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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홍대 학・예술상(소설)소설 부문 Literature - Novel

최우수 

<우리의 홈파티, 우리의 커트 코베인> 

처음 희진이 우리 집으로 놀러와도 되겠냐 물었을 때 나는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었다. 화구 한 켠에선 올리브유에 양파와 다진고기를 볶고 있었는데 그것은 소스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언가 한데 모여 볶이는 소리와 물이 바글바글 끓는 소리. 그런 소리들과 함께 희진의 음성은 들려왔다. 다음 달쯤 한번 너희 집에 초대해줘. 술은 내가 알아서 들고 갈게. 남편도 같이 와? 내가 묻자 희진은 혼자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혼자 올 거라는 희진의 음성이 조금 갈라져 있었기에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 라고만 답하였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번 홈파티를 기획하게 되었다. 홈파티. 홈파티라는 건 내 생활과는 그다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달리 부를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10월의 둘째 주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고 그것을 구태여 홈파티라 부르자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매번 그 날을 ‘홈파티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희진은 우리의 홈파티 날이 다가올 때마다 내게 수시로 카톡을 보내왔다. 대개는 ‘재밌겠다’라거나 ‘기대된다’ 같은 데이트를 앞둔 고등학생들이나 할 만한 유치한 말들이었다. 나는 남편을 둔 30대 여성이 하는 그런 말에, 특히나 희진이 하는 그런 말에 대꾸하는 것이 영 익숙치 않았고 하여 매번 그저 술이나 잊지 말고 갖고 오라며 짐짓 시큰둥해 보일 수 있을 답장만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물론 내가 그 홈파티 날이라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돌이켜 보자면 신경 쓴 것들투성이였다. 나는 우선 무슨 음식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고 집안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를테면 토마토 소스로 파스타를 하고 채끝살을 곁들여 리조또를 만들자, 라든가. 냉장고에 남아있는 싸구려 와인과 물러가는 과일들론 뱅쇼를 끓이거나 샹그리아를 담그는 게 어떨까, 라든가. 또는, 안방에 있는 침구들은 깔끔해 보이도록 정리하고, 거실 소파에 묻은 먼지와 이물질은 박스 테이프로 말끔히 떼어내고, 화장실 쓰레기통은 당일 아침에 미리 비워두어야 하고 같은.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하루하루 고민을 거듭했다. 그 결과, 나는 결국 그날을 위한 하나의 루틴을 만들고야 말았다. 홈파티 전날에 장을 봐두는 것부터 시작해서 집 안 청소와 마지막 요리 준비까지.

또 그 중에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나 특별히 중요한 포인트들은 따로 워드 파일에 정리해두었다. 출근하자마자 할당받은 업무 사항들을 모조리 정리해놓고 까먹으면 안 될 것들을 따로 표시해두는 일. 이것들은 내가 학부생 시절 과사무실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면서부터 들인 습관이었다. 덕분에 같이 근무하던 선배에겐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그 선배가 일을 꼼꼼히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특히 교수나 조교들―이 보았을 때 그러한 성격이 일을 할 때의 나와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약간의 비아냥과 시기를 담아서 보낸 질타였을 거라고 학창시절의 나는 언제나 짐작했었다.

언젠가 희진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희진 또한 같은 생각이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는 오전 강의를 수강하고 학교 인근의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자주 들르던 카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그 카페는 커피가 특별히 맛있었던 곳은 분명 아니었지만 스피커에서 올드팝이나 재즈가 주로 흘러나왔고 서가엔 온갖 종류의 책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우리는 둘 다 그 점을 아주 맘에 들어했었다. 가끔씩 날이 좋으면 우리는 그 카페의 옥외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멘솔 향 담배를 피우며 카버나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나 카뮈를 이야기하곤 했다. 음악 이야기를 할 때도 왕왕 있었다. 나는 재즈나 알앤비를 좋아했지만 희진은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을 좋아했다. 오아시스나 너바나 같은. 그래서 어쩌다 카페 사장이 예고 없이 그들의 음악을 틀을 때면 희진은 노래를 듣기 위해 숨을 죽였고, 그녀가 강압적으로 내게 숨을 죽이라며 강요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 역시 그럴 때면 음악에 빠져있는 희진을 바라보며 가만히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희진은 커트 코베인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가 어떤 청소년기를 보냈고 어떤 음악을 했고 어떤 여자들을 만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담담한 말투로 한 인간의 생애와 자살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매번 생각하고 또 상상했다. 아이와 아내를 두고 방 안에서 홀로 엽총의 총구에 머리를 들이댔을 그의 심정을.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탄이 두개골을 꿰뚫기 전까지의 그 짤막한 순간을.

