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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Literature - Novel

제44회 홍대 학・예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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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없다, 구름 없는 날은.> 
 

1

물기가 거의 없는 붓으로 칠한 듯한 하늘엔 아름다운 적란운이 떠 있다. 자운은 일어나 앉아 다다미를 손으로 가만 쓸어본다. 매미도 울지 않는 조용한 아침이다. 웅크리고 잔 탓에 뻐근한 어깨를 천천히 펴본다. 하늘을 바라보다, 다다미에 꼭 맞게 펴둔 이부자리를 접어 장안에 넣고 아침 정적 속에 앉는다. 오늘은, 이라고 시작되는 마음에 자운은 긴장감과 기대를 느낀다. 핸드폰을 켜 어제 이어 쓰다만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과거에 시작되어 미래에 완성될 문장들을 손으로 짚어보며 이제는 눈을 감아도 그려 낼 수 있는 그녀 사진을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人を探します, 자운은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현지인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린다. 짧은 말이 무게를 가지도록 그래서 사람들의 귀를 쉽게 스쳐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햇볕이 다다미 위에 창문 모양으로 그려지면 자운은 나갈 준비를 한다. 책상 위 수북이 쌓인 고라쿠엔 정원의 입장권 옆 남은 핸드폰 하나를 가방에 넣고 입을 옷을 고른다. 대부분이 리넨으로 된 셔츠인데 이제는 많이 마른 자운에게 좀 크지만 푸른 계열의 셔츠들은 자운에게 잘 어울린다. 거울 앞에 서 꼼꼼히 자신의 모습을 살핀다. 꼬옥 정면을 바로 바라보고 서, 맞은편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을 기다리듯 멀리 시선을 던진다. 그렇게 신중히 고른 옷과 가방을 방 한쪽에 두고 자운은 씻기 위해 하숙집 1층으로 내려간다.

 

살아갈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 위해 모든 걸 던져보세요.

그게 지금 자운씨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에요.

 

2

자운은 인서울하면 서울대 간 거야. 라고 말하는 세대다. 매년 수능 응시자 수는 줄어든다고 하지만 인서울의 벽은 높아만 가고 있던 시대였다. 그래도 자운은 그 벽을 넘었다. 모의고사 점수는 썩 좋지 않았지만 내신 점수는 꽤 괜찮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교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큰 사건 사고 없이 시간을 보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미친놈같이 술을 마시던 때도 있었고 시험 기간에는 밤을 새우며 도서관에 앉아 있기도 했다. 짧지만 연애도 해봤다. 2학년때쯤 잠깐 기울어진 집안 사정 때문에 휴학해 졸업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뒤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순간은 없었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자운은 국내 제약회사에 지원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1년 정도 더 취업준비 기간을 가졌으나 견딜 만 했다고 기억한다. 이것이 이미 지난 일 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인지 정말 그 당시가 견딜 만 했던 건지 기억은 흐릿했지만 이제 와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직을 결정했을 때 오래 고민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운은 시를 썼다. 작가가 되겠다거나 이것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되고자 하거나 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문득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 문장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핸드폰의 메모장을 켜서 적어두었다. 메모를 했었나, 잠시 문장을 잊을 때쯤 메모장을 열어 그동안 적은 문장들을 보고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들을 채워 적었다. 자운의 시들은 모두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시를 쓴다고 말한 적은 없다. 자운 스스로 자신이 시를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하는 건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들이고 자신은 그저 조금 예민한 것뿐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문장을 찾으면 소소한 행복을 느낄 뿐이었다.

첫 직장을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었다. 언제나 출근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한두 명씩 오는 직장 동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언제나 ‘피곤하다’라고 시작해서 ‘피곤해’ 로 끝나는 의미 없는 대화였지만 자운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티타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한 후 회사의 약과 관련된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이다 보니 다른 회사원들처럼 생활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실험 시간이 길어지면 퇴근 시간도 늦어지고 써야 할 보고서도 늘어났다. 그럴 때면 자리에 앉아 자운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시를 썼다.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실험기구들 속에서 핸드폰을 두 손에 쥐고 한 문장 한 문장 내려 적었다.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들 중 점심시간을 좋아했다.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누군가의 밥 먹는 속도에 숟가락 올리고 내리는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색하고 밥을 먹는 건지 시간을 먹는 건지 답답했지만 적응되고 나자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밥이 아니었다. 그 후에 있는 사람들과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 중요했다. 옥상에서 또는 회사 1층 흡연 구역에서 팀원들과 지내는 시간이, 그 유대감이 좋았다.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구나, 나를 나타내주는 고리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기분이 자운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렇게 그만둘 이유가 없어 보이는 직장을 그만두게 된 건 주 업무인 실험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피부가 얇고 약한 자운은 약품을 자주 만지는 실험일이 건강을 해쳤다. 피부과를 다니고 실험을 할 때마다 더 조심했으나 자꾸 얼굴에 버짐이 생기고 손은 흉해져 갔다. 건강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일이다 보니 이직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 내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만약 실험일을 포기한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의 제약회사에 지원해 합격할 가능성이 있었다. 친구들이 회사에 합격했을 때 일단 3년만 버티자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조금 부끄러웠지만, 이직 준비를 하기로 결정했다. 자운은 이 선택이 자기 삶의 색을 바꾸리라는 것을 이때까지 몰랐다.

 

3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하고 집에서 일주일 정도 안정을 취했다. 죽이 아닌 밥알을 넘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자운은 아직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고등학생 때 그녀가 살던 주공아파트로 향했다. 잊을 수 없는 주소. 벗어날 수 없는 번호. 하지만 벨을 눌렀을 때 자운을 맞이한 건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고 이사 온 지는 3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자운은 인사를 하고 단지 벤치로 가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다음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한 자운은 노을이 질 때의 주공아파트를 보러 매일, 같은 벤치로 향했다. 노을을 배경으로 서있는 아파트를 보며 마음이 내려앉는 것을 가만 느꼈다.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아니라 맑은 물에 물감이 묻은 붓을 담근 것 같았다. 천천히 이곳저곳으로 방향을 알 수 없게 퍼져가며 내려앉았다.

그녀는 SNS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 기록이 2013년 9월 6일이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사용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문과, 자운은 이과. 과도 반도 달랐기에 그녀의 최근 소식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자운도 SNS을 하지 않았다. 이제 와 가입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자운은 지는 해가 10분 정도 더 길어졌을 때쯤 학교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했던 생각이었지만 개인정보에 예민한 요즘 세상에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실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식한 방법이었다. 다짜고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싶습니다. 라니 80년대에 어울릴 법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자운이었다. 이 정도에 멈춘다면 그때 그렇게 눈뜨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부터 애먹었다. 학교 정문에 있는 경비원이 막아섰다. 졸업생이라고 이야기해도 쉽게 믿지 않았다. 결국 몇 년도 몇 반이었고 담임선생님의 이름까지 말하고 나서야, 그래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교실들의 배치는 그대로였다. 교무실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당황스러웠던 건 자운이 학교 다닐 때 계시던 선생님들이 몇 분 안 남았다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기신 건 알았지만 잘 챙겨주시던 생물 선생님도 매일 까불어도 받아주시던 사회 선생님도 계시지 않다는 건 몰랐다. 1, 2, 3 학년 교무실 밖 선생님들의 배치도를 계속 확인하다 3학년 당시 옆 반 선생님이 계심을 알고 2학년 교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난감하다는 반응이었다. 학교에서 그런 정보를 함부로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연히 알고 왔지만 너무 쉽게 막혀 자운은 허탈했다. 교무실을 나서며 자운은 3학년 교무실로 향해 그녀의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안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번호라도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쉽게 얻어냈다. 자운은 자신이 이렇게 꾀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4

실험 일을 포기하지만 그 분야에 전문 지식을 이미 배웠다는 것이 자운의 무기였다. 같은 제약회사 계열에서 서류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이직 사유가 단순한 변심이나 부적응 등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운은 유리한 입장이었다. 연봉에 조금 욕심을 내서 새로운 회사를 찾았고 이직에 성공했다.

