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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가지 않고, 끌고 갈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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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게 몸을 누르던 더위는 가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 쌀쌀한 공기와 함께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가을, 아무래도 가을 하면 ‘독서’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기자는 책이라는 매체를 접할 때면 언제나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느낀다. ‘지면 매체의 몰락’, 지겹다면 지겨울 이야기지만 절대 끊이지 않을 이야기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기자는 요즘 이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책이 좋아서 이 전공에 지원한 기자는 어느덧 지면보다 화면을 더 많이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또 화면 속 빠른 시각적 자극에만 익숙해져 더 이상 지면의 찬찬함을 참을성 있게 읽어나가지 못하는 것인지, 지면을 읽을 때면 이전에 비해 금방 집중력을 잃고는 한다.

“디자인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순수 미술이 그림 그리는 거고 디자인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순적이게도 기자는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까지도 이토록 많은 작업들이 노트북으로 이루어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세부 전공과는 상관없이 미대 입시 실기는 대부분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입체는 싫어해도 지면에서 손을 뗄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입학 후 닳는 건 붓이 아닌 자판보호 패드였다. 이러한 변화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컴퓨터 프로그램(이하 툴)을 사용할 때면 이것이 나의 실력으로 제작한 표현인지, 기술로 만들어져버린 표현인지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이기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툴을 배우는 주위의 비전공자들을 보면 힘이 빠졌다. 유용한 기술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누구나 툴을 다룰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각디자인전공의 전공 수업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컴퓨터 툴에만 끌려가지 말아라.” 기자의 고민이 그저 개인적인 고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디자인 전공만이 마주한 새로운 국면이 아니다. 이제는 소설에서도 사회를 압도하는 기술의 확산을 보여주고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오리진』(2017)의 주인공인 과학자 ‘커시’는 지구상에 있는 많은 생물들이 오랜 시간 동안 번성하고 멸종하기를 반복해 왔으며 현재는 ‘인간’의 번성기이지만 언젠가는 ‘인간’이 멸종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그런데 그가 예언한 미래에 우리를 멸종시키는, 정확히는 우리를 흡수시키는 새로운 종은 다름 아닌 ‘기술’이다. 물론 이는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리는 인류의 미래를 마냥 부정할 수도 없다는 데에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 분명 그저 툴을 익히고 생각이나 목적 없이 똑같은 작업만을 반복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기자도 아직 확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수업 중 인상 깊게 남은 교수님의 말씀으로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세대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것은 툴을 다루는 능력이 아닌 온전한 시각적 소스를 제작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기자는 이 말을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 또는 매체인 기술에 대한 숙련과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디자이너로서의 관찰력과 창작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는 아마 기술과 함께 빠르게 변하고 있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은 어느덧 우리가 ‘제4차 산업혁명’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기술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떠한 주제의 본질을 통찰해내고 해답을 찾는 힘을 기르며, 기술을 통해 그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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