“커트도 죽기 전엔 무서웠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겨우 스물일곱이었잖아.”

희진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풋―하고 웃었다.

“무슨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하네. 이제 겨우 스물둘인 주제에.”

나는 쿡쿡 웃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었다.

 

거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던 것은 뎁혀놓은 파스타 플레이트에 링귀니를 담아두고 드레싱에 쓰기 위한 발사믹 식초와 꿀을 꺼내려 부엌의 찬장을 열었을 때였다. 나는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현관문 앞에서 대강 매무새를 정리한 뒤 슬리퍼를 신고 희진을 마중나갔다. 희진은 중앙현관 유리문 앞에서 위스키 브랜드 네임이 적혀있는 종이가방과 검정 비닐봉투를 한 손에 든 채 서있었다. 살이 빠졌는지 얼굴이 조금 홀쭉해 보였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학교를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희진은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걸어오던 나를 발견하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정이 깃든 미소. 학창 시절, 희진이 자주 지어보였던 그 어렴풋한 미소를 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참으로 오랜만에 희진을 다시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진짜 오랜만이다.” 희진이 말했다.

“우리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지?”

“네 결혼식 이후로는 처음이니까, 사오 년쯤 됐을걸.”

내 말에 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육 년 만이지. 나 십삼 년도 오 월에 결혼했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고 희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벌써 그렇게 됐지.”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집이 있는 15층으로 올라가며 오늘 먹을 음식과 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희진은 한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내게 무엇을 만들고 있었냐 물었고 나는 담담하게 방금 전까지 샐러드에 곁들일 발사믹 드레싱을 만들고 있었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희진은 자신도 꽤 괜찮은 술을 가져왔다며 오늘 오랜만에 만난 김에 제대로 놀다갈 거라고 말했다. 그리곤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어깨에 닿는 손바닥의 익숙한 무게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멋진 이성이 곁에 있을 때의 두근거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돌아가야만 했을 곳에 대한 향수 같은 무거운 들뜸이었다.

 

 

*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안 되었을 때였다. 슬슬 시험 시간이 끝나겠거니 싶었을 때 마침 희진이 과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앞쪽 테이블에서 공부하던 선후배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서 뒤편의 소파에 앉아있던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너 잘 봤어?”

나는 짧게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럭저럭. 너는?”

희진은 한숨을 내쉬며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주 희미하게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그것은 살이 단단한 복숭아가 내뿜는 것처럼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었다.

“잘 모르겠어. 2번은 틀리게 쓴 것 같은데.”

“2번이 뭐였지? 오스틴이었나?”

“아니. 디킨스.” 희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스틴은 나도 맞혔을 거야. 그쪽은 나도 많이 봤거든. 교수님이 강의록에서 엄청 강조하셨잖아.”

“그랬지.”

희진은 한 차례 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그리곤 으으―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토해내며 기지개를 켰다.

“으, 모르겠다. 시험도 끝났는데 술이나 마실래? 너 밥 안 먹었지?”

“응. 나도 나온 지 얼마 안 됐잖아.”

“그것도 그렇네.”

“뭐 먹고 싶은 건 있어?”

“딱히.”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그럼 오늘 오랜만에 거기 가볼까. 우리 새내기 때 종종 갔던 그 간판 없는 곳.”

희진은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거기가 아직도 있어?”

“나도 몰라. 그냥 한 번 가보는 거지.”

나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대답했다. 희진은 잠시 턱을 기울이고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마도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입술을 조금 치켜올리고 고개를 두어 번 까딱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그래. 가보자. 없어졌으면 다른 데 가면 되니까.”

결정을 내린 우리는 과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날은 10월의 끝자락이었고 가을이 끝나갈 무렵답게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상당히 쌀쌀했으며 머리 위의 햇빛은 무섭도록 빠르게 모습을 감추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자켓의 옷깃을 여미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

 

희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온더록 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설은 잘 돼가?”