같은 계열의 일이지만 서류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일을 금방 배운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자운이지만 잘 다뤄보지 않은 프로그램들이나 빠르게 처리해 나가야 하는 일들은 조금 벅찼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던 동기 여직원이 있었다. 바로 뒷자리이기도 했고 싹싹한 성격이 자운을 첫 회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이상해졌다. 자운은 메신저로 연락받은 것이 없는데 팀원 전체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시간에 움직였다. 팀원 전체가 움직이니 자운도 따라나섰지만 지금 어디를 가는 건지 뭘 하러 가는 건지 모를 때가 종종 있었다. 점심시간 식당이 그랬고 회의실의 숫자가 그랬다. 처음엔 실수가 있었나보다 싶어 담당하는 동료에게 연락을 못 받았다고 여러 번 얘기를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노골적으로 자운을 피하는 것 같은 기분에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내 보기도 했지만 전부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계속 같이 다닐 수 있었던 건 그 여직원이 자운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자 자운은 상사에게 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물어봤다. 오 상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자운을 안심시켰다.

그러다 자운이 뒷말을 듣게 됐다. 오 상사가 자운이 사내연애를 하고 있다, 회사 분위기를 망치니 해고해야 한다며 자운과 함께 다니거나 정보를 주지 말라고 지시하고 다닌 다는 것 이었다. 그 상대는 자운을 챙기는 여직원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소문에 그나마 동네가 비슷해 가끔 술을 마시는 2팀 남자 동기에게 이 얘기를 털어놓자 네가 너무 튀었어. 라고 말했다. 오 상사가 그 여직원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이야기였다. 자운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도 눈치 하나 만큼은 빠르다고 생각했던 자운이었는데, 당연히 오 상사는 결혼을 했고 회사생활 적응에 많은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 호의를 많이 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원치 않은 호의가 경고였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조심해, 라며 위로인지 위협인지 모를 말을 들으며 자운은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 상사는 유치하고 계획적이며 노련하게 자운을 괴롭혔고 눈치껏 끼고 빠지는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운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는지 오 상사는 자운에게만 반차를 쓰더라도 팀원 전체에게 확인을 받고 쓰라고 했고 회식 자리에선 자운씨 앞에서는 말조심해야 돼 라며 대놓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 여직원도 자운을 피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다. 친구도 동기도 심지어 가족도 자운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때. 모두 회사의 탓이 아니라 자운의 탓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운은 그때를 가장 외로웠다고 기억한다, 설마, 심지어, 어떻게 라는 부사어와 함께 존재하는 몰이해의 순간들. 20대 초반부터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닌 일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편하게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움이 되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 매일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일상이 지옥이 된 순간, 회사에 나가면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담배를 피웠다. 사무실의 불은 자운이 켜고 자운이 껐다. 오 상사는 티가 나게 자운에게 더 많은 일을 넘겼고 모두 그것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자운은 다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찍히면 저 꼴 난다. 남녀 사이에 일은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이게 오 상사의 라인이 탄탄했기 때문에 더 심했다. 줄타기와 물타기 그 사이에서 자운은 계속 허덕였다. 

 

 자운씨 이번 주는 어땠나요?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우울증을 겪는 작가들이 몇백년 동안 사람들 입에 회자될 대작을 써낸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자운의 우울은 심장에 칼을 꽂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너무 거대한 칼이라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무거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꽂혀 있는 칼은 걸을 때마다 흔들리며 심장을 계속 찢어냈다. 아무 일이 없어도 눈물이 났다. 너무 아팠다. 뽑고 싶어도 뽑히지 않을 검. 자운은 이렇게 자신의 일주일을 설명했다. 의사는 너무 추상적인 표현에 난감해 하면서도 이해한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회사를 다닌 지 3개월, 병원을 다닌 지 3주 만에 자운은 자살 시도를 했다. 불면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는 어머니의 약을 몰래 한 알씩 빼돌렸다. 병원에서는 13일 뒤의 진료를 위해 15일치의 약을 처방했고 남은 약들은 자운이 몰래 조금씩 빼돌렸다. 50살이 넘은 어머니는 그저 약이 평소보다 조금 남는구나 하며 넘어가고 있었다.

회사 근처 모텔방을 하나 잡았다. 1.5L 물 하나와 지금까지 모아둔 약들을 챙겨갔다. 햇살이 따듯한 점심쯤이었다. 회사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운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알약들을 한움큼 집었다.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 삼키려 했다. 너무 많이 집어넣은 약들에 물을 뿜어버리고 말았다. 자운은 울었다. 무엇하나 쉽지 않다는 것이, 제 목숨 하나 마음대로 끊지 못한다는 게 억울하게 느껴졌다. 뱉어낸 물과 녹다 만 알약들을 휴지로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알약을 세 개만 집었다. 이번엔 삼켜냈다. 몸이 약을 견디지 못할 만큼 먹어야했다. 3알, 9알, 17알 계속 삼켜냈다. 약효가 퍼지려면 적어도 30분은 걸리니 모아뒀던 모든 알약을 다 먹은 후에도 바로 눈이 감긴다거나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그러진 않았다. 걷기는 좀 힘들었는데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서서히 느껴지는 토악질할 것 같은 기분과 어지러움, 양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때 묻은 벽지 속 적색의 꽃문양들을 바라보았다. 유서는 쓰지 않았다. 자운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기분에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죽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할 뿐이다. 세상엔 이유 없는 감정이 수만가지 존재한다.

 꽃문양, 유서, 오늘의 구름을 생각하다,

 그때.

 쨍한 햇빛아래 검정 단발머리를 한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자운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핸드폰을 들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5

자운은 그녀를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처음 봤다. 그때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벚꽃 나무에 앉은 작은 새를 본 것 같았다, 고. 그녀와 자운은 고등학생 때 다른 동네를 살았다. 둘이 함께 다니던 학교는 위치가 애매한 곳에 있어 여러 지역의 학생들이 모였다. 자운의 집에서 그녀의 집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서로 나온 초등학교도 다르고 중학교도 달랐다. 이렇게 연고도 없는 두 사람이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전 노을이 질 때 서로 두 손 꼭 잡고 학교 앞 내천을 걷기도 했던 건 자운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운의 “스쳐 지나가지 말아줘” 라는 말이 자신이 자운 옆에 있어야겠다. 고 마음을 톡톡 건드렸다고 했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짧았다. 결국 그녀는 자운을 스쳐지나갔고 자운은 날아가는 새를 바라만 보았다.

자운은 학교에서 받아온 그녀의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담임선생님은 자신도 제자들의 번호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그 당시 반장이었던 학생의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반장과 안면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 내내 자신의 반처럼 들어와 그녀와 웃고 떠드는 자운이었기에 안면이 없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반장은 자운의 상황을 끝까지 듣고 먼저 연락을 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짧은 만남 중에 나뭇가지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던 따듯한 날이 있었다. 그날 그녀는 처음 단발을 하고 자운을 만났다. 혜화역 2번 출구에 먼저 도착해 거울을 보고 있던 그녀의 뒷모습을 자운은 잊지 못한다. 둘은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서 밥을 먹고 봄 햇살을 받으며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그녀는 목소리가 작았다. 그리고 웃을 땐 항상 입을 작은 손으로 가리고 조용히 웃었다. 날이 좋아 공원에 거리 공연하는 팀들이 많았다. 그래서 소란스러웠는데 그 안에서 자운은 그녀의 작은 목소리와 조그만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 꼭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때 그녀의 눈동자 색깔, 햇살을 담아 조금 밝은 갈색으로 변한 그 색깔을 자운은 기억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난 후 둘은 함께 낙산공원에 올랐다. 둘은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천천히 공전하는 두 천체처럼 걸었다. 성곽에서 바라본 해 질 무렵 하늘엔 하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일주일 뒤에 반장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의 번호가 바뀌어있어 바로 연락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예전에 동창회를 하려고 했을 때 그녀만 따로 연락이 되지 않아 그녀의 친구들에게 대신 연락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5명의 친구 중 단 한명만 그녀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얼마나 자주 그러는지는 몰랐지만, 가끔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낀 사람이 사람들을 정리하듯 연락처를 바꾸고 주변인 중 몇 명하고 만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인 것 같아 그녀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이번엔 아무도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가장 최근 소식은 그녀가 지금 일본에 있고 거기 카페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1년 전 일이었다. 반장은 미안해했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자운은 고맙다는 말만 남겼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카야마라고 했다. 자운은 오래된 캐리어를 찾아 꺼냈다.

