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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렬 지음, 예문서원, 2018. (2019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서양철학입문> 윤병렬 교수가 추천하는 『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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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고인돌의 성좌에 새겨진 한국의 고대철학』이란 제목은 다소 낯설게 들릴 것이다. 선사시대에 무슨 철학이냐고? 그러나 이런 제목이 붙기까지는 고뇌에 찬 배경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고대철학이라고 하면 고작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 및 도교를 중점에 세우고, 그 주변은 토착신앙과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과연 우리에게 중국에서 유입된 것 말고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는가?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그리고 거기서 큰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오늘날 고도의 과학성이 전제되는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기는 퍽 어렵기만 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의 경고를 우리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침묵하고 있는 선사유적에 대해 황당한 사견이나 터무니없는 주장, 신화적이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액면 그대로 철학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것, 더 나아가 말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태만이고 무지인 것이다.

한반도와 고조선 지역에 흩어진 5만기 이상이나 되는 고인돌과 선돌들, 거석문화라고 하면 대명사처럼 등장하는 영국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고인돌, 지중해의 말타(Malta)에 있는 거석신전, 칠레의 이스터(Easter)섬에서 일정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모아이(Moai)들 모두 때론 신비스럽기도 하고 때론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철학개념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는 뚜렷한 철학을 읽어내기는 퍽 어렵다. 

그러나 이 모든 선사유적과는 달리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그래서 그때의 철학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선사유적을 우리는 갖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사숙도(四宿圖: 해, 달, 북두칠성, 남두육성), 고인돌에 새겨진 사숙도 성혈, 청동기 시대의 청동거울에 새겨진 사신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 성좌들의 표현인문학적 의미해석은 이 책의 핵심테마를 이룬다. 그리고 이 테마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철학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큰 위치를 차지하는 내용들이다. 사신도와 사숙도의 표현인문학은 결코 단순한 회화가 아니다. 이들에게 각인된 보살핌의 철학적 세계관에서 우리는 H.롬바흐(Heinrich Rombach, 1923~2004)가 천명한 명제, 즉 “사람들은 결코 미개한 적이 없었다”를 간파할 수 있다. 

사신도와 사숙도를 통한 보살핌의 철학적 세계관은 그야말로 인간을 비롯해 온 코스모스를 보살피고 수호한다는 것이다. 온누리를 수호하고 보살피며 지킨다는 것은 —이를 “보살핌의 철학”이라 규명할 것이다— ‘전쟁’(polemos)이나 ‘투쟁’조차도 발전을 위한 변증법의 요인이 되는 서구의 철학과는 판이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신도와 사숙도를 통해 온누리를 보살피고 수호하는 철학적 세계관은 충돌과 전쟁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의 변증법체계(헤라클레이토스, 헤겔)와는 근원적으로 다르기에, 인류정신사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성혈고인돌에 새겨진 사숙도와 청동거울의 사신도, 나아가 고분벽화의 사신도와 사숙도에는 “보살핌의 철학”과 더불어 불멸사상과 천향사상, 경천사상, 귀향의 철학 등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인간(인류)은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하며 삶을 영위한다. 동양인들은  하늘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해, 하늘은 자연과학적인 하늘만이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속성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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