등단을 한 이후로는 자주 듣는 질문이었으므로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항상 비슷하지, 뭐.”

“단편 쓴다는 거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놀랐어.”

희진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내 콧잔등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여 다시 술잔을 바라봤다. 취기 때문인지 얄쌍했던 얼굴엔 조금 홍조가 돋아있었다.

“한편으론 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스팅 글라스에 담겨있던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입천장과 목구멍이 찌릿찌릿 아려왔다. 그동안 희진은 테이블에 올린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다른 손으로는 온더록 잔을 슬쩍 움켜쥐고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술잔의 각얼음에 꽂혀있다. 그녀는 턱에 기댄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잔을 흔들며 온더록의 얼음과 술을 조금씩 섞어갔다. 호박색이었던 액체가 차차 옅은 황금빛으로 바뀌어갈 무렵 희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남편이랑 따로 살고 있단 거 말했던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희진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고 희진은 말했다. “그렇지. 우리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것도 해봤자 겨우 한 달 전이었으니까.”

이번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희진은 조용히 미소를 거두고 온더록 잔을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갖다댔다.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넘기고 잔을 내려놓은 뒤 포크를 들어 앞에 놓여있던 프로슈토를 한 조각 집어먹었다. 그리곤 다시 온더록에 손을 올려두었다. 희진이 입 안에 있던 프로슈토를 모두 넘겼을 때 내가 먼저 잔을 들었다.

희진은 나와 내가 들고 있던 테이스팅 글라스를 번갈아보더니 다시금 미묘하게 웃음을 지으며 잔을 부딪쳤다. 나는 그런 희진의 표정과 일련의 행동들이 어째선지 매우 슬퍼보인다 생각했고 때문에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얼굴을 굳히며 술을 들이켰다. 그러나 희진은 이미 내 생각을 다 읽었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나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담배나 피우자고 권했다. 희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잔에 있던 술을 남겨두고 안방에서 희진과 내가 입을 카디건 두 벌을 가져왔다. 그동안 희진은 온더록을 모두 비웠다.

“밖으로 가자. 베란다에서 피우면 윗집에서 민원 들어와.”

“그래.” 하고 희진은 말했다. 조그맣게 열린 입에서 위스키 향이 진동했다.

우리는 현관에서 각자 카디건을 입고 슬리퍼를 신었다.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탄 내가 담배를 한 개비 건네자 희진이 놀란 듯 물었다.

“아직도 이거 피워?”

나는 말했다.

“습관이 돼서.”

희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무슨 멘솔이야, 애들처럼.”

“그러게.” 하고 나는 쿡쿡 웃었다.

우리는 일 층의 중앙현관을 지나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에 있는 파고라로 향했다. 그곳에 놓여있던 나무 벤치에 앉으며 우리는 담배를 물었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귀뚜라미 소리가 온 사방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 발 밑에서는 작은 개미 무리가 보도블럭 틈새 사이의 페로몬을 따라 자신들의 집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옆에서는 꺼질 듯 말 듯 위태위태한 가로등이 파고라 천정에 얽힌 나무와 넝쿨 사이로 부들부들한 빛을 비춰주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희진과 담배를 피우며 일종의 그리움과 포근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불투명한 죄악감이 되어 내 가슴을 긁어대고 있었다. 내가 무심코 한숨을 내쉬려 했을 때 희진이 입을 열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뭐가?”

희진은 잠시 나에게로 시선을 던졌다가 위편으로 살짝 고개를 들어 파고라의 천정 끄트머리를 바라보았다.

“너랑 이렇게 담배 피우는 거.”

내가 무슨 삼류 드라마 대사 같다며 멋쩍게 웃자 희진은 이어서 말했다.

“나 담배 끊었었는데.”

“그래?”

“응. 애 때문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애가 있었어?”

“아니.” 라고 말한 뒤 희진은 다시 담배를 빨고 연기를 토해냈다.

“그러면……”

“난임이라.”

아, 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희진은 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내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슬리퍼로 지그시 밟아 찌그러트렸다. 우리는 잠시간 말없이 분질러진 꽁초에서 삐질삐질 연기가 새어나오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희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시술도 몇 번 받아보긴 했는데 어떻게 안 되더라고.”