비록 그녀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자운은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타나 낙인 같은 것을 찍고 지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랑말랑한 마음과 아직은 익지 않은 머릿속을 가지고 있을 때 그녀는 자운의 여기저기에 몸속 가장 작은 세포에까지 그녀라는 이름을 새겼고 시간이 흐를수록 새겨진 이름은 점점 짙어져 갔다.

오카야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자운은 호텔이 아닌 민박이나 하숙집들을 알아보았다. 돈은 퇴직금과 지금까지 모아뒀던 돈을 모두 모았다. 더 이상 뒤가 없는 자운이었다. 모든 행동에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만약이라는 단어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오카야마로 향하는 짐에 고등학생 때 쓰던 핸드폰도 챙겼다. 그 안에 메모들은 모두 그녀가 있어야 완성되는 글들이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자운은 다시 그 메모들을 살펴보았다.

 

6

人を探します, 그리고 사진 한 장. 자운은 오카야마의 카페란 카페는 전부 수소문했다. 처음엔 인터넷에 검색해 나오는 카페들을 위주로 돌아다녔다. 반장에게 받은 가장 최근 사진과 번역기를 돌려가며 만든 메모장을 가지고 카페에 들어가 사장님에게 또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무작정 물었다. 눈치가 보여 커피는 꼭 시켰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에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양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사람을 찾는 일이 가능하겠냐고 한심하다는 말을 돌려 말했지만 자운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오카야마에는 고라쿠엔이라는 큰 정원이 있었다. 찾다 지칠 때면 그 정원에 들어갔다. 주변 나무들이 낮아 구름이 잘 보이는 정원이었다. 크기도 커서 어디에 앉든 매번 새로웠다. 자리에 앉아 낮게 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자운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을 꺼내 보았다. 어느 문장에선 그녀의 눈동자 색깔이 떠올랐고 어느 문장에선 그녀의 긴 머리가 떠올랐다. 정원 안에는 오카야마성이 있었는데 가끔 전망대까지 올라가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그리고는 했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라 불리는 곳도 자주 걸었다. 흰 벽으로 칠해진 가옥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을 걸으면 그녀 생각이 더 간절해지고는 했다.

자운이 오카야마에 온 지 3주쯤 되자 이제 고라쿠엔 정원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은 자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정원으로 들어선다. 그녀를 찾는 일은 진전이 없었다. 대신 핸드폰에 글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제 몇군데 남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후면 오카야마의 모든 카페를 다 돌아다닌 셈이 될 것이었다. 

마지막 카페를 남겨둔 밤, 꿈을 꿨다. 고라쿠엔 정원에 앉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고 있었는데 안개가 끼듯 구름이 내려앉아 온 세상을 덮었다. 그리고 자운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으로.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자운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았다. 햇살은 하얀 구름들을 눈부시게 만들었고 구름을 품은 하늘처럼 파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을 더 쨍하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자운은 그녀를 붙잡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따라갈 뿐 이었다. 자운이 조금 뒤처지면 그녀는 잠시 멈춰 뒤를 살짝만 돌아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게, 검은 단발머리가 볼을 가리고 코끝만 보이게 돌아보았다. 걸어가는 길에 다리를 건너는지 물소리가 들렸고 오리들의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때로 시원한 바람이 불면 구름이 조금 걷혀 그녀의 뒷모습이, 하얗고 곧게 뻗은 다리와 얇은 팔이 눈에 더 선하게 보이고는 했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자운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할 때, 세상을 덮었던 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그녀도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차도 한가운데 였다. 그 넓은 고라쿠엔 정원을 벗어나 여기까지 오는 길에 물에 빠지지 않고,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차와 전차에 한 번도 치이지 않았다는 게 기적이었다. 그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다음날 자운은 마지막 카페를 찾아가지 않았다.

 

7

온 세상을 덮은 구름들은 물을 촉촉이 먹은 붓으로 그린 듯했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운은 누워 익숙한 이불 속에서 팔을 꺼낸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좀 더 잘 생각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오늘은, 이라고 시작되는 마음에 자운은 여유로움을 느낀다. 편안하게 똑바로 누워있다 완성된 문장들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든다. 과거에 시작되어 이제는 완성된 문장들. 능숙하게 발음하는 人を探します, 나직하게 말해본다. 병원 예약은 오후 2시다. 신촌까지 가야 하므로 12시에는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혹시 짧은 꿈이라도 꿀까 누워있었지만 그냥 일어나 앉기로 한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빗방울이 조금 방안으로 들어온다. 창문을 닫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날이 조금 추운 것 같으니 얇은 가디건을 하나 챙겨야겠다고 생각한다. 잠깐 눈을 감고 그녀를 그린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자운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진다.

 

만나고 오셨나요?

그녀를 위해 살았잖아요, 실제로 보고 오니 어땠나요. 

 

그녀는,

 

(끝)

 

최우수 당선소감

이정훈(정보컴퓨터공학부2)

어떤 단어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의 수상 소감을 찾아봤습니다.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을 받은 사람부터 어느 궤도에 올라 몇 번째고 인정받는 사람들까지요. 그런데 그들을 말을, 글을 오래 보아도 어려워 공원에 가 가만 앉아있었습니다. 이제는 6시만 되어도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다 문득 내가 말해야 하는 건 감사와 다짐이구나 싶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심사해 주신 교수님께 허리 숙여 감사하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겠다고 깊이 다짐합니다. 또 나를 위해 멀리 날아가 이야기를 이끌었던 주인공 자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수상소감을 말로 했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네요. 수상소감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듣고 보는 이에게 감동까지 주는 사람들이 참 부러운 순간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글로 오래 회자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수

<마침표>

 

1

 

호칭은 무엇이 좋을까

 

쿵덕

쿵덕쿵

 

떠오르는 두 개의 이름 중 그에게 걸맞은 것은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을 때는 뭐라고 불렀더라 스치듯 지나간 날까지 만남으로 명하는 건 양심에 걸려, 서로의 눈을 제 것에 맞추어 인사를 주고받았던 마지막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좌측으로 바늘을 빠르게 잡아당기던 소리가

 

똑딱똑딱똑딱

똑딱똑

 

차츰 멎어들더니

 

 

 

아는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적였던 그 날, 그 순간,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남녀가 온 시공간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검고 흰 인파들 사이에 교복 입은 학생 하나가 보인다 넋이 나간 듯 식을 관람한다 문득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진심을 꼭꼭, 꽉꽉, 가드윽 담아 신랑 신부가 함께할 날들을 축복한다

수험생은 식장에서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부로 부부가 된 이들이 예뻐 보였던지,혹은 간만에 학교 문턱을 벗어나 맞은 기쁨이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환한 웃음으로 대했더랬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2

 

결혼식장의 수험생은 기억 속에 건재하다

 

‘안녕하세요?’ ‘언니, 잘 지냈어?’ ‘야, 진짜 오랜만이다’

상대를 대하는 어색함과 익숙함의 정도는 가지각색이었으나 교복 입은 학생의 표정만은 일관되었다 그를 마주했을 때에도 다를 건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 날에는 별다른 호칭을 붙이지 않았던 것 같다

 

 

3

 

