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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광, 백남준의 손이 되다

「아트마스타」 이정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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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청년(靑年)이야. 미래가 있는 한 우리는 청년이라고. 청년 정신이 있어야 하거든. 청년은 말이야, 도전하는 거지.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창조(創造), 창조, 창조….”- 故 백남준(1932~2006)

우리에게 실험적인 비디오 아트 창시자로 잘 알려진 백남준 작가. 그는 언제나 도전적인 자세로 미디어 아트(media art)의 새 지평을 열어갔다. 사람들은 그의 뒤에 비디오 아트 작품세계를 함께 만들어간 미디어 엔지니어(engineer) ‘이정성’이 존재했기에 <TV정원>(1974),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1975)와 같은 걸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 <다다익선>(1988)부터 본인의 작품 <TV오로라>(2019)까지 지금도 도전을 이어가며 미디어 아트를 연구하는 엔지니어, 「아트마스타」의 이정성 대표를 만나보자.

 

Q. 어린 시절 혼자 서울로 상경하여 전자 기술을 배우고 일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일을 시작한 후의 이야기만 잘 알려져 있는데 처음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어릴 적 도시에 살던 친척이 사온 라디오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하지만 전쟁을 겪으며 배를 곯는 일이 많아지자 라디오 배터리를 다시 살 돈이 없어 가족들은 라디오 사용 시간을 정해놓곤 했다. 그러나 어린 나는 몰래 라디오를 하루종일 듣다 잠이 들어 혼나기 일쑤였다. 작은 기계 속에서 노래나 사람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라디오라는 조그맣고 신기한 기계를 접해 빠져들면서 이것을 꼭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Q. 평생 전자 기술 관련 작업을 해온 말 그대로 ‘장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본인이 전자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가장 뿌듯한 순간을 국내·외로 나누어 보자면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처음 작업했던 <다다익선>(1988)이 완성됐을 때다. 외국에서는 백남준 작가가 1993년 독일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 작가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대회에서 수상한 유일한 사례이기도 했고 당시 한국 사람이 해외에서 전시를 하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기에 더욱 뿌듯했다. 

하지만 어떤 전시든 엔지니어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오프닝 쇼(Opening show)에서 관객들이 작품을 보며 환호할 때다. 자그마한 기술이 작가를 환호받게 만들었다는 그 자체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이 난다. 누군가 작가는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을 얻지만, 엔지니어는 남는 명성이 무엇이 있냐고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작가로서의 성공이 있고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로서의 성공이 있기에 본인의 길을 걸어가고 그것에 만족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Q.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1,003대의 TV를 이용한 故 백남준 작가(1932~2006)의 <다다익선>(1988)이라는 작품의 보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들었다. <다다익선>(1988) 작품 속 모니터의 시야각 확보 문제와 당시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점 사이에서 원형 유지와 신형 LCD(Liquid crystal display) 모니터로의 교체로 의견이 갈라졌다고 하는데, 작품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다다익선>(1988) 작품을 전시하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최근 최종 복원 방법으로 결국 기존 브라운관 모니터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모니터의 일부만 최신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디어 예술 작품의 본질은 모니터 속 미디어의 내용이기에 복원은 기술 발전에 맞춰서 신형 LCD 모니터로의 교체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원형 브라운관을 유지하는 복원 작업을 유지해 나가면 고장이 늘고 이후에는 복원이 더 힘들어지며 이는 결국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 복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예산이기에 그에 따라 신기술과 구기술의 복원 방법을 적절히 섞어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의논해야 할 것이다. 

 

Q. 최근 청계천 을지로 구역 재개발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을지로 구역은 ‘다시 세운 프로젝트’ 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와중 여러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세운상가 장인회 회장으로서 개발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몇 년 전 세운상가 자리를 모두 고층 건물로 재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유네스코(UNESCO) 측에서 세운상가 반대편에 위치한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무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세운상가를 모두 헐어버리는 ‘재개발’ 사업 대신 세운상가 ‘재생’ 사업이 진행되었다. 원래의 세운상가를 ‘고쳐’ 나가자는 것이 재생 사업의 본래 취지지만, 여전히 서울시는 작은 가게들은 헐어버리는 등 재개발과 다름없는 공사를 이어가고 있다. 

재생 사업 진행에 찬성한다면 월세가 상승하는 등의 큰 손해가 발생하나 그럼에도 세운상가의 장인으로서 재생 사업에 활발히 참여하는 이유는 피폐해져 가는 세운상가를 그저 지켜보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많은 사람이 드나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운상가를 기존 전자 산업 중심으로 살리면서 선진국들의 선례를 참고하여 기존 세입자들과 함께 재생 사업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운상가 세입자와 서울시 측의 합의 하에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나간다면 서로 발전하는 성공적인 재생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Q. ‘다시 세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창업공간인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 젊은 작가들이 입주하고 있다. 세운상가에 입주하고 방문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엔지니어로서 바라는 점이 있는가.

A. 최근 ‘세운 메이커스 큐브’에 정착한 젊은 작가들이 미디어 아트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구하러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젊은 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자신의 손발이 될 엔지니어를 구하는 일이다. 실제로 기술적인 부분을 실현하기 위해 세운상가의 장인들, 즉 숙련된 엔지니어들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 과정에서 작가들이 엔지니어를 불신하는 일도 꽤 있다고 들었다. 또한 작가들이 엔지니어에게 작업을 같이 진행해 나간다는 믿음을 주며 일해 나가야 하는데 몇몇의 젊은 작가들은 엔지니어와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작업 제작만 지시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좋은 작품은 작가와 엔지니어가 대화를 통해 작품을 보완해나가고 신뢰할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은 이런 점에 있어서 미숙한 것 같아 안타깝다. 

Q. 과거 비디오 아트의 대가인 ‘백남준 작가의 미디어 엔지니어’부터 현재 ‘세운상가 장인회 회장’까지 이정성 대표에게 붙은 수식어가 여러 개다. 이 중 본인은 어떤 수식어로 자신을 정의하고 싶은가.

A. 지금의 나를 어떤 한 직업으로 칭하기엔 조금 모호하다. 「아트마스타」라는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고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유지·보수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작업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백남준의 손’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그게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수식어인 것 같다. 백남준 작가가 살아있을 당시엔 그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구성하면, 내가 이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구현해내는 작업을 했었다. 아직까지도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유지 및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고 ‘백남준의 손’이라고 불리는 것이 지금까지도 가장 뿌듯하다.

Q. 미디어 아트 엔지니어 분야나 미디어 아트 분야로 나아가려는 ‘제2의 이정성’, ‘제2의 백남준’을 꿈꾸는 본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어떤 작품이든 예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그 가치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작가는 예술의 가치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중에서도 미디어 아트를 구현하려면 현대 미디어의 기본적인 전자 기술까지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기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또 엔지니어의 입장에서는 다른 작품을 많이 관람하여 어떤 작가들이 무슨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일례로 백남준 작가는 기기를 일부러 고장 내어 표현하기도 했는데, 본래 전자 기기를 고치는 작업을 하는 엔지니어로서 이와 같은 방식이 굉장히 어색했다. 이처럼 미디어 작가들은 예상치 못한 방법을 사용하여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낼 수 있다. 

엔지니어는 원활한 소통과 깊은 이해를 통해 이러한 작가들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작가와 엔지니어가 서로 진심을 가지고 소통해 작품을 제작해야지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나 또한 진심을 가지고 젊은 작가들이 다가와주면 기꺼이 도와줄 용의가 있다. 젊은 작가와 엔지니어들 모두 배우는 데에 부끄러움을 가지지 말고 많이 도전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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