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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부르는 그 이름, 『엄마의 말뚝』(1979)

그 시절 말뚝으로 뿌리내린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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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골목길에는 오래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골목길에는 오래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엄마’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보자. 입술이 살짝 닫혔다가 가볍게 열리며 부드러운 비음 발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발음하는 단어이자 구강구조상 편하게 발음할 수 있어 놀라거나 무서움을 느낄 때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오곤 하는 단어. ‘엄마’다. 세상의 수많은 단어들은 그 의미나 어감의 체감 정도가 비슷한 편이지만 이 단어는 조금 특별하다. 모든 사람들은 엄마라는 단어에 각자 다른 울림을 받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한 경험은 모두가 다르고, 엄마라는 존재가 전하는 감정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유지하거나 밥을 먹을 때 자식들에게 맛있는 부분을 모조리 양보하는 등의 ‘엄마’ 이미지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모성상(母性狀)’에 불과할 뿐이다. 엄마에게도 그들만의 욕망과 간절히 이루고픈 꿈이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끈질기고 고결한 생명력을 지닌다. 박완서(1931~2011) 작가는 우리나라 여성문학 작가의 대표자로서 엄마라는 존재의 인간성과 그들의 억눌렸던 욕망이 지니는 생명력이 얼마나 깊고 견고한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엄마’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엄마는 아버지의 3년상도 받들기 전에 오빠를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맏며느리로서 시부모 공양하고 봉제사라는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는 대신 엄마는 아무런 재산상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했다. 숟가락 하나도 집안 것은 안 건드리고 오로지 당신의 단 하나의 재간인 바느질 솜씨만 믿고 어린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표표히 박적골을 떠났다.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문. 독립문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문. 독립문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1979)은 당시 며느리로서의 여성에게 주어졌던 의무를 과감하게 버리고 서울로 향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기자는 일부러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작품 속 ‘엄마’가 처음으로 ‘말뚝을 박은’ 동네인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막연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에 첫 발을 내딛은 ‘엄마’가 느꼈을 막막함과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현저동의 대로변에는 오래된 간판들 아래 떡과 커피를 파는 가게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고 건너편에는 브랜드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공사 중인 곳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보면 그곳은 십여 년 전에 시간이 머무른 풍경이었다. 기자는 시골에서 막 올라왔을 ‘엄마’가 이 곳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의지를 가슴 속에 불태웠을지 생각하느라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두어 번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며 사거리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매정한 것아, 우리 두 늙은이가 그저 이 녀석 들락거리고 재재거리는 거 하날 낙으로 삼고 사는 것도 모르고…… 느이 동서가 태기라도 있으문 나도 안 이런다. 설마 셋째한테서야 곧 태기가 안 있을라구. 그때 가서 데려가면야 누가 뭐라겠냐”
“그렇게는 안 되겠어요 어머님. 학교를 보내는 데는 때가 있으니까요”
“핵교를? 기집애를 핵교를?”
“네, 기집애도 가르쳐야겠어요”
“야, 너 대처에 가서 무슨 짓을 했길래……큰 돈 모았구나? 아니면 간뎅이가 부었던지.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기집애꺼정 학교에 보내 보내길?”

여자아이가 글을 배우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그 시절, ‘엄마’는 서울 아이들은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나’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신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비록 ‘*문 밖’이긴 하지만 서울에 들어온 열정이 무색하게 ‘엄마’의 신여성 설명은 빈약하기만 하다. ‘엄마’는 신여성이 뭐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일본식으로 머리를 다듬고 종아리가 나오는 까만 통치마를 입고, 뾰족구두를 신은 여성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나’가 바라는 것은 일본식 머리보다 금박을 한 다홍댕기이며, 통치마에 뾰족구두보다 노랑저고리에 꽃신이었다. 다소 억척스럽게 진행된 ‘엄마’의 ‘딸 신여성 만들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신여성이란 모르는 것이 없고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던 ‘엄마’가 그렸던 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자는 ‘상자갑을 쏟아놓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밀집되어 있는 조그마한 집들을 올려다보며, 딸이 자신보다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딸의 삶으로 투영하여 딸의 인생이 보다 나아지기를 바랐던 모성의 뿌리가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딸’로 빗대어진 여성들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사 간 날, 첫날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 밖이긴 하지만……”

