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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의 실상
  • 김 은 정 (세종 교양과 교수)
  • 승인 2020.09.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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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왕세자입학도첩>, 년도미상, 수묵채색, 34.1x46.5cm,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조선시대의 왕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천하는 선비로서 이상적인 군자상을 완성하여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하였다. 군주이면서 선비로서의 몸가짐을 갖추어야 하였던 것이다. 조선 사회 전반의 체계가 성리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구동되는데, 왕이 성리학적 사유를 공유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위기가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왕이 성리학적 자질을 갖추도록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교육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왕세자 교육은 국가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그렇다고 왕세자 교육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대상자가 왕위계승자이고 학부모가 군왕이어서 생기는 특수성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일반적인 사대부가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랐다. 왕세자도 동몽기(童蒙期 : 8-15세)에 성리학적 인성 함양의 교육과정에 따라서 성리학 관련 서적을 순차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다만 왕세자는 도덕 함양과 이의 실천을 체화하도록 각별한 관리를 받게 된다. 

왕세자는 책봉례(冊封禮)로서 왕위계승자의 신분이 공식화되면, 성균관 유생의 신분을 갖게 되는 입학례(入學禮)를 올리고 본격적인 성리학 수업을 받게 된다. 책봉례와 입학례는 착용하는 복색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여러 의례와 절차를 소화할 만한 나이가 되는 8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 왕세자 교육기관인 시강원(侍講院)이 구성되는데, 사(師)․부(傅)․이사(貳師)․빈객(賓客)의 스승과 십여 명의 시강원 관원이 임명된다.

왕세자에게 스승은 왕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존대해야 하는 대상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품성을 익히게 하도록, 주로 높은 신분의 원로대신을 스승으로 임명하였다. 스승이 정해지면 왕세자는 스승에게 사제(師弟)의 예를 다하고 예우해야 한다. 상견례(相見禮)를 실시하여 스승에게 먼저 읍하고 스승보다 뒤에 계단을 오름으로써 사제관계를 확실히 하였다. 또한 평소에 스승에게 질병이 있으면 반드시 관리를 보내 문안하고, 사부가 돌아가신 경우는 직접 문상하기도 해야 하였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왕세자 교육을 담당한 이들은 10여 명의 시강원 관원이다. 왕세자의 학습 시간인 서연(書筵)에 2명의 시강원 관원이 참여하여 왕세자의 학습을 보살폈다. 또한 시강원 관원은 왕세자의 비서이기도 하여 왕세자의 건강을 살피고, 왕세자가 참여해야 하는 의례 등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왕세자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임금에게 보고하여 재가를 받은 뒤에 결정하였다. 

그러면 왕세자 교육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서연(書筵)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서연에는 정규 강의라 할 수 있는 조강(朝講), 주강(晝講), 석강(夕講)과 비정규 강의인 소대(召對)와 야대(夜對)가 있다. 서연의 종류가 다양하고, 시간대별로 명칭이 붙었기 때문에 왕세자가 아침공부, 점심공부, 저녁공부, 보충학습, 야간학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규 강의는 하루에 한 번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주로 주강을 하게 되는데, 가을과 겨울철에는 오전 9시 전후에, 봄과 여름철에는 오전 7시 경에 실시한다. 이 때 시강원 관원 2명이 들어가 일정 분량의 책 내용을 읽고 뜻을 해설해 준다. 오늘날의 학생들의 학습시간에 비하면 매우 적은 시간 동안 소량의 내용을 배운다. 대신 배운 분량을 다음 시간에 모두 암송해야 하므로 정규 수업 뒤에 배운 내용을 100번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 글을 백 번 읽으면 뜻은 저절로 깨우쳐진다)’이 되도록 한 것이다.

서연은 매일 여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사정상 쉬는 날이 많았다. 국기일(國忌日 : 왕실 제사), 전시(殿試 : 임금이 참여하는 과거시험), 사신 접대, 능행 등 공식적인 의례가 있는 날이면 서연을 쉬었다. 또한 왕세자 자신의 건강이 나쁜 경우와 왕이나 대비 등의 건강이 안 좋은 경우도 서연을 쉬었다. 한편, 일정 분량의 진도가 나간 뒤에는 서연을 쉬면서 복습하는 기간을 별도로 두기도 하였다. 

비정규 강의는 왕세자가 요구하거나 시강원 관원이 건의하여 별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국상이 있을 경우 서연을 장기간 쉬게 되는데, 이 경우 학습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정규 강의로서 소대를 열어 학업이 지속되도록 하였다. 또한 입학례나 회강례(會講禮)를 앞두고 보충학습이 필요한 경우 시강원 관원이 소대를 열도록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대를 왕세자가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28세에 왕세자에 책봉된 영조만이 매일 주강을 여는 것은 물론이고, 소대까지 열어서 열정적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서연에서 학습하는 내용은 성리학 교재였다. 성리학은 인성을 연구하여 실천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성리학 교재에는 성리학 지식뿐만 아니라 인성함양의 방법을 탐구하는 내용이나 생활 윤리 등이 담겨있다. 학습 순서는 『소학(小學)』→ 『대학(大學)』→사서(四書)→오경(五經)→역사서(歷史書)로 정해져 있다. 『소학』을 학습하기 전에 기본 한자와 유교 윤리에 대한 지식을 『千字文』과 『효경(孝經)』을 읽어 배웠다. 

▲작자미상, ,<회강반차도>, 년도미상

 

왕세자의 학업에 대한 점검은 회강례(會講禮)에서 이루어진다. 이때 왕세자의 스승인 사․부와 빈객이 참여하여 강론한다. 수업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선 의례가 상견례에 준하게 행해져서 참석한 스승에 대한 왕세자의 예우와 배려를 드러낸다. 원칙상 회강례는 한 달에 2번 열려야 하지만, 회강을열려면 왕세자의 학업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의례를 무난히 수행하고 사부 이하 10여 명의 궁료들로부터 장시간 질문을 받고 대답할 만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11세 이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론은 세자가 전에 배운 내용을 암송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사(師)가 다음 구절을 진강하고, 사부빈객은 물론이고 참석한 모든 관원이 돌아가며 문의를 설명하고 세자 또한 적절한 대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는 형식을 띠었다. 이때 사부 등은 학습 내용을 일상에 실천하는가 여부를 집중적으로 묻기도 한다. 모든 질의응답이 끝나고는 회강이 파하면 술자리를 베풀고, 참석자 모두에게 품계에 따라 표범가죽, 비단, 옷감 등의 하사품을 나누어 주어 위로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잔치와 상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회강례를 자주 열지 못하였다.

영화 <사도>에 영조가 어린 세자를 가운데 앉히고 원로대신이 겸직한 사부빈객 이하 여러 관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업을 점검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회강례를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회강례는 매우 드물게 열렸고, 어린 시절에는 아예 열지 않도록 되어 있다. 실제 왕세자 교육은 시강원 관원들에 의해 1:1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소량의 진도를 반복 학습하여 내용을 완전히 암송하도록 하였고, 자체적으로 학업 점검을 하였다. 왕세자는 학업 외에 많은 국가 의례에 참여해야 하고, 웃전에 문안해야 하는 등, 매우 빽빽하게 짜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반 사대부가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하겠다.

 

김 은 정 (세종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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