나는 희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혹시 그런 것 때문에 남편이랑 따로 사는 건 아니지?”

희진은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글쎄. 아마 그것도 원인 중에 하나겠지. 그 사람은 항상 아이를 갖고 싶어했으니까. 하지만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일순, 이전에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그녀의 남편이 오버랩되었다. 깔끔한 아르마니를 갖춰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넘기고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쓴 채 드레스를 입은 희진과 팔짱을 끼고 있던 그 남자. 그의 얼굴과 실루엣이 떠올랐다. 구석자리에 앉아있던 내게 그는 희진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며 악수를 청해왔었다. 맞잡은 손의 악력이 아무래도 샐러리맨 같지 않다고 그날의 나는 생각했었다.

“사실 남편한테 말 안 했어.”

“어?”

내가 알아듣지 못 하자 희진은 덧붙였다.

“여기 온다는 거. 말 안 했다구.”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래, 하고 답했다. 그러자 희진은 무슨 대답이 그러냐며 실소를 터트렸다.

“하여튼 넌 예전부터 하나도 안 변했네. 그대로야.”

희진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역시 직업적으로 소설을 쓴다는 건 조금 의외긴 하지만.”

“아깐 잘 어울린다며?”

“그건 맞아. 소설 쓰는 거 너랑 잘 어울려.”

희진은 꼬고 있던 다리를 바꿔 꼬며 말했다.

“그치만 단순히 글을 쓰는 것하고 글로 먹고 사는 건 다르잖아. 나는 네가 후자를 선택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는 거야.”

“그래?”

“응. 넌 내가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거의 가장 현실적인 축에 속했거든.”

희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참 신기하게 됐네. 너는 작가, 나는 CS. 너하고 내 어렸을 적 성격을 생각해보면 반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야.”

“나도 내가 이렇게 먹고 살게 될 줄 몰랐어.”

“나도. 하다 못해 번역이나 편집 일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희진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잿빛 구름들이 느릿느릿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다들 그냥 이렇게 살고 있는 거겠지?”

“뭐가?”

희진은 한 차례 나를 돌아보고서 다시 눈을 돌렸다.

“그냥……”

희진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가를 움츠리며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하얀 털에 검정색 얼룩이 박혀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풀밭 위를 지나고 있었다. 여유롭게 걸음을 잇던 고양이는 우리의 시선을 느끼곤 잠시 멈칫하며 파고라 벤치에 앉아있던 우리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별 관심 없다는 듯 매정하게 몸을 틀고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고양이를 좇는 희진의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시는 아직 써?”

“가끔.” 하고 희진은 말했다. “아주 가끔.”

 

*

 

걸어가던 와중에 흡연구역이 하나 보였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곳에서 함께 담배를 꺼냈다. 희진은 담배를 태우면서도 시험과 학점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학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즐겨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학점에 집착하는 이유가 취직이나 대학원 진학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장학금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꿋꿋이 희진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담배를 모두 태우고 학교 밖으로 나갈 즈음에는 사위가 어두워졌다. 우리는 전광판들의 불빛이 들어오고 네온싸인이 마구잡이로 휘날리고 시끄러운 클럽 음악들이 들려오는 메인 스트릿을 유유히 지나 저층 건물과 빌라들이 가득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은 길거리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했으며, 숲 한가운데 놓인 오래된 나무만큼이나 나이를 먹었을 법한 가로등과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는 전봇대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위편에는 여느 빌라촌들이 그렇듯 시커먼 전깃줄 여럿도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우리는 머리 위를 수놓는 그 잠재적 발화 물질과 공간을 가득 메운 적막을 지나 차근차근 골목의 심부를 향해 걸음을 이어갔다.

“다섯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 모퉁이, 맞지?”

걷던 도중 희진이 말했다.

“응.”

“오랜만이네.” 하고 희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여길 언제 처음 발견했더라?”

나는 희진과 속도를 맞추어 걸으며 대답했다.

“1학년 2학기.”

희진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물었다.

“그때도 가을이었어?”

“아마 그때도 딱 중간고사가 끝났을 무렵일 걸.”

희진은 짧게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2년이나 지났는데도 별로 달라지질 않네, 우리.”

