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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feat. 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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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998년생 호랑이띠다. 기자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적, 어머니가 속는 셈 치고 다녀오신 점집에서는 2017년부터 기자의 ‘삼재(三災)’가 시작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걱정을 늘어놓으셨지만 정작 기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 삼재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큰 재난을 의미한다는데, 기자는 모두 미신이겠거니 하며 무시했다. 

그러나 그 삼재가 끝났다는 올해의 마지막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그 점괘가 맞지 않았나 싶다. 기자의 재난이 시작된다던 그 해 말인 2017년 11월, 기자는 이 S동 211호에 발을 들였다. 기자는 선배들에게 ‘언론인이 되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바빠지고 싶어서 들어왔어요’라며 입사 이유를 밝혔다. 그 말처럼, 진짜 정말 그 말처럼 기자는 그 누구보다도 바쁜 3년, 아니 2년하고도 2개월을 보냈다.   

신문사에 입사한 후 기자는 밝던 성격이 냉소적으로 바뀔 만큼 많은 일을 겪었다. 처음 느껴보는 시간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과 타인과 대화하며 그 안에서 얻고자 하는 정보를 충분히 알아내야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매 기사마다 져야 하는 ‘김성아 기자’라는 이름 아래 주어지는 책임감이 기자를 바꿨다. 나는 그저 학보를 발행하는 신문사에 입사했을 뿐인데, 활동을 계속하며 지게 된 무거운 감정들은 점차 쌓여 밝기만 하던 기자를 어둡게 덮어씌웠다.  

그래서 기자는 신문사를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고 해야 하나. 특히 3학년이 되며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더 심해지자 과거의 결정에 대해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가 삼재를 더욱 삼재답게 만들었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가중되는 책임감과 스트레스는 S동에 디디는 발걸음에 무게를 더했다. 매주 철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들이키는 새벽 공기는 온몸의 털을 쭈뼛쭈뼛 세우며 신문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겨 주었다. 모든 순간이 재난이었다. 뒤에 바짝 따라붙은 ‘마감’ 기한이 재난 영화 속 주인공을 잡아먹는 폭풍우 같았다. 삼재라는 말은 정확했다. 신문사 생활은 기자에게 정말 ‘재난’ 그 자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남기고 떠난다. 재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재난이 휩쓸고 간 폐허 속에서 자신들을 견디게 해준 사랑과 희망을 찾으며 해피엔딩을 맞은 것처럼, 기자도 재난의 끝자락에 서보니 기자를 지탱해준 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치열했던 신문사 생활은 기자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을 남겨주었고, 그 속에서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냉혹한 사회를 맛보았다. 지나고 보니 이 재난이 없었다면 지금 기자의 나이에 깨닫기 어려운 것들을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피가 되고 살이 될 경험들이겠거니 하며 묵묵히 견뎌온 지난 시간들이 정말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굳은살로 박혀 기자를 단단하게 해주었다.

지나간 2년, 그리고 곧 떠나보낼 재난에 대한 기자의 마지막 소감은 이렇다. 좋은 추억도 있었지만 재난은 재난이었고, 갓 성인이 된 기자에게 신문사는 매주 폭풍우를 선사했었다. 비 온 뒤에는 땅이 굳는다고 한다. 2년 2개월간의 기나긴 폭풍우였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또한 그저 인생에서 계속 만나게 될 하나의 ‘비’일뿐이었고 그 비가 지나간 오늘의 기자는 단단하게 굳은 땅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비를 만나게 될지, 또 언제 재난이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버텨낸 기자를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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