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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자, 도망자, 성취자? 발버둥 치는 청춘들

장강명 작가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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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청춘을 갈아 넣는 ‘노오력’을 기울이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치솟는 물가, 버거운 집값 속에서 먹고 살고자 청춘을 포기하며 겨우 취업해도 또 다른 ‘포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헬조선’, ‘탈한국’과 같은 비관적인 단어들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고 언론과 기성세대는 위태로운 청년 세대를 ‘N포세대’,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로 규정한다. 앞으로 살펴볼 장강명(1975~) 작가의 소설 속에도 위태롭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한 청년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등장인물 모두 힘겨운 상황 속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지만 각자 상이한 대응 방식을 보인다. 이 시대 청춘의 답답한 현실을 솔직하게 그려낸 장강명 작가의 소설을 통해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다시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표백』(2011)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힘겨운 세상에 저항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모든 틀이 짜여 있는 세상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청년들은 이미 만들어진 세상에 ‘표백’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청년들은 집단 자살, 연쇄 자살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하고자 한다. 그 자살은 등장인물 ‘세연’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연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법이 자살이라고 여겨 자살사이트 ‘와이두유리브’를 기획한다.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기준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후 돈을 벌어 가정을 일궈야 하는 세상에선 자살이 가장 좋은 저항법이라 생각한 것이다. 세연은 세상을 향해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청년들이 세상의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자조한다.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을 방법은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세상이 정한 ‘정답’으로 바꿔 표백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연은 이미 완성된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 연쇄 자살을 기획 및 실행한다. ‘병권’ 역시 연쇄 자살에 동참하는데, 이를 눈치채고 그의 자살을 막으러 온 부모님 앞에서 끝내 자살을 선택하는 모습은 이 소설에서 비극성이 가장 극대화되는 부분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패배자’라고 여길 수도 있다. 표백되어야만 하는 세상의 불합리에 맞서지 않고 결국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청년들의 고단하고 절망적인 처지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표백』이 현 사회에서 노력만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끝내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한국이 싫어서』(2015)는 좀 더 희망찬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계나’는 20대 후반 여성으로 W증권에 다니던 중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도망치듯 호주로 떠난다. 계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사회가 원하는 조건에 못 미치는 대학을 졸업했기에 학벌에 자격지심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외모나 집안이 남들보다 낫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계나는 스스로를 이 사회에서 육식동물에게 쫓기는 초식동물일 뿐이라 자조한다. 그러나 도피하듯 떠난 호주에서도 계나는 온전히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 국수 가게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어학원을 다니고, 영주권을 따지 못할까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녀는 호주보다 한국에서 아이엘츠(IELTS) 점수가 더 잘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 계나는 방송기자가 된 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고 남들이 봤을 때 안정적인 삶을 얼마간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호주행을 택하게 되고 계나는 그 이유를 경제에 빗대 설명한다. 행복에는 이벤트와 같은 ‘자산성 행복’과 매일 소소히 느낄 수 있는 ‘현금 흐름성 행복’이 있다고 한다. 계나는 한국 사람들은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깊은 곳에 싸놓고, 자신의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를 버티듯 산다고 생각했다. 즉, 자산성 행복도 현금 흐름성 행복도 없는 삶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녀는 한 번의 큰 행복을 얻고 그 행복감에 젖어 고통을 견뎌내며 사는 것보다는 매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삶을 살고자 다시 호주행을 택한다. 계나의 첫 번째 호주행이 한국이 싫어 선택한 도피였다면, 두 번째 호주행은 행복을 찾아 나선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계나와 같이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탈출’이란 방법으로 행복을 찾아 나선 이가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행복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열광금지, 에바로드』(2014)의 주인공 ‘종현’이 이에 해당한다. 그의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순탄치 않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잘못된 보증으로 빚쟁이가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으며, 그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엔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경희’를 만나게 되고 만화를 좋아하는 그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미술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미술대학 실기 준비에 난항을 겪게 되고, 그 이후로도 각종 어려움에 부딪힌다. 힘들게 진학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으며, 일본계 IT 회사 취업을 준비하지만 금융위기로 일본 기업들이 일제히 채용을 중지하여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결심한다. 이에 대한 실천으로 그는 자신이 어릴 적 좋아했던 에반게리온의 월드 스탬프 랠리에 도전한다. 랠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부와 명예가 아니다. 얻는 것이라곤 소박한 상품뿐이지만, 종현은 완주 시 얻는 상품보다도 스탬프를 받기 위한 여행 그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고,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종현의 인생은 어렸을 때부터 위기였다. 그를 보듬어줘야 하는 가족은 금전적인 문제로 그를 괴롭혔으며, 취업을 준비하는 그에게 사회는 한없이 야박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묵묵히 견뎌내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을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많은 청춘(靑春)이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봄날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이런 암울한 사회에서 발버둥 치는 청년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을 보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겹쳐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독자는 장강명 작가의 세 작품을 통해 사회의 암담함만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등장인물 간의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공감이 독자에게 심심찮은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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