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7.6 월 13:05
상단여백
HOME 문화 보따리
현실을 향하여 떠난 단 한 발의 오발탄을 찾아서과거와 현재의 물결은 해방촌의 비탈을 따라 흐른다, 『오발탄』(1959)
▲해방촌 대로 옆길의 가파른 골목길.

흔히 현실감 없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소설 같다’고 말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 끝에 아름다운 해피엔딩 또는 절절한 새드엔딩, 혹은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소설’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일말의 결론을 독자에게 미리 일러주는 문학 갈래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기자는 현대소설 관련 과목을 수강할 때마다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배우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생각보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현실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등 주요 사회적 사건과 주제 및 발표 시기가 맞물린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소설은 다른 어떤 문학 갈래보다도 현실의 모습들을 거울처럼 섬세하게 비추고 있는 존재다.

이마에 길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 밑에 우묵하니 패인 두 눈, 까깡진 볼, 날카롭게 여윈 턱, 송장처럼 꺼멓고 윤기 없는 얼굴 그것은 까마득한 원시인의 한 사나이였다.

『오발탄』(1959)의 첫머리에서 주인공 ‘철호’는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본다. 그와 동시에 문장을 읽던 기자도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해보았다. 전쟁 후 우리나라의 암담한 현실 속에 존재했던 그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기자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시간이었다. 생기 없는 그의 얼굴은 그가 몸담은 시간과 공간의 비극적인 현실을 담고 있는 듯 했다. 기자가 상상한 이미지 속 어둡고 꺼칠한 얼굴의 그는 기자의 발걸음을 서울시 용산구의 해방촌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한국전쟁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갈 곳을 잃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던 ‘피난지’로서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을 것을 예상한 것은 기자의 섣부른 생각이었을까. 오르막길로 쭉 뻗은 대로를 사이에 둔 해방촌의 양 옆 거리는 양식과 와인을 파는 식당으로 가득했다. 여느 대학가와 다르지 않은, 오히려 대학가보다도 한결 여유롭고 흥겨운 분위기에 기자는 잠시 얼떨떨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예상과는 달랐던 해방촌의 모습에 대한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기자는 테라스에 앉아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저만치 골목 막다른 곳에, 누런 시멘트 부대 종이를 흰 실로 얼기설기 문살에 얽어맨 철호네 집 방문이 보였다.

기자는 작품 속 철호가 집으로 가기 위해 힘겹게 올랐던 언덕 위를 걸었다. 그리고 당시 철호의 집이 있었을 법한 골목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 해방촌의 관광객들에겐, 오렌지색 조명으로 가득 찬 식당과 예쁜 카페들을 뒤로 하고 어둑한 골목길로 향하는 기자의 모습이 꽤 이방인처럼 느껴졌을까. 마침 가을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갑작스레 내린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도 펴지 않은 채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비 내리는 풍경은 해방촌 바닥에 아름다운 조명을 흩뿌리며 그 곳을 더욱 낭만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듯 했다. 기자는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며, 자신의 집에 들어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벙어리도 아닌데’ 말이 없는 아내, 그리고 먹은 것이 없어 얼굴이 노랗게 뜬 딸과 마주했던 철호를 떠올렸다. 이내 마음 한 곳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급속한 재개발의 손길이 해방촌까지 뻗은 이후 해방촌에 뿌리 내린 화려한 ‘골목길 문화’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이곳에는 철호 가족의 고달픈 생애가 아직도 여실히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이 가파른 골목 어디쯤에서 파리한 얼굴의 철호가 두 무릎을 세워 안고 앉아서 밤이 깊기를 하염없이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해방촌의 바닥으로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졌다.

철호는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가자!" 철호는 멈칫 섰다. 낮에는 이렇게까지 멀리 들리는 줄은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그 소리가 골목 어귀에 까지 들려왔다. "가자!"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골목에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호는 다시 발을 옮겨 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건 다리가 저려서만이 아니었다. "가자!" 철호가 그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중략) …철호의 어머니 눈에는 아무리 그네가 세상을 모른다고는 해도 산등성이를 악착스레 깎아 내고 거기에다 게딱지같은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이 해방촌이 이름 그대로 해방촌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은 지역적 의미만 남아 낭만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처를 찾아 모여든 이들에게 ‘해방촌’은 그들의 상황과 완전히 모순되는 이름이 아니었을까. 철호의 어머니는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다 못해 미쳐 버리는데, 소설의 암울한 배경 속에서 절규하듯 들려오는 “가자!”라는 외침은 철호에게 가해지는 현실의 압력을 청각적 심상으로 날카롭게 들려준다. 또한 철호의 동생 ‘영호’는 양심과 윤리, 관습 같은 것들에 대해 ‘빼 버리면 아무렇지 않은 가시’라고 표현하며 권총강도를 저지르고, 여동생 ‘명숙’은 *양공주가 된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 속, 그들이 몸담았던 해방촌은 현실의 해답을 알려주지 못하면서 전쟁의 아픔만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끔찍한 세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언덕을 꽤 많이 올라 거의 꼭대기에 다다른 기자는 지나온 길을 훑으며 ‘해방촌 부엌’ ‘해방촌 포장마차’ 등 가게 간판 속의 ‘해방촌’이라는 글자를 찾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곳이 지역적 의미로서 젊은 사람들의 낭만과 청춘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물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던가. 그 수많은 세대 교체 속에는 철호처럼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소시민의 애환이 흐르고 있을 것이었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사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해방촌의 존재 의미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다.

시간은 묵묵히 흘러 이곳 해방촌은 아픈 과거의 역사를 묻어두고 보다 발전된 미래로 향하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 또한 해방촌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남루한 해방촌을 떠난다 한들 갈 곳이 없었던 과거의 이들의 목소리를 포착해야만 했다. 동생 영호의 수감과 아내의 죽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한 채 갈 곳을 잃고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 여겼던 이의 영혼이 해방촌 골목의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다 정신적 몰락을 견디지 못하고 가야할 길을 잃은, 과거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 소시민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레 내린 빗줄기는 점차 굵어져 해방촌 언덕의 꼭대기에서 시작점까지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은 결코 한 결론으로 마무리되어 끝나지 않는, 소설보다 무거운 과거의 흐름이자 어금니를 모조리 뽑아내는 고통보다도 견디기 어려웠던 현실의 무게와 이로 인한 좌절이다. 『오발탄』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뜻도 마찬가지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기자는 현실의 잔혹함 앞에서 정신적 지주를 잃었던 이들에게 당신의 삶의 출발점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으며,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생명력은 정확한 목표를 향해, 현실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올곧고 우직하게 달려오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않고 해방촌의 비탈길을 따라 힘차게 흘러가고 있었다.   

*양공주: 미군 병사를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를 이르던 말.

이산희 기자  ddhh1215@mail.hongik.ac.kr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많이 본 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