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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만 같은 시간들이룰 수 없는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시한부 인생’과 ‘사랑’, 이 둘은 그야말로 상극의 만남이다.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이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진호(1963~)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는 이 두 요소를 절묘하게 배치시켜 죽음을 앞둔 이의 사랑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만,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일상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구청의 주차단속 요원 ‘다림’과 우연히 만나게 된 정원은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다림도 친절한 정원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며 함께 놀이공원에 가고, 맥주도 마시는 등 점점 가까워지지만, 이내 정원의 몸 상태가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이해 그들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상당한 인기를 누린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수능 모의평가 지문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지난 2013년에는 재개봉하기도 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일까. 기자는 정원과 다림의 애틋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이 싹텄던 「초원사진관」과 그 주변의 모습들은 어땠을지 궁금해져 영화의 주요 촬영지였던 군산으로 향했다.

▲「초원사진관」 세트장의 모습. 사진관 지붕에는 하얀 눈이 쌓여 크리스마스같은 느낌을 냈다.

다림: 왜 웃어요? 이상하다. 잘 찍었는데, 아저씨가 잘못한 거 아녜요?

정원: (웃음)

다림: 할 수 없죠 뭐. 아저씨 필름 좀 넣어 주세요.

정원: 필름을 넣을 줄 몰라요?

다림: 좀 해주세요.

정원: 이리 와봐요. 가르쳐 줄테니 잘 들어요.

기자가 「초원사진관」을 찾아 군산으로 향한 날, 하필 전국에 폭설이 내렸다. 그래서였는지 거센 눈보라를 뚫고 도착한 초원사진관 근처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따금씩 쌓인 눈에 자동차 바퀴가 헛도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인적은 거의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초원사진관」은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었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어 개방 시간이 끝난 탓이었다. 기자는 아쉬운 대로 창문 틈으로나마 사진관 내부를 구경하며 영화 속 장면을 연상했다. 비록 영화 속 사진관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충실하게 재현해 놓아 정원과 다림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아쉬움을 머금고 사진 촬영을 마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뒤를 돌아보니 기자의 또래로 보이는 남녀가 서 있었다. 기자는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었다. 비록 정원만큼의 사진 찍는 실력도 없고 촬영 기기도 사진관에서 쓰는 카메라가 아닌 휴대전화 카메라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자가 정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두 남녀는 사진 촬영 뒤 감사 인사를 남기고 길을 떠났다.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기자는 묘한 애틋함을 느꼈다. 「초원사진관」에서 또 하나의 풋풋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군산서초등학교의 모습. 정원은 이곳에서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다.

다림: 왜 나만 보면 웃어요?

정원: 귀여워서.

다림: 싱겁기는….

「초원사진관」을 뒤로 하고 기자는 그들의 추억을 좀 더 느껴보고 싶어 정원과 다림이 함께 거닐었던 곳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군산서초등학교였다. 이곳에서 정원과 다림은 함께 운동장을 달리기도 하고, 그늘이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약 5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초등학교의 모습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만큼 학교 건물은 이곳저곳 손을 본 티가 났지만, 다른 곳들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정원은 이곳을 어린 시절부터 종종 찾아오곤 했다. 그는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운동장에 앉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의 아버지와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사라질 것을 실감하면서도 다림과 함께 운동장을 찾았던 정원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며 기자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운동장을 보며 겉으로는 담담한 듯 보였지만 홀로 있을 때면 남 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던 정원의 모습이 떠올라 누구든 죽음이란 받아들이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골목길 곳곳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림: 큰일 났네. 내일부터 무서워서 이길을 어떻게 다니지. 아저씨도 귀신이 무섭죠? 직접 냄새까지 맡았으니까?

정원: 어떨 때는 무섭고, 어떨 때는 안 무섭기도 해.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거 아냐? 다림이나 나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런데 어떨 때는 막 무서워져.

초등학교를 나선 기자는 근처의 골목길과 큰길가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유난히 오래된 건물들이나 간판들이 즐비해 있었다. 알고 보니 ‘군산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로 그 일대의 옛 건축물들을 보존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영화의 배경인 1990년대 후반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큰길가에는 그때와 차종은 다르지만 인도를 넘어 불법 주차된 차들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주차단속 요원이던 다림이 이 모습을 봤더라면 여지 없이 주차위반 딱지를 끊고 사진을 찍어 초원사진관으로 달려갔으리라 생각하니 기자도 모르게 옅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군산 영화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군산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다른 영화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도로 구석에 위치한 영화 필름 형태의 구조물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 이야기’라는 영화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기자의 발걸음을 사로잡은 영상 속 정원과 다림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놀이공원에서의 데이트, 비 오는 날 한 우산 아래에서 함께 걷고 있는 모습, 사진관에서 손짓 발짓으로 서로 장난을 치는 모습까지.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과 행복이 반비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정원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정원이 다림에게 털어놓은 ‘어떨 때는 죽음이 무서워진다’는 고백은 다림과의 행복한 시간을 잊고 싶지 않았던 정원의 속내였을지도 모른다.

▲「초원사진관」으로 돌아와 자신의 생애 마지막 사진을 찍는 정원(위). 그 사진은 그의 영정사진으로 쓰였다(아래)./ 출처: 네이버 영화

정원(내레이션):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영화는 정원의 죽음 이후 다시 사진관을 찾아 추억을 회상하는 다림의 모습과 정원의 내레이션이 겹쳐지며 끝이 난다. 그의 영정사진은 유난히도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본인 손으로 직접 찍던 순간 정원의 심정은 꽤나 복잡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백처럼 다림과의 사랑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 기자의 휴대전화에서는 정원 역할을 맡았던 배우 한석규(1964~)가 부른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엔딩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다’던 가사처럼 정원은 다림과의 사랑을 간직한 채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났다. 평소에도 가끔씩 듣곤 했던 노래였지만, 그 날만큼은 유난히 가사들이 기자의 마음을 쿡 찔러댔다. 사실 기자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었음에도 다림에게 알리지 않고 다림의 애정 공세도 거절하지 않은 정원의 소극적인 태도가 영 탐탁치 않았다.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림은 아무 소식 없이 자취를 감춘 정원을 원망하며 사진관 유리에 돌을 던지기까지 했으니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정원이 다림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해줬다면, 혹은 다림과 정식으로 연인이 되었다면 정원이 죽었을 때 다림이 느꼈을 상실감과 슬픔이 말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정원의 소극적 태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종의 마지막 배려가 아니었을까.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그리고 정원의 진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2월의 그날은 ‘2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김주영 기자  B88102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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