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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난 여정, 『용두각을 찾아서』(1992)

당신의 ‘용두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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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의 모습
▲수원역의 모습

따뜻했던 지난 겨울이었지만 기자의 여정을 시샘이라도 하듯 유난히도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2월의 어느 날, 기자는 수원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기에는 짧은 서울부터 수원. 하지만 여행의 설렘을 느끼고자 기자는 기차에 올랐다. 기자는 지난 겨울 동안 삶에 대한 고민 탓에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용두각을 찾아서』(1992)의 주인공인 ‘나’ 역시 일상의 권태감 속에서 기자와 같이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상황이다. ‘나’의 곁을 갑작스레 떠난 어머니는 ‘나’의 안식처였지만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장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처럼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어머니가 젊은 시절 위로받았던 ‘용두각’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자신과 어머니의 과거를 떠올리며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아간다. 기자는 수원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책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며 기자 또한 ‘나’처럼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수원역 광장은 서울행 출근길로 휩쓸려들어가는 직장인들로 북적거렸다. 수인선을 어떻게 타냐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던지는 물음에 날파리 소리를 내며 스쳐 가는 사람들은 별 한갓진 놈 다보겠다는 식의 코방귀만 삐뚜름히 날릴 뿐 상대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수원역에 도착하자 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 탓인지, 시간에 쫓기는 탓인지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제 갈 길을 찾아가기에 바빴다. 밤새 야근한 후 인천의 소래포구에 찾아가고자 수원역에 도착한 ‘나’는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 속에서 무관심과 소외감을 느낀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소외감을 느낀 ‘나’는 소래포구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무엇엔가 이끌리듯 ‘용두각’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가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일까. ‘나’가 용두각을 찾기 위해 첫 발걸음을 내딛었던 수원역에 도착한 기자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느낀 텅 비어버린 듯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지난 겨울부터 크게 돌았던 병 때문에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누군가 말이라도 걸까 종종걸음으로 역을 빠져나갔다. 잠시 수원역 광장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나’가 느꼈던 소외감보다 더 깊은 공허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1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사람들이 떼지어 우르르 내리는 데가 종점이려니 싶어 엉겁결에 따라 내려보니 경기대학교 어귀였다. 그 옆에는 옛날 갱개미라고 불렸다는 수원시 상수도 광교 수원지 둑방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갱개미와 용두각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고 했겠다.

 

‘나’는 용두각을 찾으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난관을 맞닥뜨렸다. 용두각의 위치를 묻기 위해 들어간 복덕방에서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자 ‘나’는 좌절하며 그 바로 옆에 위치한 광교 저수지로 향한다. 그를 따라 도착한 광교 저수지는 탁 트인 전망과 더불어 조용하고 한적해,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 속, 그의 애인인 ‘주영’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겹쳐 보았던 기억과 임신중절 수술로 주영과 겪었던 아픔을 회상한다. 이에 주영은 ‘나’에게 ‘모성 강박관념’이라며 벗어나지 못한다면 평생 허깨비로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러한 주영에게 ‘나’는 미안함과 후회의 감정을 느끼며 그가 가진 모성 강박관념에 대해 깨닫는 계기가 된다. 비록 기자가 그 감정들을 오롯이 느낄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고자 오랫동안 저수지 앞에서 서성였다. 광교산을 따라 거세게 부는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나’의 감정들은 기자에게 조금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광교 저수지의 모습
▲광교 저수지의 모습

“화룡문이 아니고 아마 화홍문인 게지. 쪽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개천 따라 내려가보슈.” 

화홍문은 물론 용두각이 아니었다. 그러나 먼발치서부터 화홍문 위쪽에 우뚝 솟은 누각이 용두각임을 대번에 알아채고 나는 가슴속을 뻐근히 휘젓고 올라오는 설렘을 서서히 아우르고 있었다.

▲화홍문의 모습
▲화홍문의 모습

책의 말마따나 광교 저수지에서부터 흐르는 개천을 따라 버스를 타고 내려오자 머지 않은 곳에서 화홍문을 찾을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화홍문을 보자 마치 ‘나’가 그랬던 것처럼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전쟁 직후의 힘든 현실을 살아가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위로받던 곳이었던 용두각을 곧 만날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화홍문은 용두각에 도달하기 직전에 만날 수 있었다. 무지개를 뜻하는 홍(虹) 자를 쓰는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책에 몰입한 탓이었을까 기자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을 느꼈다. 드디어 도착한 화홍문에서 ‘나’는 인천의 소래포구를 뒤로하고 갑작스레 용두각으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찬찬히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기자 역시 ‘나’의 생각을 따라잡기 위해 화홍문에서 이어지는 다음 행선지인 용두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용두각은 경비 초소인 각루답게 전후좌우 전망을 빈틈없이 확실하게 틀어쥐고 있었다. 잘 꾸며진 용못을 발치에 두고 있는 용두각은 본래부터 풍류용으로 지어진 게 아닌지 새삼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바람이 건듯 불자 누각 아래 연못가에 머리를 감는 아낙인 듯 휘늘어져 있떤 버드나무 가지들이 일제히 출렁거렸다.

▲용못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용못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그의 발자취를 따라 도착한 마지막 행선지인 용두각, 즉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고요함을 품은 채 고고한 분위기로 기자를 사로잡았다. 이곳에서 ‘나’는 단순히 수원역에서 느꼈던 소외감 때문에 우연히 찾아오게 된 줄 알았던 용두각은 사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자신과 얽힌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석탑의 형상으로 떠오른 어머니를 보며 그동안 자신을 옭아 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떠한 응어리를 마침내 떨쳐낸다. 앞서 주영이 말한 허깨비를 깨고 자신을 있게 한 어머니에 대해 벗어나려는 노력은 곧 ‘나’의 주체성을 찾고자 떠난 여행임을 보여준다. 

책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방화수류정은 고요한 용연과 그 위에 드리운 버드나무, 누각 위의 용머리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고요하지만 그 강인함을 뽐내는 듯했다. 이러한 강인함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강인했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그렇게 ‘나’는 주영과의 관계에서 겪은 아픔과 어머니와의 과거들 모두가 지금의 자신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기자는 ‘나’처럼 방화수류정이 용연에 비쳐 마치 잠기는 듯한 기분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가 같은 자리에 앉아 생각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들이 기자에게 와닿는 듯한 기분이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버거운 일들을 뒤로하고 찾은 이곳에서 기자는 기자 자신에 대해 오롯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일상에 지쳐 회피하기만 했던 근본적인 고민인 ‘나는 누구이며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이곳에서 기자는 이런 생각들이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며, 살아가며 한 번쯤은 겪는 관문이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수원을 뒤로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자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용두각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를 얽매던 강박관념을 털어내고 일상 속으로 돌아오던 ‘나’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바쁘고 버거운 일들의 연속인 일상 속에서 기차를 타고 떠났던 이 잠깐의 여행은 기자에게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을 주었던 선물 같은 여정이었다. 기자는 이 소설 속의 ‘나’처럼 이런저런 아픔 모두 현재의 기자를 존재할 수 있게 한 추억들이며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 중 일부임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찾기 위한 발판이 된 이번 여행을 계기로 기자의 짧은 방황이 어서 끝나 소설 속 ‘나’처럼 한 단계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방화수류정의 모습
▲방화수류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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