호칭을 정했다

선생님이 좋을 것 같다

두 명칭 중 무게가 가벼운 것을 택했다

누굴 위한 결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도 그에게도 가벼운 선택임은 틀림없다

 

 

3

 

선생님은 누구나 알아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건, 그 실력보다도 삶의 무게에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겸손하다면 겸손할 그가 가끔 오래된 무용담을 거창하게 늘어놓아도 흘려듣지 못할 든든한 학력,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눈매와 남녀노소를 사로잡는 인상, 일리 있는 단어 선택과 조리 있는 언술, 그것들이 선생님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그 광채는 모두의 눈에 선명했고 특히 한 아이에게 그러했다

 

 

4

 

한 아이, 그러니까 동생은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어린 아이가 ‘정신적인 지주’라는 용어를 아낌없이 남발하며 후회 없이 칭송했더랬다

 

시간과 정성 마음 돈

무엇 하나 아끼지 않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동생의 순박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참 못마땅스러웠다

 

 

5

 

기억의 파편들이 제 둥지를 찾아 돌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저번 날 제가 큰 사고의 일부였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도, 조각들을 하나 둘 모아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그 순간도 쉽지 않다

차마 느낄 새 없이 지나쳤던 아픔까지 미래의 제가 떠맡는다

 

 

6

 

그날 이후로는 다시 그려보지 않았던 결혼식장의 기억을 헤집어본다

 

 

선생님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여느 연출된 화면들은 출연자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제공하다 못해 대사와 순간의 호흡까지도 준비시킨다

나에게 여유로운 연출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그와 눈을 맞추고 그의 발코에서 50미터 앞, 리허설 한번 없이 날 것의 순간을 맞아야 했던 나는

웃었다

잘 지내셨냐고 물었고, 저는 잘 지냈다며 미소로 대답했다

 

그게 다였다

 

 

7

 

선생님은 동생에게 스승이자 친구였다 조언자가 되기도 했지만, 때에 따라 부러 말을 아끼는 Listener이기도 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이들은 신선한 지적 자극에 놀라워했고 행복해했으며 그 이상의 것을 갈급해 했다 그를 만나기 전날 동생의 얼굴에는 은근한 붉은 빛이 감돌았고 만남 후 얼굴 위에 선명해진 밝은 빛은 한동안 동생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때문에, 정작 나는 그를 그다지 따르거나 그 행복을 맛본 적 없지마는, 그의 가르침에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탁월함이 곁들어 있다며 주변에 그의 명성과 가르침의 효과를 은근히 자랑하고 설파하곤 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이해되지 않아 탐탁지 않은 날도 허다했지만 네가 좋으니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네가 누리는 기쁨에 대한 부러움이 한가득인 때도 잦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을 소개할 때면 내가 누리는 행복인 마냥 거창하지만 무심하게 말을 늘였다 진심 혹은 정성 없이 길어지는 대화의 핵심은 단연 그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문장 한 줄이었다

 

‘내 동생 선생님이셔’,

 

혹은 한 어절로 귀결되었다

 

‘외삼촌이거든’

 

 

8

 

용기가 생겼다,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느 하루는 내게 허락된 유일한 실마리다

 

평소에도 종종 전화를 붙들고 제 지인들과 긴 사투를 벌이던 동생이었지만 그날만은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상대가 누구였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지만 오가는 내용보다는 불규칙하고 미세한 흐느낌이 방문을 뚫고 전해왔다 전조는 삽시간에 현실이 된다 곧 방문을 열고 들어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던 동생의 얼굴은 붉디붉었다

친한 친구의 집에 며칠 정도 묵고 올 것 같단다 그러라고 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놀라지 않은 척,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동생이 친구 집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때는 저녁 9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그러다 다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동생이 내게 통보했을 때 하늘은 이미 짙은 곤색으로 그늘져있었다

 

여전히 불규칙적이지만 이젠 갈라지기까지 한 목소리가 내는 한층 격앙된 흐느낌은 다음 날까지, 그 다음 날까지도, 그리고 한동안 이어졌던 것 같다

 

 

9

 

솔직해지자

선생님이 나에게 직접 잘못을 가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선생님과 동생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일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물집 하나 없던 동생의 인생에 검붉은 상처를 남겼다 동생은 자주 내 방에 들이밀던 얼굴에 커튼을 쳤고 제 방에도 블라인드를 내렸다 아이는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저울은 본능적으로 중심을 잡는다 그러나 이미 어긋난 균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저울 양팔에 자극이 필요했다 혹은 한 측의 희생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동생과 늘 함께였고 동생이 속한 저울의 한쪽 팔이 되기를 자처했다 내 맞은편의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동생의 무게가 가중될수록 내 팔에 무게를 더 얹었다 동생이 눈물샘을 제어하지 못할 때면 나도 함께 쏟아내었고 동생의 그릇이 쓰라릴 때면 내 것에도 같은 결의 감정을 자극했다 마치 투명망토를 쓰고 찾아온 악당에게 이곳저곳을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원인 없는 결과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래서 원산지 없는 아픔은 어디서도 당당할 수 없었다 무게는 동생이 짊어진 만큼이나 상당했고, 아니 감히 말하건대 그 이상 버거웠다

 

그러나 저울의 미동이 동생의 내상을 아물게 하는 건 아니었다

 

 

10

 

작은 동그라미, 아니, 점 하나 찍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던지 ‘여기까지’ 하고 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조곤조곤하고 덤덤하게 상황과 생각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아직은 편히 쉴 거처를 찾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줄곧 마침표 찍기를 감행했다

 

동생은 이제 괜찮다고 했다 용서했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괜찮다는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줄곧 실패했다

 

일단락했다고 장담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아직 꼬리를 떼지 못한 덜 익은 쉼표였다, 각진 마침표와 속이 텅 빈 마침표들도 무수히 찍어보았으나 흐르는 물 위에 그렸던지도 모르겠다

제가 인정한다고 마침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11

 

꿈속에서 동생이 서늘한 얼굴로 선생님을 향해 검지를 들고 창백한 욕 한마디를 던졌다 무의식 중에 제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동생의 속사정이 겉으로 분출되었으면 하는 나의 희망고문이었다 그러나 동생을 통해 실현되기는커녕 나의 의식조차도 내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과 동생, 심지어는 나 자신의 눈을 속일만한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다

그 이상의 교류는 없었다, 그게 다였다

 

 

12

 

유난히 밝고, 아니 밝기보다도 해맑아 늘 긍정적이고, 항상 감사할 줄 알았던 결혼식장의 그 학생은, 후에 고백하길 조금은, 아주 조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전부 거짓은 아니었다 분명 많이 행복했고 그래서 많이 감사했다 (거짓 한두 줌을 보탰다)

하지만 분명 많이 아팠고 그래서 많이 버거웠다

 

‘왜, 언론은 진실을 말했다고 제 책임을 완수한 게 아니란다

두루두루, 구석구석, 위로 아래로, 음지에 감추어진 부분까지 빛을 비추어야 한단다’

 

우리가 시청한 뉴스는 분명 해당 날짜에 명시된 장소에서 발생한, 보도된 바와 다른 점 없는 팩트였다 그러나 빛을 받아야 했던 또 다른 이야기들이 한 줄기의 빛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아는가

그렇게 또 다른 감정들도 빛을 기다렸다 나도 언젠가는 꺼내어주기를, 어느 날에는 밝은 조명에 비추어 내 존재를 인정해주길, 밝은 빛을 내는 감정들에 그저 묻히지 않기를

 

세상에는 밝은 따뜻함과 어두운 따뜻함이 있다

아이는 어두운 것이 따뜻할 수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나보다 제 머리 위에서 쉬지 않고 쌓여가는 밝고 따뜻한 것들 덕에, 속에서 억눌려 하나로 뭉치고 굳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어두운 빛을 내는 감정들도 따뜻하게 보듬어지고 따뜻하게 태어날 수 있었다

 