“그러게.” 내가 답했다.

오륙 분 정도를 꾸준히 걸어가자 다섯 번째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곧장 왼쪽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허물어져있던 건물의 시체가 곧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부스러진 시멘트와 벽돌 조각들, 앙상한 철골 더미와 지저분한 천 쪼가리 같은 것들을 눈앞에 두고서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없어졌네.” 내가 말했고 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하이볼 맛있었는데.” 라고 희진이 말했다. 이번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다.”

“어쩔 수 없지.”

 

그 후로도 나와 희진의 관계는 한동안 비슷했다. 우리는 시간이 날 때면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가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 음악과 뮤지션에 대해 이야기했다. 술을 마실 때면 어린 시절의 아픔이나 현재의 힘듦, 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들을 공유하며 속을 풀어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러나 대학 시절의 인간관계가 으레 그렇듯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턴 자연스레 소원해져버렸다. 나는 졸업 이후 군대로 들어가 늦은 군생활을 시작했다. 특별한 일 없이 제대를 한 후에는 곧바로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동안 희진은 재수 끝에 대기업 CS팀에 입사하여 하루하루를 바쁘게,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 간 각자의 생존에 몰두했다. 나는 문화부와 사회부 기자 역할을 수행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소설을 썼다. 희진 역시 업무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동안 간간이 시를 쓰며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갔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내가 모르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 현재의 남편을 만났을 것이고 마침내 내 단편이 당선되었을 무렵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을 것이다.

청첩장을 받고 강남 한복판에 있는 결혼식장에 참석했던 그날, 나는 희진이 남편과 언약을 맺고 입을 맞추고 부케를 던지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보았다. 그리고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전업 소설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첫 소설집이 출간되는 날을 기점으로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오 년 동안을 줄곧 소설만 써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 전까지 나는 소설을 쓰며 언제나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글로 분출하고 발산해낸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거의 매일매일, 내가 언젠가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소설로 채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

 

“노래 틀어도 되지?”

“그럼.” 하고 나는 대답했다.

희진은 잔에 남아있던 술을 마저 들이키고 거실에 있던 블루투스 스피커와 자신의 핸드폰을 연결시켰다. 그리곤 핸드폰을 조작하여 음악을 재생했다. 나는 느슨해져있던 정신을 바로세우며 스피커 쪽으로 눈을 흘겼다. 아주 익숙한 멜로디였다.

“쳇 베이커?”

“응. 요즘 들어서 좀 듣고 있어.”

“의왼데.” 라고 내가 말하자 희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나를 장난스레 째려보았다.

“너만 재즈 들으라는 법은 없잖아?”

나는 술잔을 집어들며 답했다.

“그러란 법은 확실히 없지.”

“근데 왜? 난 평생 록만 들을 줄 알았어?”

나는 위스키를 넘기며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뭐…… 조금은?”

희진은 내 말을 듣고 조그맣게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곤 들고 있던 핸드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내게로 손을 내밀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너바나의 몇몇 곡들이 그녀의 취향대로 주욱 진열되어있었다. 맨 위에는 희진이 학창시절부터 좋아해왔던 <Lithium>이 있었고 그 밑으론 <Aero Zeppelin>이나 <Polly>, <Serve The Servants> 같은 곡들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었다. 모두 너바나를 대표하는 메가히트곡이라기엔 무리가 있는 곡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탈선적 정신이야말로 어찌 보면 얼터너티브 록과 커트 코베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참으로 너바나다운 플레이리스트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화면을 이쪽으로 둔 채 내 반응을 기다리던 희진에게 진심으로 웃어보일 수 있었다. 희진은 내 끄덕임과 미소를 얼핏 보고서는 몇 번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이게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너바나의 전부야.”

희진은 핸드폰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실 이제 예전만큼 자주 듣진 않거든. 나이를 좀 먹고 나니까. 뭐랄까…… 예전보다 듣기가 조금 버거워졌달까? 젊을 때만 공감이 됐다거나 뭐 그런 뜻은 아니고. 너도 알다시피 너바나가 어떤 특별한 세대에게만 매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음악은 아니잖아. 특히나 그들의 배경을 안다면 더더욱.”

“그렇지.” 하고 나는 수긍했다. 너바나의 매력이나 배경 등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희진에게 거의 매일 들어왔던 것이다.

