이 몸에 배어버렸다. 그리곤 ‘나는 지금 읽고 있는 이 글보다 더 멋있는 글을, 더 깊이 있는 글을, 좀 더 뭔가를 한 번에 꿰뚫는 글을 써야 한다’라는 등 괜한 긴장감을 막연히 느끼게 되었다. 글이란 것이, 그저 감상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대상이 아닌 ‘창조’해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하고부터다.

사실 나에게는 진작에 이 같은 부담감을 얹어주던 것이 따로 있다. 바로 미술작품이다. 그림이 본 싸움이라면 글은 그냥 몸풀기로 전락시켜버릴 수 있다. 그림이란 내게 거의 숙적이다. 오랜 시간 내게 연필이란 글자를 쓰는 도구이기보단 형체를 만드는 도구였고, 색감이란 보는 것이 아닌 나타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림이란, 감상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내고 제작해내야 하는 것으로 내게 존재했다. 무려 6살 때부터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는 농담들을 귀담아듣기 시작한 때부터.

“네가 하고 싶대서 시켜줬잖니?” 미술을 배운다고 부모님께 많은 금액을 지원받아온 미술학도들이라면 이 대사에 공감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는 그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떼를 써왔다고 한다. 미술이 하고 싶다고, 그림이 그리고 싶다고. 그렇게 난 지금껏 미술세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인생의 4분의 3가량, 나에겐 그 모든 세월이 미술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이 미술은, 이제 와 내 과거의 마음을 거짓으로 바꾸어내려 하기도 한다. 곧 ‘나는 미술이 하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종종 수업 중에 은근슬쩍 느껴지는 불문율이 있다. 소위 예술가들은 깊은 정신세계를 지녀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심오한 담론을 펼치지 않는 이들, 혹은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가 ‘얕아 보인다는’ 이들을 무시하거나 저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십수 년간 미술 속에 나름대로 파묻혀 사고하면서 위와 유사한 논리로 생각해왔기에 이에 ‘꼴사납다며’ 쉽게 침을 뱉을 순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연 작품의 주제가 심오하다고 해서 사회 인식개선에 확실한 힘을 싣는지, 작가의 철학이 깊다고 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지. 사실 그 어느 것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작품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간단하고 일상적인 주제가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맞는다면 결국 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철학이며 예술을 논하면서 학우들과 서로 우월하고 열등하고 하는 것들을 따지는 건 결과론적으론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예술이기에, 미술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았기에, 적어도 이 길에서는 경쟁이나 불안감이 아닌 나름대로의 자부심으로 내가 주장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내 스스로가 이러한 이유로 미술을 택한 것이라고도 믿어왔다. 그러나 어느샌가, 사실 나 스스로는 이미 평가와 시선에 얽매여 있었고, 또 그 평가들은 심오하고 복잡한 사고가 우월한 것임을 신봉하던 내게 걸맞았다. 그렇게 나는 신나게 미술의 우위를 가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의미 없는 긴장과 불안을 느꼈고, 이젠 힘들고 지겨워 그만하고 싶다는 등의 앞뒤 안 맞는 한탄들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 대학교 3학년에 와 이 모순을 깨닫고 있으니, 이제는 또 새로운 불안감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남의 글이나 그림을 읽고 보며 느끼던 이전의 불안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내가 과연 미술을 배우며 올바른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가, 수업에서 나는 적절한 학습을 하고 있는가이다. 물론 전문가적이고 우수한 학문의 발전도 중요한 일이지만 모든 학생들이 순수한 학문의 연구에만 힘쓰며 살아가고자 하는 미래 계획을 갖고 있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후 사회에 나갈 것을 대비하는 이 대학생의 고민에는 오히려 전문적이고 심오한 학문으로 우열을 가르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사회를 맛보고 있는 듯한 현실적이고 현장밀착적인 공부가 좀 더 안정감을 더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집국장 홍준영  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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