한 줄기의 빛을 받아 한 줄기의 따뜻한 감정으로 탄생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 하나의 결을 끝내 만나지 못해 제 위에 쌓인 다른 감정들이 순차적으로 긁어 내어지고 어느 세월엔가 튼튼한 지반으로 발견된 후에야 넓게 비추는 손전등을 따라 거대한 폭탄으로 빛을 보았다,

세상에 드러났다

 

 

12

 

그날 그게 당연한 줄로 알던 아이를 위로한다

마음의 무게와 방향은 중력과 한 몸을 이루었지만 제 입꼬리 하나쯤은 중력을 이길 수 있다며 힘겹지 않은 척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렇게 웃어보겠다고 자처한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기억 속의 꼬마가 불쌍해 시곗바늘을 ‘분노’에 맞추곤 이제는 분노할 때라고 중얼거리던, 어린 자신을 제 눈앞에 세워 마치 아이의 엄마나 언니가 된 양 네가 억눌렀던 그 모든 감정을 내가 대신 내뱉어 줄게, 하며 힘을 모아 불을 뿜었던

성인이 된 아이를 다독인다

 

다 컸다고 자부하던,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렇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의 짐 모두를 어깨에 들쳐 메었던,

그 아이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짐이 너무 무거웠으며 아이는 여전히 너무 어렸다 나이가 들어도, 짐이 가벼워져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으리라

 

일 처리에 능숙한 사람들도, 이 정도는 거뜬하다며 자신했던 이들도, 묵묵히 짐을 지고 짐을 내려놓고를 반복했던 이들도, 스스로가 어른인 줄만 알았던 어떤 이도, 뒤돌아보면 그저 아프리만큼 힘주어 안아주고 싶은 어린아이였다는 것

 

 

13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그러나 참 진리였던 모순의 논리 두 가지가 여기에 있다

 

논리 하나,

 

나는 동생을 사랑한다 동생은 나를 사랑한다

동생이 아픈 게 나를 아프게 한다 동생으로 인해 아픈 나를 보는 건 동생을 아프게 한다

나는 그렇게 가해자가 된다, 동생을 힘들게 하는 가해자가 되었다

사랑해서, 사랑하는 이에게 해를 가한 스스로를 피고인의 자리에 세우고, 제가 사랑하는 이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논리 둘,

 

동생이 아팠고 내가 아팠던, 그리고 그래서 다시 동생이 아팠던 이유는 모두,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결론이 어떠했든 이 모든 시작점은 사랑이었다 이게 가족을 이룬다

그래서 첫 번째 논리는 아름답다

너를 향한 나의 사랑과 나를 향한 너의 사랑

서로를 가해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서로를 위해, 서로로 인해 아파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양날의 검의 살기가 뻔히 보이는데 우리는 양단을 한 축씩 부여잡는다 한때 아팠지만 지금은 모든 게 사랑임을 알기에 행복하다

 

살기 어린 검을 내려놓을 수 있던 것도 보이지 않는 악을 용서할 수밖에 없던 것도

사랑이었다

매 순간 깊이 패어 가는 상처까지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게 동생을 찌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결국 내가 먼저 손을 놓았고, 더 이상 무기를 스스로와 나에게 겨눌 이유가 사라진 동생도 제 손을 놓았다

 

 

14

 

한동안 상담을 받았다

몇 시간 몇 차례에 걸쳐 지난 얘기들을 하나둘 꺼내어 보였다 조용히 듣던 상담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참 복잡한 감정이네요’

 

그 한마디로 진득한 고체에 갇혀있던 이들은 제 존재를 인정받았다

빛을 봤던 것이다

 

 

15

 

그냥 그렇게 되었다 한 다리를 건너 선생님과 연락을 한 차례 주고 받았고, 약속을 잡았고, 그게 오늘이 되었다 연락을 한 것도 약속을 잡은 것도, 만나러 가는 지금의 발걸음도 모두 내 의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강제성은 없었다 미묘한 감정은 내 심장과 얽혀 오묘한 박동을 만든다

 

 

16

 

동생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했다던 사람은 내 앞에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씁쓸하지만 분명 눈꼬리가 아래로 접힌 얼굴과 웃고 있는 입으로 ‘사과’의 단어를 꺼낸다

참 사람 좋은 눈매다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었는데,

카페 창을 통해 비친 나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있다, 그토록 짓고 싶었던 표정을 마주하니 만족하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상대를 이기기 위해 시작한 대화가 아니었기에 할 말을 3번 남짓 머리 속에서 되뇌어본다 그러고도 한 번 더 생각하고는 런웨이 위의 다리 저는 모델처럼 또각또각, 또박또박 말을 뱉어낸다

 

 

더 이상은

그런 실수 안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

 

 

삼촌이요

 

큰삼촌?

 

아니요 삼촌이요

 

나?

 

 

 

만나기 전부터 결론은 정해져있었다

화해를 하기로, 만약 용서라는 게 가능하다면 그것까지도 하는걸로, 다만 그 사람을 위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정말이지 나를 포함해 내 아픔으로 인해 아파했던 자들과 이 만남의 자리로 나를 이끈 누군가를 위한 용서였지만 세상 어느 누구를 위했더라도 그를 위한 일은 결코, 맹세코 아니었다

 

이제는 동생도 엄마아빠도 모두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이제는 정말 마음 깊이부터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두 치유해주세요

나도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나도 이제 안 아프고 싶어요

 

그렇게 기도는 끝이 났다, 나도 마침표를 찍었다

 

 

 

Epilogue 1

 

이제는 동생도, 엄마와 아빠도 모두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이제는 정말 마음 깊숙이 잠겨있던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두 치유해주세요

나도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나도 이제 안 아프고 싶어요

삼촌도 안 아프게

 

안 아프게

 

...

 

누가?

 

간절하게 주문들을 뱉어내던 입술이 빨강 불을 마주했다 신호 고장인가 싶었지만 금새 초록 불을 밝히고 입술 가장자리에 긴 호선(弧線)을 긋는다 내 입으로 뱉어냈다 방금

 

내 사랑이 조금 커졌나보다 아니, 완전한 액체는 아니 되어도 젤리 속에 담긴 사랑 한 움큼의 사정거리에 닿았던지, 꽤 멀리까지 흘러내리나 보다 가득은 아니어도 그에게도 닿고 나에게도 메아리로 되돌아올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사랑이 담겼나 보다

(이제 정말 끝을 맺을 수 있어)

 

 

Epilogue 2

 

어불성설의 논리 둘을 기억하는가

 

그렇게 온갖 모순덩어리들을 떠안은 우리는 각자의 손이 기억하는 칼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여전히 손은 뒷짐을 지고 서로의 눈을 가린다 그리곤 너나 할 것 없이 질문이 오간다

 

‘삼촌이랑 만나고 나서는 괜찮 .. 다 나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지고 있지?’

 

그리고 너나 할 것 없는 답변이 오간다

 

‘.. 응’

 

얼떨결에 내 눈까지도 피해 등 뒤로 숨은 내 손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새 살을 찌운다

 

 

Epilogue 3. 내 마침표

 

내가 물어봤더랬다

아니, 투덜거리고 원망했더랬다

 

난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아직

내 마음은 너무 좁고 아직 내 상처를 치유할 자신도 없어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채워줄게

내가 치유해줄게

 

 

이야기의 구성과 생김새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무수한 감정들은 모이고 모여 같은 결을 이루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리라

그리고 어느 날엔가 각자의 마침표를 찍겠지

내 마침표는 여기에 있다.

