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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팩트란 없다

한 주간 밤잠을 설쳤다. 최근 들어 잦아진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에 나도 모르게 꽤나 시달렸던 것인지, 꿈속에서까지 머릿속의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아침마다 꿈이나 잠이 아닌 고민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오듯 침대에서 나왔다.

올해 특히나 빨랐던 추석 연휴는 애매하게 지나가버려 마치 연휴 자체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내 휴가 어디 갔지?’하던 새에 시작도 안한 것 같던 2학기는 이미 꽤 많이 흘러온 후다. 여느 때와 같이 쉴 틈을 주지 않는 매주의 과제와 기사 마감. 어차피 모두가 나와 같이 바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스스로 나름의 위로를 한다. 다만 바쁘다는 이유로, 휴일엔 그토록 몰아보던 여러 매체들을 많이 즐기지 못한다는 점은 무엇으로도 결코 쉽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부터 뉴스, 신문까지. 세상엔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것들이 천지다. 이렇게 넘쳐나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버릴 때면, 그만 헤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아쉬워진다.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롭다. 반면 때론 그만큼 공허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어떤 매체를 통해 이야기되는 세상도, 즉 어떤 소설의 인물도, 어떤 뉴스 속의 사건도, 지금 당장 내가 손 내밀어 해결해야 하는 사건들과는 생각보다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 밀착적으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도, 모든 매체에서는 사건이나 인물의 단면만을 보여주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편집을 통해 연출된 세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은 의사인데 극 중에선 병원에서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매번 사람만 만나러 다닌다거나 하는 것이다. 인물에 좀 더 현실적으로 공감해 상상해보자면 오히려 그 인물의 생활 속 대부분에는 병원이 존재할 것인데 말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동선과 생각은 끊기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매체 속 세상에서는 1초 만에 집에서 학교로 이동하고, 때로는 1초 만에 5년이 흘러가기도 한다. 결국 어떤 매체도 누군가의 모든 생활과 모든 사건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때 부작용이 걱정되는 것은 실제 상황을 담는 매체들이다. 슬프게도 어떤 형태의 매체도 사건의 단편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언론매체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언론이 사회를 편향되게 담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결국 모든 사건, 사고는 사회의 단면이고, 그 단면 속에서도 수많은 상황과 이유 등의 단편들은 넘쳐난다. 기사에 작은 사건을 담더라도, 그 사건을 둘러싼 각 개인의 입장과 관계를 어떤 편집도 없이 낱낱이 서술하고 근본적인 시대적 원인을 찾아 서술하고자 한다면, 기사는 끝없이 써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대중들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편한 소식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시선으로 일부 단편들을 골라내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이때 어느 당사자의 단편을 더 많이 담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임에도 기사마다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한편 어떤 주장으로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아귀가 들어맞는 특정 ‘논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더욱이 다수를 설득하고 그것을 행동으로서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그 논리는 매우 단순하고 쉬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정 논리를 사회에 대입하는 순간, 대부분은 일부 오류나 예외들을 낳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너무도 단편화된 논리로 많은 것을 일반화한다. 심지어 이 단편화된 논리에 따른 여러 가지 주장과 억측들을 이어나가면서, 이때 발생하는 희생은 덮고자 하기도 한다.

나는 사회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논리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있다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많은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목쉬어가며 서로가 맞다, 틀리다를 외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흔히 인류에게 확실한 것은 죽는 것 하나뿐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러 논리들 중 한 편의 손을 들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본인의 선택과 결단으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과 희생양을 목격하고도, 이를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럴 때면, 본인이 주목한 특정 단편과 본인의 결단을 추진해나가면서도 자신의 단편이 가지는 장단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선택지와 단편들의 가능성을 묵살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 아닐까.

편집국장 홍준영  mgs05038@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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