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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 인류사를 찍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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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
▲출처: pixabay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거듭된 발전을 이룩했다. 이른바 정보화 사회라고 불리는 오늘날 많은 정보들이 크고 작은 화면 속 온라인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과거 인류사에서 정보를 보존하고 공유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바로 지면을 통한 ‘인쇄술’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온 ‘인쇄술’은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역으로 각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발판으로 발전한 인쇄술엔 여러 학문의 발전과 사회상이 반영되기도 한다.

정보의 확산을 가져온 인쇄술
오늘날에 대중적으로 보급된 프린트기를 통해 우리가 가정이나 일터에서 언제나 무언가를 손쉽게 인쇄할 수 있는 건 오랜 기간 동안 인쇄술이 발전을 거듭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보다는 글자를 통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발전한 인쇄술은 크게 ‘단순 인쇄’와 ‘조판 인쇄’, 그리고 ‘활자 인쇄’의 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단순 인쇄’ 단계의 인쇄술은 날인(捺印)과 탁본(拓本)을 포함하는데, 이는 간단한 내용만을 인쇄할 수 있고 다량 인쇄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고대에는 단순 인쇄가 많이 사용되었는데, 실제로 고대?메소포타미아 문명과?인더스 문명 간에 단순 인쇄를 통해 인장의?교류가 이루어진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발전한 ‘조판 인쇄’는 글자나 그림 등을 판 표면에 새긴 후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기술이다. 이는 하나의 판을 통해 많은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새로운 내용을 만들 때마다 모든 글자를 일일이 새겨야 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사용하는 판은 나무나 금속 등의 재질이었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한국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868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후 인쇄술은 한층 더 발전한 ‘활자 인쇄’의 단계로 넘어갔다. 여기에서 활자란 인쇄에 쓰는 글자의 자형(字型)을 말하는데, 활자 인쇄는 기둥 모양의 나무나 금속에 글자를 새겨 활자를 먼저 제작한 후 그것을 판에 자유롭게 조합하여 원하는 문서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는 조합한 활자를 해체하여 또 다른 문서를 만드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지녔다. 이러한 활자 인쇄는 진흙 활자의 형태로 11세기 중국 북송의 필승(畢昇)이 처음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중국에서는 목활자인쇄가 발달했는데, 13세기 왕정(王楨)은 나무 활자의 단점을 보완해 『대덕정덕현지(大德旌德縣志)』와 『농서(農書)』의 간행에 이용했다. 금속 활자의 경우 현존하는 최고의 인쇄본은 바로 고려시대에 탄생한 『직지심체요절』(1377년)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동양을 중심으로 발전한 인쇄술을 알아봤다면, 이번에는 서양의 인쇄술을 살펴보자. 서양의 인쇄술은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에 의해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그는 인쇄를 하는 데에 있어 용지의 두께, 잉크의 농도 등 여러 환경적 요소들을 개선해 마침내 ‘활자 인쇄기’를 발명했다. 이러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유럽 사회에 정보 대량 생산이라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 이전의 서양 사회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베껴 정보를 복제하는 ‘필사’를 통해 정보를 복제했고 이를 통해 약 2개월 만에 1권의 책이 복제될 수 있었다면, 구텐베르크의 발명 이후에는 1주일 만에 5백 권이 넘는 책이 인쇄될 수 있었다. 이 영향으로 1450년부터 1500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유럽 사회에는 8백만 권에 달하는 서적이 쏟아졌는데, 당시 1500년까지 인쇄된 서적을 요람 혹은 유아기를 뜻하는 라틴어 ‘인큐내뷸러(incunabula)’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서양 사회에서의 인쇄술 보급은 정치적으로는 절대왕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을 이끌어냈으며, 종교적으로는 성서가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해 종교 개혁을 이끌어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이끌었다. 이에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발전한 인쇄술을 “복음의 전도를 가능케 해준, 신이 내린 가장 고귀하고 끝이 없는 자비의 표식”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구텐베르크 성서/출처: NYC Wanderer(Kevin Eng), 뉴욕공립도서관 소장
▲구텐베르크 성서/출처: NYC Wanderer(Kevin Eng), 뉴욕공립도서관 소장

가지각색의 특별한 인쇄술
‘인쇄’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많이 이들이 평소 흔히 사용하는 가정·사무용 프린터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이외에도 목적 및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인쇄방법과 인쇄기가 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다양한 장점과 매력을 지닌 다양한 인쇄술을 알아보자.