 

우수 당선소감 

박다희 (예술학과 3) 

이 글은 단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 그래서 어설픈 표현들과 각색이 불특정 다수에게 읽힌다는 게 더 많이 부끄럽다. 얼떨결에 공개적으로 떠나보내게 되었으나 욕심이 난다. 세련되지 못한 생생함과 진솔함으로 누구나 하나쯤 뒷섬에 감추어 놓았을 법한 숨겨진, 세련되지 않은 이야기가 공감받고 위로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표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마침표 하나로 끝을 맺지만, 정작 글이 조명하는 건 마침표가 아니다. 마음에 드는 둥글고 꽉 찬 마침표는 앞선 수많은 쉼표들을 필요로 한다. 극 중 ‘나’의 각 에피소드 사이에는 더 긴 공백과 쉼표들이 존재했을 거다. 각자에게 필요한 쉼표의 개수와 쉼의 기간은 다르다.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들이 속속들이 빛을 받을 때까지 다양한 쉼표로 일관해도 된다는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란다, 기왕 욕심낸 김에 하나 더 얹어, ‘나’와 나를 위로한 ‘그’가 당신에게도 와닿길 바란다.

 

우수

<유령은 뼈가 없다>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해야 할 때 나는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늘 고민이었다.

애인, 남자친구, 오빠, 걔, 그 분, 그 사람, 그 남자, 경수…

최대한 가치중립적이고 익명이 보장되는 지칭어를 골라내고자 노력했고 나는 그때부터 그를 그냥 ‘그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내게 처음 한 말, 먼저 집으셨으니까 그쪽이 사세요. 그 사람이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 조심히 들어가. 전자는 광화문의 대형서점에서 한 권 남은 시집을 동시에 집어들었을 때 그 사람이 민망하다는 듯 웃으면서 한 말이고 후자는 그 사람의 차에서 내리는 나의 등에 대고 울면서 한 말이다. 기억은 왜곡되므로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혹은 부분적으로만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실은 기억에 비해 꽤 정확해서 내가 그 사람을 잃었고 그 사람이 나를 잃었다는 감각은 여전히 매우 또렷하다. 상실 이후엔? 어떤 감각을 지녀야 맞는걸까. 몸의 근육이 그 결마다 찢어지고 갈라지는 기분이 들어요, 라고 의사에게 말했을 때 의사는 그거 좋지 않은데요, 라고 말하고 더 이상의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 억울하고 서운해서 아니 썅 내가 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러 왔는데 해결책이라도 제시해주든가 위로라도 해주든가 애도를 하라고! 환자의 상실에 그 따위 말이나 지껄이는 너가 의사는 맞냐고. 다분히 공격적인 문장들과 몇 개의 상스러운 낱말들이 입속에 가득 찼었다. “그거 좋지 않은데요.” 나의 ‘좋지 않음’에 대한 판단. ‘좋은 상태’에 대한 부정. 방금 상실을 겪어 근육이 찢어지고 있는 사람에게 왜 적절한 애도를 하지 않는가. 사람들 정말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 박수혀이. 일찍 왔네.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 사람을 상실한 지 사흘도 안 되었을 때이다. 친가는 경상북도이기 때문에 친가친척들은 우리 집을 제외하고 모두 억센 사투리를 쓴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누가 돌아가시거나 누가 아프시거나 누가 축하받을 일이 생기면 간혹 한 곳에 모이곤 한다. 숙모가 상복을 입고 나를 반겼다. 이 가문과 가장 남남인 사람인데 치매였던 할머니를 자기 핏줄처럼 극진히 돌봤던 사람이다. 친가의 사촌들은 나를 항상 ‘박수혀이’라고 불렀다. 내 이름 ‘박수현’에 ‘이’를 붙이고 밑받침을 탈락시키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가 적용된 것인데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척들로 나를 저 네 글자로 불러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숙모는 괜찮다. 좋은 사람이니까.

들어가서 상복갈아입고 절 올려라. 니 스몰 입제?

상복을 직접 입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여자친척들이 자기 사이즈의 치마와 저고리를 챙기는 동안 숙모와 엄마가 내 사이즈의 상복을 따로 챙겨두었다. 엄마는 내가 살쪄서 미디움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미디움 상복은 여분이 없었다. 입고 온 반팔티 위에 내 몫의 상복을 입는데 문득 한복이 검은색이라니 특이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한복 자체를 입을 기회도 이십년 전 유년시절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을 뿐더러 애초에 세계 모든 전통복 중에 나랑 제일 안 어울리는 옷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시도도 하지 않았었다. 걸을 때 사박사박한 짙은 느낌이 제법 맘에 들었다. 작은 쪽방을 나가서 빈소에서 할머니를 마주했다. 언제 찍은 사진일까. 사진 속 그녀의 눈빛은 꽤 또렷하여 얼추 10년도 더 전, 그녀가 정신이 온전했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추정해볼 뿐이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친가보다는 외가에 가까웠다고 하더라도 친할머니는 싫어할 이유가 없는 착한 사람이었고 나를 좋아해줬다. 치매 병동에 찾아갔을때도 내 이름은 아주 또렷이 소리 내어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한다. 태어나서 처음 본 허리가 구십도로 굽은 사람. 그게 나의 친할머니다. 평생을 농사를 짓느라 허리가 굽은 상태로 고정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최초의 기억에도 그녀는 작고 낮은 사람이었다. 사실 사투리가 매우 억세서 그녀의 말은 칠십퍼센트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빠가 옆에서 매번 통역을 해줬었는데. 왜 나는 눈물이 나지 않는가. 이처럼 꽤 많은 장면들을 추억할 수 있는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데. 죽은 사람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데. 울지 않는 나를 누구도 탓하지 않았지만 혼자 죄책감이 들었다.

빈소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같은 장례식장의 맞은편 빈소는 아주 가끔 조문객들이 드나들었고 대부분의 시간엔 상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는데 할머니의 빈소에는 너무 많은 조문객이 와서 우리 조문객들의 신발이 맞은편 빈소의 신발장에까지 다다랐다. 숙모와 엄마는 그게 괜히 민망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벌써 대학생이 된 사촌여동생들과 신발장을 정리했다. 하나도 같지 않은 신발들을 정리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사이즈나 재질, 모양, 브랜드 등이 전부 달라 멍하니 보고 있으면 사람 얼굴 같기도 했고. 그래서 조문객의 얼굴들과 그 신발을 매치시키며 혼자 후후 웃기도 했다. 계속해서 방문할 조문객들을 위해 중간에 길도 내야했는데 그 길 때문에 기존의 신발들은 밀려서 계속 복도로 나갔다. 하지만 장례식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나가는 조문객들은 한참동안이나 자신의 신발을 찾으면서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신발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죽음이 더 큰 상실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성질 급한 한국인들이 다 같이 매우 온화한 표정으로 본인의 신발을 찾는 풍경은 차라리 평화로웠다. 저 사람들은 나의 할머니를 생전에 본적이 있나. 어떻게 아는 사람인가. 아마 저 중에 팔할은 할머니를 실제로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겠지. 삼촌의 직장동료, 사촌오빠의 친구들… 빈소에서 영정 사진을 보며 저 사람들은 무얼 생각하고 무얼 애도할까. 본 적도 없는 치매노인의 죽음을. 어떻게 기릴까.

잠시 틈이 나서 장례식장에서 조금 먼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웠다. 상복을 입고서는 무엇도 하기가 눈치가 보인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거나 음료수를 사는 일도 눈치가 보인다. 직원은 자못 슬픈 표정으로 계산을 해주었다.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무는데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난 연애 내내 그 사실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고 같이 식사를 하고 나오면 혼자 담배를 피웠다. 문득 그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담배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왜 난 굳이 그 앞에서 담배를 피웠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참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에 대한 애정의 정도를 확인하려고?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담배를 피우면 정말 애처롭게 보일 것 같아서 마른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눈물을 참았다.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다. 두 번째 담배를 주차장 자갈바닥에 눌러서 껐다. 장초였다.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빈소에 돌아와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신발들을 치웠다. 여전히 맞은편 빈소에는 조문객이 없었다.

