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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불편한 진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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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해 할리우두 주류 감독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의 영화감독이 있다. 바로 ‘봉테일’ 봉준호(1969~)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2000)로 데뷔하면서 20년간 영화계에 머무르며 자기 특유의 색깔을 유지해왔다. 이렇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던 그는 ‘봉준호 유머’ , 봉준호 월드’ 등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며 ‘봉준호’를 영화사에 새로운 대명사로 정의했다. 특히 그는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 시스템의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앞으로 살펴볼 봉준호 감독의 최근 세 작품은 각각 현대의 사회 시스템을 향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진실을 전하고 싶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가장 최근 작품이자 황금종려상 수장작인 <기생충>(2019)은 두 가족이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현대 대한민국 계층사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는 다른 이들의 와이파이에 의존하며 반지하에 거주하는 ‘기택’의 가족과 넓은 마당과 고급진 3층 집을 가진 기업의 회장 ‘동익’의 가족이 등장한다. 연관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족은 장남인 ‘기우’가 학력위조를 통해 동익의 딸의 과외를 맡으면서부터 서로 얽히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동익의 아들의 미술교사로 기우의 동생 ‘기정’이, 운전기사로 아버지 기택이, 마지막으로 가정관리사로 어머니 ‘충숙’까지 모두 동익의 집에 취업한다. 하지만 그의 집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기택네 가족만이 아니다. 전임 가정관리사인 ‘문광’의 남편이 집안의 식량을 훔쳐먹으며 지하 방공호에 몰래 거주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에는 동익네, 그들의 집에 기생하고 있던 기택네와 문광네는 피를 보는 갈등을 겪으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 한다. 영화는 반지하, 소독차, 짜파구리 같은 한국적 이미지를 가득 채우며 대한민국에 은연하게 존재하는 계급의식을 보여준다. 자본에 따라 나뉜 기택네와 동익네의 대비되는 모습은 영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들의 삶은 지하와 지상이라는 공간적 위계 그리고 냄새로 구별되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선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게 묘사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암울한 방식으로 다시금 반지하 어둠 아래에 주저앉으면서도 동익의 저택을 매입하는 계획을 상상하는 기우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참한 현실을 부각시킨다. 결국 영화는 고착화된 빈부격차와 계층 갈등이 당연시되어버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옳은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관객들 스스로에게 던지도록 한다.

<기생충>이 한국 사회의 계급의식에 대한 질문을 했다면, <옥자>(2017)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공장제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길들인 슈퍼돼지의 탄생이다. ‘옥자’는 대한민국 강원의 어느 산골 집에 맡겨져 ‘미자’라는 소녀와 함께 살아가는 슈퍼돼지다. 옥자는 미자에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족이지만, 그를 개발한 기업인 ‘미란도 그룹’에게는 그저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만들어낸 제품이자 자산일 뿐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입장 차이로부터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미란도 그룹은 슈퍼돼지를 회수해 판매하기 위해 옥자를 납치해간다. 이에 미자는 미란도 그룹을 상대로 옥자를 되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결국 미자는 옥자를 되찾지만, 미란도 그룹과 자본주의식 거래를 통해 옥자를 되찾았다는 점과 수많은 슈퍼돼지들은 변함없이 도축될 운명이라는 점은 관객들에게 찜찜한 해피 엔딩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는 수많은 돼지가 잔인하게 도축되지만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대다수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봉준호 감독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고 있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자본주의는 동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 중심적인 구조로, 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선 두 작품이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우리 사회의 물질적인 시스템을 다루었다면 <마더>(2009)는 비물질적인 시스템을 향해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28세의 나이지만 정신장애가 있는 ‘도준’과 그의 엄마다. 어느 날 그들이 살고 있는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도준이 지목된다. 엄마는 하나뿐인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고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직접 사건을 탐문하며 조사한다. 그러나 이후 엄마는 실제로 자신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를 죽이고 그의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한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진범인 도준은 풀려난다. 이 영화는 기존의 숭고하고 절대적 선의 이미지로 인식된 모성애를 비틀어 ‘과연 모성애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즉, 사회시스템이 만들어낸 모성애의 순수성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대중들이 이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엄마 역할의 배우 김혜자의 연기와 그녀가 기존에 가진 ‘국민 엄마’라는 이미지를 통해 설득력을 갖춘다. 특히 모든 진실을 알아챈 엄마가 처연한 표정으로 말없이 절규에 가까운 춤을 추는 장면은 모성애에 충실했던 그녀의 비극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회에서 보이는 모성애의 아름다움 밑에 실은 슬픔과 불안 그리고 이를 넘은 광기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 깔려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의 영화 비평 매체 「인디와이어」는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봉준호’라는 장르는 무엇인가? 탈(脫) 장르적인 그의 작품에서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항상 관객들과 우리 사회를 향해 질문을 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또한 우리에게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관한 각기 다른 질문을 해왔다. 즉 ‘봉준호’라는 장르의 영화는 현실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하나의 언어인 것이다. 앞으로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져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의 답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바꿀 수 있을까?

 

박성준 기자(gooood82@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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