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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강유정텍스트로 세상을 읽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지난 2월 9일(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을 동시에 받은 최초의 아시아 영화가 되었다. 봉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달성한 7개월이 지난 오늘.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향후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봉준호’ 등장 이전과 이후를 복기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한편, 본지는 올해로 창간 65주년을 맞는다. 본지를 비롯한 학보(學報)는 디지털 플랫폼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달라진 환경에 처해있다. 일부 학보는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사 위기에 있다. 그러면서 학보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해결책이 조속히 모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과연, 학보는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 요즈음 영화계와 대학 언론을 관통하는 두 물음의 해답을 찾고자 영화·언론 등 다방면의 분야와 관련된 비평 활동을 하는 강유정 평론가를 만나보았다.

 

Q.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4관왕을 달성하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영화평론가로서 이번 <기생충>의 수상에 대한 총평을 듣고 싶다.
A.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이전부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 <기생충>도 훌륭한 영화란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 많았다. 하지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상이나 받기에는 벽이 높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아카데미 측은 비영어권 영화에 배타적인 성격이 강해 <기생충>이 작품상 등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상을 받기에는 힘든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은 이러한 장벽을 뛰어넘어 4관왕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의 수상은 한국 영화사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역사를 통틀어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고 할 수 있다.

 

Q. <기생충>은 세계 공통의 문제로 떠오른 양극화·계급문제를 다뤘는데,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조커(Joker)>(2019)도 양극화·계급문제에 관한 영화이다. <조커> 이외에도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문학·영화가 많은데, <기생충>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A. 
<기생충>은 현대 세계에서 심화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도시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반지하 방 공간과 상류층의 넓고 쾌적한 주거 공간을 대조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한눈에 그들 사이의 경제적 차이를 알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기생충>은 *미장센(mise en scene)을 활용하여 관객들이 거주 공간의 차이가 곧 계급의 차이로 인식하게끔 하는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 <조커> 속 한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와 <기생충> 모두 계급화된 사회를 ‘계단’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계단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해선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조커>에서 ‘계단’은 특정 인물의 본성(本性)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세상의 규범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던 주인공 ‘아서 플렉(Arthur Fleck)’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신의 본능에 따른 삶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조커> 속 계단은 극 중 인물의 진정한 자기로의 복귀가 돋보이는 장치다. 반면 <기생충>의 계단은 ‘가면’에 빗대어 논의될 수 있다. 극 속에서 아들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이 대사에는 기택이 계단만 올라오고 나면 기택의 가족도 상류층에 편입할 수 있다는 기우의 착각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세찬 비를 맞으면 가면이 찢겨 자신의 본 얼굴이 드러나듯, 계단은 기택 가족이 잠깐이나마 상류층의 삶을 살았던 모습을 지운 채 그들이 속해 있던 계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덧붙여, 두 작품의 전체적인 서사 전개 방식에서도 차이점이 있다. <조커>는 크게 보면 판타지 장르에 가깝다. 아서 플렉이 고소득 계층(부르주아 계급)을 상징하는 ‘증권맨’을 살해하며 일부 관객들에게 순간적인 희열감을 주기는 하지만, 이는 영화적 해결에 불과해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1920년대 유행했던 카프 문학(KARF)의 서사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플렉의 틱장애, 플렉 어머니의 양육방식 등 개인적인 이유가 주로 제시된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회 구조 등 다른 요인들은 자연스레 소거해버리고 인물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을 쉽게 단정해 버린다는 점에서 카프 문학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기생충>은 원인을 특정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끝내 올라갈 수 없는 계급의 장벽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조커>와 다르다.
*미장센(mise en scene): 무대 위에 있는 시각적 요소들을 배열하고 조직하는 연출 기법

 

Q.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봉준호 너머’ 새로운 봉준호를 기다리며>(경향신문)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달성 이후 ‘포스트 봉준호’의 등장을 위한 복기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향후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하여 봉 감독의 이번 수상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봉준호 감독/출처:연합뉴스

A. 먼저 봉준호 감독의 데뷔 시기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봉 감독의 등장은 천재의 돌발적 출현이 아니다. 봉 감독이 영화를 처음 연출하기 시작한 시기 영화계는 영화라는 예술 매체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이 있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연출가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할 수 있었고, 투자자·평단도 그 시도에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영화가 수익 창출의 매개로 변질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연출가나 투자자 모두 영화 제작 과정에서 실험적 기법을 활용하는 등의 모험적 시도를 피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요즈음에는 개성적인 작품보다 ‘흥행 공식’을 따르는 영화들을 이전보다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의 상황 속에서 봉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달성을 영광스러운 순간으로만 바라봐선 안 되고 한국 영화계에 대한 경고음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심화된다면 개성 있는 영화들이 지속해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제2의 봉준호’를 발견할 수 있는 토양을 조속히 다져야 한다. 해외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 영화 <벌새>(2019)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을 생각해보자. <벌새>는 김 감독의 자전적인 서사가 담긴 특색 있는 영화로 여러 각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김보라 감독과 같은 연출가들을 독립영화계에서 머무르게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봉준호 감독처럼 예술성도 갖추며 규모 있는 상업 영화도 제작할 수 있도록 영화계의 많은 이들이 가교 구실을 해내야 한다고 본다. 덧붙여 관객들도 낯설고 난해한 영화에 지속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올해로 창간 65주년을 맞는 홍대신문을 포함해 많은 학보사가 디지털 플랫폼의 변화 등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환경에 처해있다. <저널리즘 토크쇼J>(KBS)에 출연하며 언론 비평가로도 활동하는 만큼, 학보사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A. 
디지털 플랫폼의 변화로 독자 수가 줄며 많은 학보는 위축된 분위기 속에 놓여 있다. 지금의 학보는 대개 한 주간의 교내에서 발생했던 소식을 종합하고, 인문 교양지의 역할에 그친다. 이러한 역할은 디지털 환경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의제를 설정(Agenda Setting)하여 뚜렷한 정체성을 띤 학보로 변화해야만 한다. 제언한다면, 홍대신문은 문화·예술 분야를 주된 의제로 한 학보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문화 정책을 연구한 기사나 예술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기사, 문화·예술산업 경영 관련 기사 등 논의할 수 있는 범위는 넓다. 문화·예술 분야로 유명한 홍대 거리가 인접해 있는 만큼 주변에 취재원도 많아 적절한 대응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Q. 영화평론가 등 비평가를 꿈꾸는 본교 학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A.
 무엇보다 자신만의 취향을 찾았으면 한다. 자신의 취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곧 평론이기 때문이다. 간혹 취향은 주관적인 성격을 띠기에 객관적인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준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지적은 틀렸다고 본다. 일례로 어떤 이가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고 한다면, 그는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기에 봉 감독에 대한 평론을 준비하기 위하여 객관화된 근거를 찾는 데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지 않을까. 그리고 취향을 찾을 때 ‘나는 A 작가가 좋아’에서 그치지 말고 ‘A 작가의 B 작품이 좋아’ 식으로 계보화(系譜化)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다만 요즘은 자신의 취향을 찾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많은 이들이 취업을 위한 학점·스펙 관리 등으로 바쁘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방치하기 쉽다. 하지만 비평가를 꿈꾼다면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비평가를 꿈꾸는 학우들에게는 자신의 취향을 찾고 계발하는 것이 점수로 나타나는 몇몇 스펙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주형 기자  timpark091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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