 

하룻밤을 자고 입관을 본 뒤 먼저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다. 부모님은 하루 더 남아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짐을 두는 안쪽 방에 들어가려면 그보다 조금 더 큰 중간 방을 거쳐야 했는데 자정이 넘자 사촌오빠들과 올케들이 그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작당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꽤 큰 짐을 들고 들어와서 아코디언 모양의 접이문을 꼭 닫았다. 그런데 진짜로 그 짐 꾸러미에선 돈이 나왔다. 이틀 동안 모인 부조금이었다. 고스톱 깔개 같은 천을 깔고 검은 옷을 입은 대여섯명이 돈을 나누어 세기 시작했다. 그 더운 방에서 두 시간을 넘게 세었다. 나는 그 광경이 매우 아이러니하고 왜인지 소름이 돋고 이상해서 참여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작은 방에서 짐을 챙겨 그 곳을 나왔다. 그러면 밖에서는 조문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지 웃으면서 술을 털어 넣는다. 자정이 넘은 새벽인데도 집에 가지 않는다. 저들은 돌아갈 곳이 없나. 아무도 저들을 기다리지 않나. 나의 할머니는 십 여 년 간 치매를 앓으며 병동에 누워 있기만 해 욕창이 생겼다. 간호사들은 욕창이 생기지 않게 주기적으로 그녀의 몸을 닦았다. 할머니는 끝에는 자식도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썅 사람이 죽었잖아요, 뭐가 신난다고 장례식장에 와서 술을 마셔요. 애초에 장례식장에 술이며 화투는 왜 구비되어 있는 거냐고. 나는 이 모든 게 말도 안 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정을 보고 울지 않은 나도 이상했고 부조금어치의 술을 뽕 뽑고 가겠다는듯한 이들의 작태도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노래를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소주병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제서야 눈물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슬프고 억울했다. 진짜로 할머니는 없구나, 이제 다시는 그 신기하게 굽은 허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도, 나를 천천히 돌아보며 수혀이. 라고 부르던 것도 다시는 없구나.

그러나 그때 문득 내가 아주 오랫동안 치매 병동에 가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이상하게 그 곳만 가면 어지럽고 속이 안 좋아 구역질을 했었다. 초점없는 할머니들이 마지막 흔적이라도 남기려는 듯이 병원을 내내 걸어다녔고 간호사들은 그런 할머니들을 챙겨 다시 병실에 집어넣기에 바빴다. 나의 할머니는 걷지도 않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나는 천천히 병동을 걷는 치매 노인들과 6인실의 병실마다 놓인 청자가 없는 텔레비전의 자그마한 소음과 그 속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환자들과 아빠가 “엄마. 엄마. 나 알아보겠나? 야는 누구고? 야는?” 이라고 절박한 사투리로 외치는 모든 것들이 죽음의 공기 그 자체라고 느꼈었다. 어지러움을 느끼고 혼자 빠져나와 토를 하고난 뒤 5년 동안 나는 혼자만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할머니는 지금 죽었다. 내가 울지 못한 것은 이미 나에게는 5년 전부터 죽어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나는 내 자신이 몹시 비참하고 불쌍하고 징그럽게 느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한 채널에 고정되어 하루 종일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떠들어대는 그 텔레비전보다 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서울로 내려와 나는 다시 출근을 하고 동료들과 밥을 먹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차를 마시며 지냈다. 친구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그 사람과 친할머니를 잃은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듯 말을 아꼈다. 야 너네 갑자기 그러지 마, 티나. 웃으며 말하면 그들은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할머니가 죽었을 때는 울지 않았으나 그 사람과 헤어질 때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던 것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던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죽기 전 오년동안 그녀를 찾아가지도 않아놓고 새벽까지 신나게 술을 마시던 조문객들을 썅놈들이라며 저주했던 것도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대의 마지막 수치심이 될 것들이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수치심들이 몸 안을 가득 채우고 더 이상 그 수치들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은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연사’ 라는 말이 허울 좋은 헛소리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들에 잠긴 채 살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사람에게서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낮 두시에 잘 지내냐고. 문자가 왔다. 굳이 대낮에 문자를 보낸 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새벽에 내가 그리워졌겠지만 새벽에 연락을 하면 오해를 살까봐 대낮에 ‘나는 회사에 있고 술김도 아니고 맨정신인데도 네가 그립다,’라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이겠지. 우습게 느껴졌다. 일방적으로 나를 차버려서 어디 가서 ‘우리’ 헤어졌다고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로 만들어놨으면서 지금 와서 잘 지내냐니.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잘 지내?’라는 글자가 너무 생경하게 느껴져 그 문자를 오분은 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문자가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들렸다. 그 사람은 문어체의 언어들도 민망하지 않게 말로 발화하는 재주가 있었고 나는 그 점이 담백하다고 생각해서 사랑했다. ‘잘 지내?’ 정도는 예사였다. ‘무척’이나 ‘매우’와 같은 부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는 것이 좋았다. 무척 맛있다, 사람이 매우 많아. 그런 발화의 순간들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반나절 내내 답장하지 않았다. 답장을 고민한 것이 아니라 답장을 고민할 것 같아서 무리해서 일을 했다. 전 애인에게서 온 문자에 대한 답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치하고 애들 일처럼 느껴졌고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벅차게 반갑고 서글픈 생각에 업무를 보다가도 가던 길을 멈추듯 우뚝 서버리곤 했다. 눈치 빠른 팀장하나가 박대리 오늘 좀 집중을 못하는데,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었고 나는 누군가가 나의 괴로움과 그리움을 알아채주길 바랬던 사람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아뇨! 아무 일 없어요. 죄송해요. 그러자 팀장은 아니 죄송할 일이 아니라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까 걱정돼서 그러지. 라며 다시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숙였다. 걱정은 무슨, 그냥 잔소리를 하고 싶었던 거면서. 하지만 나는 팀장에 고마움을 느꼈다. 다른 일로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있었던 게 티가 났다는 것은 정말로 그 문자가, 내가 꾸며낸 환상이 아니며 실제로 내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니까. 나는 그렇게 모든 증거들에 절박하게 매달렸다.

 

서울의 여름은 잔혹하리만치 덥고 습하다. 실외로 나가자마자 곧장 어항을 헤엄치는 느낌이다. 차라리 바다라면 좋으련만 물을 오랫동안 갈지 않은 미지근한 어항 속을 미끈하게 걷는 느낌. 담배를 피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늘을 찾는다. 멘솔은 온전히 여름의 것이다. 찌는 더위에 사천오백원을 들여 시원함을 스무번이나 삼키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다.

초여름에 그 사람을 만났다. 퇴근 시간의 광화문을 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버스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했는데 그 누구도 더운 물로 가득 찬 어항에 몸을 내던지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교통체증을 감사하게 여길 정도였다. 말하자면, 그날은 그 정도의 더위였다. 멘솔 담배 한 갑을 다 비우고서도 시원하지 않았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 땀이 줄줄 흘러 번진 화장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했고 도착한 카페에서 화장을 막 다 고쳤을 무렵 그 사람이 들어왔다. 어떤 말을 해도 진부한 한국드라마의 재회씬이 연출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무말도 안해버리거나 아무말이나 해버리면 한국의 독립영화가 되어버린다. 조심하자, 스스로 생각하며 꺼낸 말이 고작 ‘똑같네.’ 였다. 그 사람은 어어, 라고 대답한 뒤 똑같지 뭐, 뭐가 바뀌었겠어. 라고 말했다. 갑자기 왜 연락했어?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피식 웃으며

보고싶었으니까. 미안해.

라고 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보고 싶은 게? 아니면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한 게? 어떤 게 미안해? 수많은 언어들이 맴돌았다. 하지만 모든 말들이 구차했다.

아니야. 연락해줘서 고마워.

