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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거나 혹은 잊고 싶은 과거에 관하여시간 여행으로부터 시작되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의 이야기

누구나 한번쯤 지나간 시간을 괴로워 하다못해 과거의 자신과 고독한 싸움을 치른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과거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는 인간의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표출해버린 말이나 행동에 대한 사소한 후회부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간절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과거의 모습을 다시금 그리며 후회하는 것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인간 보편의 모습이 아닐까? 이미 흘러버린 시간은 인간을 고통에 빠지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체계 속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성찰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주어진 그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할 것인가?   

길 정거(Gil Junger, 1954~) 감독의 <이프 온리(If Only)>(2004)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문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다. 연인 ‘사만다’에 익숙해져 그녀의 소중함을 잠시 잃은 ‘이안’은 직장 생활 등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이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변한 연인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던 사만다와 화해할 틈도 없이 운명이 그들을 갈라놓는데, 사만다가 이안의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잠든 이안은 현실과 전혀 다른 시간에서 문득 눈을 뜨게 된다. 혼란스러워 하던 이안은 이내 사만다의 사고 당일 아침으로 시간이 돌아왔음을 깨닫는다. 이안은 ‘다시 돌아온 시간’ 동안 사만다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녀의 얘기를 성의 없이 들었던 과거를 반성하며 중요한 회사 회의도 미루는 등 온전히 그녀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시 주어진 시간조차 그녀의 죽음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안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선물하고 그녀의 죽음을 대신하기로 다짐한다.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해도, 적어도 비껴 나가도록 한 것이다. 죽음을 앞둔 그가 노을이 지는 배경을 뒤로 하고 그녀에게 청혼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절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충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행복한 연인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 또한 본인도 모르게 소홀했던 주변인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대개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의 의미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과거로의 회귀가 ‘처벌’이 된다면 어떨까? 죄를 지은 이는 지우고 싶었던 기억을 되풀이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의 굴레 속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조선호 감독의 <하루>(2017)는 시간의 구간 반복이라는 설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현대 사회 일원들의 부도덕을 지적함과 동시에 타인의 상황에 연민을 느끼는 공감능력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유능한 의사 ‘준영’은 딸을 만나러 가던 중,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피해자가 딸 ‘은정’임을 알게 된다. 이에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눈 깜박할 사이 그는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무슨 수를 써서든 사고를 막으려 하는 준영의 사투가 벌어지지만 수십 번의 시도 끝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고 그는 매일 딸이 죽는 지옥 같은 하루를 반복해야만 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과 같이 아내를 잃은 날을 반복하고 있는 ‘민철’과 마주한다. 소중한 이를 잃는 끔찍한 시간 속에 갇힌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반복되는 ‘하루’의 의미를 추적하던 중, 그들은 이 고통스러운 시간 여행이 과거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각자 사랑하는 사람 또는 직업적 소명을 지키고자 했던 욕망 때문에 다른 이의 고통을 간과했던 것에 대한 처벌의 의미였던 것이다. 화창한 날씨를 배경으로 극대화되는 주인공들의 처절한 고통은 그들이 과거 누군가에게 주었던 고통의 잔상을 상징한다. 시간을 거슬러가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르는 채로 지나쳤을 타인의 아픔은 시간 여행으로부터 비롯되어 인물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근원적 죄의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감독은 순간의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통해, 서로 상처를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진심을 담아 공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앞선 두 작품에서 살펴보았듯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운명 앞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인 인간에게 주어지는 작은 기회이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인물들의 존재성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부터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시작점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오이시 에이지(おおいし えいじ, 1961~) 작가의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2010)는 곧 다가올 죽음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속의 상황으로 독자를 초대하여 다양한 물음을 던진다. 이야기는 10년 전 실종되었던 비행기가 1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탑승객들을 실은 채 기적적으로 돌아왔다는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돌아온 사람들과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기적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사흘. 사흘 후면 그들은 10년 전의 죽음을 다시금 맞이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던 사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사람, 이루고 싶은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던 사람 등 각자의 이야기를 지닌 이들은 인생의 마지막으로 주어진 사흘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소설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본원적 후회의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이야기는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만든 시간이라는 개념 위에서 흘려보내게 되는 시간들과 진심어린 소통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적적으로 주어진 사흘간의 시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뤄왔던 것들을 망설임 없이 행동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가 어쩌면 간절한 바람 끝에 기적적으로 다가왔을 어느 시점의 시간일 수도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장 소중한 이는 누구이며, 지켜야 하는 꿈은 무엇인가? 이는 10년 전 비행기에 탔던 이들이 현재의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모순적이게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진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현재의 본인이다. 영화적 공상을 빼면 다양한 이유로 ‘과거’ 자신의 모습에 아쉬움을 남기는 개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 시간은 현재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시간 여행이라는 비현실적 상상으로부터 ‘현재’에 남은 개인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떤 시점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현재에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이산희 기자  ddhh1215@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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