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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슬플까요당신의 꼬두메는 어디에 있습니까, 『눈이 오면』(1995)
▲가정집 옥상, 골목길 어귀 등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주택가 곳곳에서는 푸른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대상은 다양하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장소가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그리움의 대상이라고 한다면 역시 ‘고향’일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이 고향의 그리움을 노래하거나 표현해왔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정서 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가 임철우(1954~)의 『눈이 오면』(1995)도 이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주인공 ‘찬우’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만 이미 예전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마저 잠시 혼자 남겨 둔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비극적 서사를 통해 『눈이 오면』은 현대인이 가진 고향 상실의 아픔을 풀어내고 있다.

눈을 들면 사방 어디에고 온통 잿빛으로 뒤덮인 집들이며, 붉은 황토 한 줌 쥐어 볼 수 없는 거리와 골목, 그리고 항상 부옇게 매연에 절어 있는 도시의 탁한 하늘을 바라보며 어언 십 년이 넘도록 살아오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서울의 척박한 콘크리트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중략) 그가 세 살 나던 해에 돌아가셨다는 아버지는 꼬두메 마을 뒷산 솔밭 기슭의 공동묘지에 지금도 묻혀 있을 것이었다. 찬우야이. 꼬두메로 핑 가자이. 아버지가 얼매나 기다리시끄나이……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의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찬우의 어머니는 광주광역시 무등산 근처에 있던 ‘꼬두메’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그녀는 서울에서의 삶에 지쳐 조금씩 치매 증세를 보이며 찬우에게 ‘꼬두메로 가자’며 조른다. 기자는 그들이 살았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주택가를 찾았다.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언덕의 근린공원에 올라 바라본 동네의 모습은 답답한 서울의 풍경 그대로였다. 테트리스를 짜 맞춘 것 마냥 언덕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주택들과 차들로 가득 찬 도로, 미세먼지로 희뿌연 하늘까지. 어디 하나 여유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구석뿐이었다. 탁 트인 시골에서 살다가 이런 비좁고 각박한 곳에서 살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리라. 그렇게 언덕을 내려오던 도중, 골목길 한 켠 고무통 속에서 자란 배추와 건물 곳곳의 작은 식물과 화분은 기자에게 작은 울림을 안겼다. 소설 속 찬우의 어머니도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상추 따위를 집에서 키우곤 했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저 푸른 잎사귀들이 각박한 도심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꼬두메를 찾아 내려가고 있는 참이었다. 허황하기조차 한 그녀의 넋두리를 좇아 이렇듯 추운 한겨울밤을 완행열차에 흔들리며, 떠나온 지 십삼 년이 넘은 고향으로 향하게 되리라고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미처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중략) 놀라우리만큼 자신이 허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이즈음에야 그는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중략) 눌눌한 콧물을 후룩거리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수많은 방황을 치러 왔지만, 그때마다 그를 단단히 붙잡아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준 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던 것이다.

기자는 직접 꼬두메를 찾아 광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눈 내리는 겨울이 배경이었던 소설 속 광주와 달리, 기자가 그곳을 향한 날은 11월임에도 최고 기온이 섭씨 20도에 달할 정도로 포근했다. 광주행 완행열차에 몸을 맡긴 기자는 차창으로 따사롭게 스며드는 햇살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완행열차였던 탓에 광주까지의 여정은 약 4시간 반에 육박했다. 중간에 잠에서 깬 기자는 무료한 여정을 달래보고자 차창 밖을 둘러보았다. 창밖으로는 정말 많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는데, 비닐하우스를 정리하는 농부, 아름드리 느티나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개울가에서 천렵을 즐기는 이들까지… 아마 빨리 가기 위해 고속열차를 탔다면 보지 못했을 진귀한 풍경들이었다. 기자는 정말 고향에 내려가는 듯한 상상을 해 보았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이리도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왜 그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아등바등 살았을까. 광주행 완행열차 안에서 찬우가 어머니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았듯, 기자에게도 완행열차는 깨달음의 장소가 되었다.

“꼬두메라구요? 그런 동네는 금시초문인디요.”
운전수의 뜻밖의 대답에 그는 아차, 했다. 하지만 너무 변두리인데다가 그동안 명칭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믿으며, 그가 다시 잣고개라고 가르쳐주자 비로소 운전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내가 막상 전혀 낯선 곳에 그들을 내려 주었을 때 그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거대한 아파트 건물과 고급 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그곳이 예전의 논밭과 야산이 있던 자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암만해도 엉뚱한 곳으로 잘못 찾아온 것이리라 생각했다.

 

▲기자가 걸어온 광주 무등산 산길에는 풀숲이 우거져 어둑어둑했다.

광주역에 도착한 기자는 휴대전화로 꼬두메라는 지명이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허탕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찬우가 운전수에게 가르쳐주었던 잣고개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시도했다. 그러자 포털 사이트의 지도는 놀랍게도 무등산 자락에 잣고개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기자는 지체할 새 없이 버스를 타고 잣고개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렸을까, 버스 기사가 잣고개로 가려면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말해주어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이윽고 시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파트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 뻗어서는 산허리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다. 산 쪽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미 유원지와 숙박업소들이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잣고개는 더 이상 변두리가 아니었고, 그 어디에도 이곳이 과거 시골 마을이었다는 흔적은 없었다. 기자에겐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보려고 이 먼 길을 온 것일까 싶어 아쉬웠다. 아무 연고(緣故) 없는 이가 와서 느끼는 감정도 이 정도라면, 그곳이 고향이었던 소설 속 인물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무등산에서 마주한 산길의 끝에는 무덤 몇 개가 자리하고 있었지만(위), 그 무덤들의 코앞까지도 아파트 단지가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아래).

꼬두메는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 속의 마을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젠 더 이상 아무도 그곳을 기억해 주지 않는 이 땅을 떠나, 그 과거의 이름들이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을 또 다른 세계를 찾아 길을 나선 것일까. 그렇다면 그 세상은 오직 어머니 혼자만 아는, 당신만의 소중한 세계일 터였다. (중략) 찾아야 해. 어머니를 찾아내야만 해.
그는 마침내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잣고개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차츰 눈송이가 굵어져 가고 있었다. 은빛, 세상은 온통 은빛이었다.

소설은 찬우가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눈 오는 잣고개를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도로를 따라 내려온 기자는 문득 산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 서서히 그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했다. 1시간 가까이 걸었음에도 인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파트 근처에 다다라 길을 빠져나온 기자를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여러 개의 무덤이었다. 소설 속 찬우의 아버지가 꼬두메 근처의 공동묘지에 묻혔다는데, 어쩌면 이곳이 그 흔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 코앞까지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기자는 왠지 서글퍼졌다. 이 무덤에 묻힌 이들은 자신의 묘 앞에 거대한 건축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터이다.


결국 소설 속 찬우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기자도 꼬두메를 더 이상 현실에서 마주할 수는 없었다.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현실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해 줄 자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기자는 여행 중 느꼈던 감정들을 곱씹으며 기자가 사는 동네의 모습을 회상했다. 생각해보면 기자가 사는 곳도 이전의 모습과 확연히 달라진 곳이 많았다.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던 동네 마트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골목길도,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곤 하던 복덕방도 10여 년의 세월 동안 모두 사라져버렸다. ‘점점 추억할 곳이 없어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기자 자신이나 소설 속 인물들이나 알고 보니 별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기자의 푸념을 뒤로 한 채 버스는 어둠이 짙은 고속도로를 거슬러 올라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김주영 기자  B88102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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