미쳤다. 그 많은 말 중에 가장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렸다. 그 사람은 내 눈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조용히 음료를 마시며 카페 밖을 내다봤다. 카페의 유리창은 습기로 가득했고 사실상 밖에 무엇이 지나다니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한참이나 밖을 보았다. 그건 그냥 멍하니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언가에 대단히 집중한 모습이어서 나조차도 창밖을 같이 내다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뿌연 습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카페 안은 추울 정도로 에어컨이 틀어져있었는데도 하나도 시원하다, 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멘솔만도 못하구나. 여름은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되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그 사람은 차분하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이런 프로젝트를 맡았고 언제 끝났고 이직 고민도 했었으나 그냥 머무르기로 하였으며 운동을 시작했다고. 물론 그러한 정보들은 나에게는 아무런 영양가도 없었고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근황은 내가 그 사람과 없었던 시간동안의 기록이므로 수업을 결석한 학생처럼 나는 열심히 모든 문장들을 흡수하며 진도를 따라가려 했다. 나를 위해서 그래야 했다. 수업을 나오지 않은 학생은 선생도 다른 학생들도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라 오직 자기를 위해서 빠트린 수업을 따로 공부해야 한다.

나의 근황은 들려줄 것도 없었다. 겨울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외에 특별한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그 상실이 당신을 상실한 바로 그 다음이어서 나는 조금 혼란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고인이 아닌 사람을 떠올리며 울어버린 것처럼,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더운 광화문의 카페에서 울어버릴 것이고 그것은 너무 불쌍하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 애도를 받을 수는 없다. 나는 계획을 어겨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독립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냥 카페에 존재만 하고 있었다. 카페 직원이 에어컨의 온도를 더 낮췄지만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그 사람과 처음 만났던 서점을 갔다. 왜 하필 광화문을 오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는지, 카페를 나와서 더운 공기를 훅 마주치자 생각이 났다. 맞아 여기에 거기가 있었지. 나는 나를 미행하는 느낌으로 대형 서점을 천천히 돌았고 왠지 모르게 제법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그 사람과 같은 책을 집은 J구역에 갔을 때에도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나 자신을 조심스럽게 다룰 뿐 이었다. 그 때의 베스트셀러와 지금의 베스트셀러는 완전히 달랐다. 그 사람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베스트셀러를 찬찬히 살펴보며 책을 한권만 사자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기념이 될 수도 있는 오늘과 이미 기념이 되어버린 2년 전의 오늘을 기리기 위해. 나는 원래 좋아하던 시인의 새로 나온 시집을 집어 들었다.

‘유령은 뼈가 없다’

유령은 뼈가 없다, 조용히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본다. 이상한 물성을 가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의 지면 위로 떠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몇 장을 넘겨 읽다가 계산대로 가 구매를 했다. 종이봉투를 거절하고 숄더백에 넣어 그대로 서점을 나섰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집을 넣은 가방이 엄청나게 뜨거운 느낌이다. 한쪽 어깨가 화상을 입을 것처럼 뜨거웠다. 억울하고 슬퍼서 눈물이 났다. 억지로 아직 터지지 않은 울음을 삼키고 구원을 기대하며 멘솔담배 한 까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흡연 구역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아 사람이 모두 쳐다보는 길목에서 숨을 쉬듯 담배를 피웠다. 평일의 직장인들이 나를 생경하게 또는 경멸스럽게 응시하며 지나갔다. 나는 살려고 담배를 피우는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생각하면서, 그러나 시선은 멀리에 둔 채 눈치를 보며 멘솔을 단시간에 최대치로 빨아들였다. 이렇게 몇 번만 더 피우면 바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솔의 냉기가 조금의 구원이 되었는지 시집에서 뿜어나오던 열기는 조금 가라앉았다. 그제서야 나는 필터까지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손에 쥐고 근처 쓰레기통에 가볍게 던져 버린 뒤 광화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퇴근을 하고 서점에 들러 문화생활을 한, 정말 매일 매일 있을 수 있는 그냥 그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회사원처럼. 불과 몇 십분 전까지 전애인을 몇 개월만에 만나서 근황을 들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눈가가 조금 붉지만 그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다. 아닐 것이다.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다시 그 사람과 재회했던 카페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이제는 그 사람도 없고 나도 없다. 하나도 바뀐 게 없는 단정하고 침착한 그 사람과, 신파도 건조함도 모두 피하려 말을 고르던 나도 없다. 카페의 커다란 창문은 여전히 희뿌옇게 김이 차있었고 창가 쪽의 그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에 닿았을 때 나는 문득 그 사람이 대화들의 공백마다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도대체 뭐였길래. 그리하여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을 붙인 채 그대로 몸만 돌려서 반대쪽을 바라봤고 그 곳에는,

그 곳에는 오래된 혼잣말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사람은 나를 재회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재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작은 혼잣말들은 모여서 웅성웅성 소리내고 있었고 나는 그제서야 여기가 광화문이라는 사실을, 서울이라는 사실을, 한국이라는 지리멸렬한 사실을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광화문, 광화문. 이곳은 비단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대형 서점만으로 존재하는 곳은 아니었지. 사립미술관이나 이순신 동상이나 대기업 건물들만으로 존재하는 곳은 아니었지. 나는 한참을 그 카페 앞에 못박혀 있었다. 그 사람이 몇 시간에 전에 보았던 것을 나는 지금에서야 볼 수 있다. 왠지 모를 부채 의식이 들면서 내가 굉장히 염치 없고 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그러나 그는 아직 기억하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며 나는 천천히 혼잣말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추모공간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회사원들이나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면서 눈길을 줄 뿐 누구도 걸음을 멈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혼잣말들은 거기서 오년째 노랗게, 노랗게 익사하고 있었다. 애도는 무엇인가. 내가 정신과 의사에게 받지 못했던 그것, 내가 할머니에게 할 수 없었던 그것, 돈을 세던 친척들과 건너건너 소문을 듣고 온 조문객들이 하지 않았던 그것, 맞은편 장례식장의 오지도 않은 고인의 지인들이 하지 않았던 그것, 다시 만난 그 사람에게 내가 받고 싶었던 그것.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시집이 들어있는 가방이 다시 열기를 내뿜으며 뜨거워졌다. 그것은 거의,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집과 함께 타버릴 수 있을 정도의 온도였다.

 

우수 당선소감 

차지은 (예술학과 4)  

안녕하세요. 인생에서 수상 소감 같은 것은 생각할 일이 아예 없었던 사람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오히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실례지만, 생각나는 그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올해는 모든 것이 너무 심심하고 계획했던 그대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그게 아쉽다거나 후회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주 나중에 이번 연도를 떠올려봤을 때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아서 무슨… 사고라도 쳐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 사고로 올해를 회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사고는 제가 친다고 되는 것은 또 아니어서, 몇 가지의 기억할 만한 일들이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고 그것들을 조금씩 써보던 게 지금 이 글이 되었습니다. 

모든 재난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애도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몫이겠지요. 

이 글의 절반은 실화이고 절반은 허구입니다. 반쪽짜리 진실들에게 적절한 애도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참회하는 마음으로 어설프게 써 내려갔습니다. 그들에게 이름을 빌려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빈약한 글을 좋게 봐주신 학교에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심사평

송민호 (국어국문학과 교수) 

차가운 바람이 느껴질락 말락한 시기, 홍대 학·예술상 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만났다. 올해는 8편의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아직은 서툰 작품들도 있고, 제법 멋을 부린 작품들도 있다. 대학생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은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는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설은 자신이 겪은 신기하고 인상적인 일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그 서사의 주변부에 있는 구체적인 것들을 쓰는 데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표한다.

이번 44회 홍대 학·예술상 소설 부문에는 1편의 작품을 최우수로, 2편의 작품을 우수로 뽑았다. 최우수는 <없다, 구름 없는 날은>이고, 우수는 <유령은 뼈가 없다>와 <마침표> 2편이다. 이 세 작품은 모두 안정된 문체를 가지고 있고, 소설이라는 도구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능숙했다. <마침표>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좋았고, <유령은 뼈가 없다>는 내밀한 경험이 드러나 있었지만, 조금 급하고 투박한 느낌이 있었고, 최우수로 선정한 <없다, 구름 없는 날은> 쪽이 조금 더 소설적 세련됨이 있었다고 할까.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차분하게 내밀한 감정적 공간을 만들어 갔던 것을 좀 더 높게 평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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