전통 있는 시골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이웃을 ‘상종 못할 천한 것들’이라 여기는 은근한 모순적 태도 속에 서울살이를 꾸려나가던 ‘엄마’ 아래서 ‘나’는 한 여성으로서의 성장기를 거친다. ‘엄마’는 현저동 꼭대기에 살며 점차 딸의 교육과 놀이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비록 기존에 살던 동네를 완전히 떠나진 못했지만 여섯 칸짜리 기와집을 얻어 ‘말뚝을 박았다’고 감격하며 ‘괴불마당 집’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같은 시기 ‘나’는 문 안에 있는 학교를 보내기 위한 ‘엄마’의 노력 끝에 사직동의 매동학교(현 매동초등학교)를 걸어 다니며 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특히 인왕산을 걸어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의 감회는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묘사되어 있는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산길을 걷는 소녀의 모습은 신여성이나 문 안의 집 등 삶의 고단한 주제들과 한 발짝 떨어진, 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작은 여정이자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장마가 끝난 후의 인왕산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을 보니 환장을 하게 좋았다. 나는 학교만 파하면 인왕산으로 올라가서 시냇물에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성터까지 올라가 바람을 쐬면서 서울장안을 굽어보기도 했다. (중략) 인왕산 빨래터의 맑은 물에 두 다리 담그고 앉아 빨래를 부비는 데 저만치 국사당(國師堂)에서 덩더꿍덩더꿍 굿하는 소리라도 나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사람 사는 거란 무엇일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생각답지 않게 손끝을 저리게 하는 어른스러운 기분을 느끼곤 했다.

 

▲현저동에서 종로 사직동으로 이어지는 산길.
▲현저동에서 종로 사직동으로 이어지는 산길.

기자는 현저동에서 사직동 매동학교까지 걸어 다니며 자연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만끽했던 그녀를 어설프게 흉내내보고자 매동초등학교까지 걸어가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푸르른 나뭇잎이  흐드러지는 초록빛 산책길을 예상한 것과 달리 절반 이상의 길이 이미 발전이 이루어진 찻길이었고, 기자는 지친 걸음을 옮기다 못해 결국 종로05번 버스에 올랐다. 보기만 해도 ‘환장을 하게 좋은’ 맑고 깨끗한 자연 속 산길은 이제 소설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것인가. 기자가 흐르는 시간을 새삼 체감하며 씁쓸한 기분을 느끼던 도중, 버스는 매동초등학교 정류장에 섰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어 주황빛으로 변한 햇볕이 땅바닥을 물들이고 있었고, 나지막한 가게들이 조용히 늘어선 골목 끝으로 매동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작품 속 ‘나’는 이곳에서 신여성에 대한 회의감을 시작으로 인생에 대해 깨달아 갔고 기자의 하루도 흘러 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곳만큼은 지금처럼 고즈넉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남아주기를 기자는 진심으로 바랐다. 

▲매동초등학교 정류장에 내려 낮은 건물의 가게들을 지나면 골목 끝에 자리한 매동초등학교를 볼 수 있다.
▲매동초등학교 정류장에 내려 낮은 건물의 가게들을 지나면 골목 끝에 자리한 매동초등학교를 볼 수 있다.

괴불마당집 근처에 연립주택이 들어서 인왕산을 가린 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엄마의 말뚝 1』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현대 시점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2,3부작에서도 가족의 마음에 박힌 엄마의 말뚝은 뽑히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울 변두리에 말뚝을 박아 아들과 딸을 우직하게 키워온 엄마의 생명력이 그들의 자식으로부터 다시금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기자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이 일렁이는 독립문 사거리를 돌아보았다. 엄마라는 이름의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내걸고 억척스레 삶을 꾸려가며 말뚝을 박은 공간. 그것은 민족사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굳게 지켜나가고 싶었던 간절함이자 깊은 고통일 것이다. 기자는 모든 이들이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이유 모를 애틋함과 안쓰러움 등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깊이 뿌리내렸을 그들의 말뚝이 부디 뽑히지 않기를, 그로부터 그들의 삶이 굳건히 지켜지고 위로받기를 진심을 다해 바란다. 현저동을 떠나는 기자의 얼굴로 인왕산 골짜기에서 불어온 푸르른 바람이 한 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문 안: 경성부(京城府)이지만 사대문 밖에 있는 땅을 통틀어 문(門) 밖이라고 칭하는 것이 그 무렵의 관용어였다. 작품에서는 당시 구체적인 ‘문’으로 설정된 ‘독립문’을 기준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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