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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인간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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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를 팬데믹(pandemic)으로 선언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와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K-방역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를 위시한 전염병에 대한 전방위적 관심은 당연하다. 전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성 미생물들이 감염된 인간이나 동물로부터 면역력이 없는 다른 인간이나 동물에 침입해 증식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이다. 병원성 미생물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공존해왔지만, 그들의 관계가 단순히 공존의 관계만은 아니다. 병원성 미생물이 일으키는 전염병은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전염병의 역사가 전염병 자체에 관한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역사인 이유다.

역사적 팬데믹 하면, 보통 14세기 유럽 인구의 대략 1/3을 앗아간, 이름도 무서운, 흑사병(Black Death)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그 전이나 이후에 유럽을 할퀴었던 많은 전염병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일찍이 기원전 430년경 티푸스로 추정되는 ‘아테네 역병’이 도시 국가 아테네를 강타하여, 아테네 인구의 대략 1/4~1/3이 목숨을 잃었다. 거기에는 직접 민주주의의 완성자로 추앙받던 페리클레스(Pericles)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 중심의 힘의 재편과 평화가 있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에도(특히 165년경) 홍역 또는 천연두로 추정되는 ‘안토니누스 역병’이 로마를 공격하여 사망자 수가 오백만 명에 육박했다. 로마 제국 최고의 황제로 기억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도 이 병으로 사망했다. (모 영화는 전염병 대신 아들을 부친 살인자로 둔갑시켰지만 말이다) 541년에도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인 로마법대전을 편찬했던 황제의 이름을 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을 공격하여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의 인구 20~40%가 목숨을 잃었다. 흑사병 이후에도 새로운 팬데믹(예를 들어 스페인 독감)들은 계속 찾아왔으며, 우리도 사스(SARS)나 메르스(MERS) 같은 전염병의 위력을 직접 접한 바 있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전염병의 역사다. 

팬데믹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문명이 쇠퇴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크게 발전했을 때 창궐했다. 문명이 인간, 재화 및 문화뿐만 아니라 질병이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서양 중세 시대 중에서 경제와 교류가 위축되었던 시기에는 전염병이 거의 발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전염병은 바로 인간 문명의 불행한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또 팬데믹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적이지만, 전쟁과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의 도움을 받아 그 힘을 증폭시켰다. 죽음과 함께 하얀 말을 타고 오는 묵시록의 세 기수가 역병, 전쟁, 기근이란 말처럼 말이다. 현재 인류가 전쟁과 기근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팬데믹은 한 번의 방문에 만족하지 않는다. 14세기에 발생했던 흑사병이 유럽에서 완전하게 사라진 시기는 17세기였다. 19세기 초에 발생했던 콜레라가 진정되는 데에도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의 문명 수준을 고려할 때,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의 발생은 정해진 미래였다. WHO가 이십여 년 전에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로 선언했었지만,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역사적인 팬데믹처럼, 코비드-19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또 다른 동반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사실 과거와 비교하면 현재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 인류애에 기반한 시민의식 등등.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염병의 역사를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 방역을 넘어 마음의 방역도 철저히 하면서 다시금 인류의 역사인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써나가면 된다. 최근 역주행 인기를 짧게 누렸던 『페스트』의 저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과거로부터 보내온 메시지는 울림이 있다. 그는 전염병으로 인해 인간이 생각할 힘을 상실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합리적 생각은 인간 존재의 증거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전 세계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꿈꾸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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