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류장은 홍익대학교, 홍익대학교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학교 정문 맞은편의 ‘홍익대학교’ 정류장에 내리며 등굣길을 마무리하진 않았는가? 차고지가 위치한 중랑구와 우리 학교 인근의 동교동을 오가는 노선 가운데 서울시 강북 지역 주요 대학을 10곳이나 경유하는 273번 버스는 일명 ‘청춘 버스’로 통한다.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던 등·하굣길 버스 273. 지금부터 273번 버스의 안내를 따라 서울 일대 청춘의 내음이 가득한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청춘버스 273의 퍼즐조각들을 찾다
273번 버스는 2005년 5월 16일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 ‘중랑공영차고지’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를 잇는 간선버스로 개통됐다. 개통 이후 14년간 변함없이 같은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듯 노선도에서 서울 강북의 주요 대학 이름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어 청년들의 일상과 삶을 싣는다는 의미로 ‘청춘 버스’라는 애칭을 갖는다. 실제 직접 거쳐 가는 대학들만 세어보면 한국외국어대, 경희대, 고려대, 성신여대, 한성대, 성균관대, 방송통신대, 이화여대, 연세대, 홍익대로 10개이며 간접적으로 지나치는 대학까지 더하면 17개에 달한다.
그렇다면 ‘2’와 ‘7’과 ‘3’이라는 숫자에 담긴 비밀은 무엇일까? 서울의 버스 노선 체계를 보면 번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3자리 번호의 버스는 시 외곽과 도심, 부도심 등을 연계하는 간선버스로 서울 시내 먼 거리를 운행한다. 세 자리 중 맨 앞자리는 출발지 권역 구분번호이고, 두 번째 자리는 도착지, 마지막 자리는 노선의 일련번호를 나타낸다. 즉 성동·동대문·광진·중랑을 뜻하는 ‘2’에서 시작된 운행이 마포·서대문·은평을 뜻하는 ‘7’에서 마무리된다는 뜻이다. 주요 경유지인 대학들과 연계 전철역들을 모두 경유한 뒤 우리 학교 정문에서 우회전하여 ‘홍대입구역’에서 회차한다는 점도 273번 버스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조금은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행선 표지판의 전면부에는 ‘동교동’이라고만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학교와 홍대입구역을 모두 경유하기 때문에, 273번 버스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늘 같은 정류장에서 등·하굣길을 책임져주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273번 버스, 특별함의 자취를 따라
청춘들의 일상이 담겨 있다는 점 외에도 273번 버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특히 타 간선버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역사와 운행 구간이 273번 버스를 한층 더 정다워 보이게 한다. 도로·교통의 발달 역사를 함께 한 273번 버스는 과거를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273번 버스와 함께 그 발자취를 따라 가보자.
일방통행 골목길을 누비는 간선버스
여기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골목길이야. 이런 좁은 일방통행 도로로 커다란 버스가 다닌다니 신기하지? 사실 도로의 구조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내가 가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직진하다 보면 ‘이경시장삼거리’라는 삼거리가 하나 나와. 그런데 거기는 도로 폭이 좁다 보니까 아예 좌회전을 할 수 없도록 막아놨더라고. 그렇다고 다른 길로 빠지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너무 돌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골목길로 들어가게 된 거야! 내가 생기고 처음 1년 동안에는 1215번이라는 친구와 이 길을 같이 다녔는데, 갑자기 노선을 바꾸더니 2012년 즈음에 사라져 버렸어. 사실 내가 다니는 골목길은 생각보다는 넓은 편인데, 재래시장이랑 아파트가 바로 옆에 있어서 주차된 차들이 많다 보니 나를 운행하시는 분들도 매번 조심해서 다니고 있어. 이런 길로 다니다 보니까 예전에 서울 시내버스에 굴절버스*를 도입할 때 나를 제외했다고 해. 커브도 반경이 작고 도로 폭이 좁아 다니기 어려웠다나? 그래도 차고지로 돌아가는 방향만 저렇게 가는 거라 다행이야. 홍대 방향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큰길로 쭉 다니고 있거든.
* 굴절버스: 2대 이상의 차량을 하나로 연결하여 운행되는 버스
273번 이용객들만 아는 비밀(?) 정류장
두 번째 사진 속 여기가 어딘지 알아? 바로 내가 경유하는 정류장이야.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정류장이냐고? 진짜 정류장이라니깐?! 아까 내가 이야기했던 골목길 기억나? 그 골목길 끝에 이불 가게가 하나 있는데, 그 앞에서 나를 탈 수 있어. 원래는 폐타이어 위에 임시로 판넬을 끼워서 정류장 표식을 만들어 놨었는데, 작년부터인가 감쪽같이 사라졌더라고. 그래도 타는 사람들은 잘 타고 다니고 있지. 이 정류장에도 사정이 있는데, 원래는 이곳 대신 큰길(한천로) 쪽에 정류장이 하나(한천로쌍용아파트앞) 있어. 그런데 거기에 정차하면 바로 앞에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좌회전을 위해 차선을 4개나 변경해야 해서 공간이 너무 부족하더라고. 그렇다고 정류장을 안 만들면 정류장이랑 정류장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버리니까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정류장을 만들게 된 거야! 비록 안내방송도 안 나오고 버스 정보 애플리케이션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정류장이지만, 나름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정류장이라고 할 수 있지.