 

흰색은 어떻게 인쇄하나요? 별색 인쇄(Spot color printing)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쇄한 결과물의 흰색 부분은 잉크가 찍히지 않아 나타난 인쇄지 본래의 색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쇄기는 CMYK(시안, 마젠타, 옐로우, 블랙) 4도 인쇄기인데, 이에 사용되는 잉크들로는 흰색을 인쇄할 수 없다. 때문에 백색을 인쇄하려면 기본 4도에 ‘별색’으로 흰색을 인쇄해야 한다. 이러한 별색 인쇄는 기본 4도 인쇄에 더하여 특별한 별색을 사용하는 인쇄를 뜻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보통 인쇄기로는 인쇄하기 어려운 형광색, 금박, 은박 등 지정하는 모든 색을 인쇄할 수 있다.


새로운 예술적 효과를 원한다면, 리소 인쇄(Lithography)
리소 인쇄를 뜻하는 리소그래피란 본래 석판인쇄술을 뜻한다. 이는 1986년 일본의 인쇄기 회사 「리소과학공업주식회사」가 실크스크린 기법을 적용해 개발한 디지털 인쇄기로, 종이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도판을 만든 후 그 구멍에 잉크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리소 인쇄는 전기 소모량과 인쇄 비용이 적고 기계 자체의 크기도 작다는 장점이 있어 20세기 초반 교회, 학교 등 소규모 단체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예술가들이 소규모 생산이 가능하고 다양한 색의 잉크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리소 인쇄의 장점을 여러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리소 인쇄를 작품에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에서는 매해 리소그래피 인쇄를 이용한 다채로운 작업들을 선보이는 리소그래피 축제 <매지컬 리소 비엔날레>가 열린다.


포스터 같은 큰 인쇄물은 어떻게 인쇄할까, 플로터(Plotter)

 

▲플로터/출처: pixabay
▲플로터/출처: pixabay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A4, A3 용지 이외에 대형 포스터와 같이 더 커다란 규격의 인쇄물을 인쇄할 때 주로 사용되는 플로터는 보급형 프린트기보다 다양한 규격의 용지를 인쇄할 수 있는 인쇄기이다. 플로터는 기계 내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펜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기계의 크기가 크고 가격이 비교적 비싸지만 좀 더 자유로운 규격의 인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쇄술, 지면에서 사회로 나아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쇄는 종이, 즉 지면을 소재로 하지만 오늘날 인쇄술은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재에 인쇄가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 인쇄술의 탄생과 발전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나 최근에는 전자, 문화, IT?등 다양한 산업과 결합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각종 기계에 이용되는 금속인쇄, 도자기·유리 등에 사용되는 전사인쇄, 곡면이 있는 제품의 용기를 위한 곡면인쇄 등이 그 예시다.
특히 최근에는 전자분야에서 용액 상으로 공정이 가능한 기능성 잉크인 ‘전자잉크’를 통해 전자제품의 부품과 모듈 등을 만들어내는 ‘인쇄전자’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인쇄전자는 공정이 간단하고 설비에 대한 투자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어 제4차 산업혁명의 한 분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인쇄전자는 반도체, 자동차, 항공 우주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며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에 활자를 인쇄하기 위해 발명된 인쇄술은 이제 2차원의 지면을 넘어 3차원의 현실세계에서도 사용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향이 나는 향료 인쇄부터 특정 부분을 볼록하게 만들어 새로운 촉각을 전하는 융기 인쇄까지, 시각을 넘어서 오감을 만족하는 인쇄물의 발전은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이렇듯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인쇄술은 지식의 공유화를 넘어 경험의 공유화까지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우리의 상상력을 담아내는 인쇄술의 무궁무진한 발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참고문헌]
송성수, 『발명과 혁신으로 읽는 하루 10분 세계사』, 생각의힘, 2018.
오성상, 『인쇄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월간미술,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1999.
정수일, 『실크로드 사전』, 「인쇄술」, 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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