철길과 고가도로를 달렸던 그 시절의 273
지금은 대학가를 위주로 운행하는 내가 한때는 철길과 고가도로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그 때는 말이야, 건널목과 고가도로를 모두 지나는 버스 노선은 흔치 않았어. 건널목은 1호선 ‘외대앞역’에 있었던 ‘휘경4건널목’으로, 열차 통행량이 많아 일명 ‘열리지 않는 건널목’으로 악명 높았어. 당시 이 구간에서의 지연 때문에 배차간격이 20분이 넘어가는 일도 비일비재 했었지. 그땐 열차가 달려올 무렵 땡땡거리는 종소리나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열차 소리,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해진 푸근하고 정다운 분위기 속을 달렸었는데, 지금은 안전상의 문제로 인도 건널목만 존치되며 모든 것이 추억이 되었지. 하지만 그 추억 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 또 2015년 7월까지는 서대문역 상부에 위치한 서대문 고가차도를 주행하기도 했어. 고가차도를 달리는 버스의 모습이라니, 생각만 해도 신기하지? 현재는 노후화된 도시 미관의 개선과 중앙버스전용차로 건설 등의 사유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고가도로를 달리는 내 모습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
273번 버스의 ‘청춘’, 그리고 ‘청춘 파수꾼’의 이야기
최진혁(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전공 2학년)
273번 버스에는 청춘의 낭만도 넘쳐흐르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다 지친 몸을 버스에 맡기는 청년들의 모습 또한 종종 목격되곤 한다. 버스 안에서 만난 최진혁 군도 이들 중 하나였다. 통‧번역 계열로의 진로를 희망하고 있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2학년 최진혁 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평소에 273번 버스를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가?
A.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이용하는 것 같다. 통학 용도보다는 다른 대학교나 졸업한 고등학교를 방문할 목적으로 이용하곤 한다.
Q. 273번 버스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을 많이 거쳐 ‘청춘 버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 승객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A. 버스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확실히 대학생들이 많다고 느낀다. 또 나에게는 재학 중인 대학교와 예전에 다녔던 고등학교 및 학원을 모두 지나가는 노선이라 지날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노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Q. 273번 버스에 오르면 주로 어떤 생각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는가?
A.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홍대나 광화문 등지에서 친구를 만나려고 타는 경우가 많아서 만나게 될 친구와 보낼 시간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아무래도 과거의 추억이 서려 있는 노선이다 보니 어떤 버스에 올랐을 때보다도 편안하게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273번 버스 ‘권혁희’ 운행사원
273번 버스를 운영하는 ‘메트로버스’ 회사 홈페이지의 ‘칭찬합니다’ 게시판에서는 권혁희 운행 사원에 대한 많은 승객들의 칭찬이 눈에 띈다. 이들은 “탈 때는 물론, 내릴 때도 승객들에게 눈 맞추며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라며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한 승객은 “권혁희 기사님만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왔는가?”라는 글로 권혁희 운행 사원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273번 버스를 13년간 운행한 청춘의 파수꾼, 권혁희 운행사원을 만나보았다.
Q. 273번 버스가 ‘청춘 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외국어대, 고려대, 대학로, 홍익대 등 대학가를 주로 경유하다 보니 젊음의 기운이 가득한 대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소위 썸을 타는 승객들도 많고(웃음),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273번 버스를 운행하는 모든 운행사원이 대학생들을 보며 함께 젊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청춘 버스를 운행하는 게 참 뿌듯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Q. 마이크를 착용하고 직접 안내방송을 하는데, 안내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회사에서 권해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마이크 하나가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손잡이를 잡지 않고 있는 승객들에게 마이크로 ‘손잡이 좀 잡아주세요’라고 안내하면 바로 손잡이를 잡는다. 이로 인해 사고율도 많이 낮아진 것 같다고 느낀다. 또 직접 정류장 이름을 말해주면 피곤함에 졸고 있던 승객들이 정류장을 놓치지 않고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데, 이러한 점도 육성 안내방송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Q. 요즘은 육성 안내방송을 하는 운행 사원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승객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마이크 방송을 좋아하지 않는 승객이 더러 있다. 이에 대해 민원이 들어온 적도 많다. 높은 목소리 톤으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도 종종 있어 이제는 조금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안내방송을 하여 육성 안내방송의 긍정적인 면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Q. 버스 운행 경력이 약 30년차인 ‘베테랑 기사’다. 273번 버스의 운행에서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
A. 주로 혼잡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배차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스마트폰을 보느라 손잡이를 잡지 않는 승객들의 안전이 제일 걱정이다. 그 상태에서 급정거를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늘 불안하다. 또 최근에는 노약자석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다. 물론 모든 승객에게 각자의 사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노약자석이라고 표시된 좌석은 양보를 해줬으면 한다.
Q. 273번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거나 간단한 간식을 건네는 등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준 승객들이 기억에 남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대학생 청춘들뿐만 아니라 273번 버스에 오른 모든 승객들이 젊고 활기찬 기운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럼 273번 버스는 영원히 ‘청춘 버스’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 취재에 도움 주신 ㈜메트로버스 임·직원 및 운행사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도 273은 청춘의 시간을 달립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일상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청춘 버스 273. 그 존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수많은 승객들의 마음 속에 정겨움과 추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273번 버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그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책임지는 운행 사원들의 노고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오늘 273번 버스를 따라 ‘청춘대로’를 달릴 예정이라면, 긴 세월 청춘의 길을 지키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은 응원의 목소리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산희 기자(ddhh1215@mail.hongik.ac.kr)
김주영 기자(B881029@mail.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