희진은 술병 밑바닥에 남아있던 위스키를 모두 자기 잔에 쏟아부었다. 그로써 마침내 식탁엔 텅 빈 위스키 보틀 두 병만이 덩그러니 놓여지게 되었다.

“난 너바나가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더 깊게 빠져들어갈 수 있고 그런 만큼 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음악이라고 봐. 조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잘 못 듣겠다는 이유도 그것의 연장선상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도 이제 서른이 넘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트가 스물일곱에 죽었던 거 기억하지?”

나는 말했다.

“그럼.”

그걸 잊어버릴 리가 없다.

희진은 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야. 예전에도 자주 얘기했었지만 요즘엔 너바나를 듣다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유년 시절의 커트가 어떻게 살았었는지, 어쩌다가 코트니 러브 같은 출세와 명성에 미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지, 어째서 자신의 앨범이 차트를 석권했다는 사실에 깊게 신음했었는지, 그리고 대체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혼자 죽기로 결심했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희진이 다음 말을 꺼내려 숨을 들이킨 순간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마치 이전의 우리가 간판 없는 가게의 무너져내린 흔적들을 마주했을 때처럼.

“반대로 나를 돌아보게 돼. 지금까지의 나를.”

희진은 토해내듯 말한 뒤 마지막 술을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치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던 차의 시동이 걸리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희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부들부들 떨고 있던 희진의 손을 풀어 들고 있던 잔을 내려주었을 때 희진은 아무런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분이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고 서로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희진을 조금 더 확실히 끌어안을 수 있었다. 낯이 익은, 어쩌면 아주 그리웠다고 말해도 좋을 그런 냄새가 났다. 

최우수 당선소감

이주영(교육학과 3)

스무 살 무렵 처음 썼던 소설을 아직 기억한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아주 조악하기 그지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떠올려 보면 그것을 써내었을 당시에도 마음에 아주 들지는 않았다. 실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원형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소설은 그때 표현하고 싶었던 면면을 삼십대 초반의 입장에서 재해석해본 글이다. 제재적으로는 이것을 쓸 즈음, 작년 10월 경에 가졌던 지인들과의 실제 홈파티와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락, 그 중에서도 역시 너바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오 년 동안을 줄곧 소설만 써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 전까지 나는 소설을 쓰며 언제나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글로 분출하고 발산해낸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거의 매일매일, 내가 언젠가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소설로 채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오 년 동안을 줄곧 소설만” 써오지는 않았지만 이 인물과 비슷한 것을 때때로 느끼곤 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소모하여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는 것 그 자체가 내게 비어있는 무언가를 채워준다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기 위해서 나는 누가 재촉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설을 써나가는 게 아닐까.

어쨌든 부족한 글에 과분한 상을 받은 것 같아 기쁘면서도 마음이 조금은 묘하다. 좋게 읽어주신 심사위원 분들과 항상 못난 나와 어울려주는 몇몇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계속해서 써나갈 힘과 자신감을 한 움큼 받아간다.

 

우수

<프러시안 블루>

-1-

그것은 수채화였다. 붓 자국이 꽃잎처럼 피어있었다. 한 소년이 손과 발을 허우적거리며 푸른 바다에 삼켜지고 있었다. 도화지 위에 앉은 물감이 파르르 떨리면서 반짝였다. 화폭에서 물감이 튀어나와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붓이 아니라 손끝으로 그린 것 같았다.

그 수채화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술학원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었다. 게시판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림의 밑에는 창작자의 이름이 인쇄되어 붙여져 있었다.

 

이달의 우수작 (9월)

서태형 (S 예고 3학년.회화 1반)

 

‘서태형’

유성은 창작자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옆 사람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하게 중얼거렸는데도 그의 이름이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학원 내에서 태형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있었다. 태형은 종로구에 소재한 S 예술고등학교 학생이었다. S 예술고등학교 미술부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태형은 유독 눈에 띄었다고 했다. 그의 묘사력은 고등학생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성숙했으며, 손도 아주 빨라서 같은 학년 학생들보다 작업을 더 빨리 끝내곤 했다.

유성은 태형의 그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 질투심과 존경심이 동시에 차올랐다. 그는 두 감정을 경계하며 화장실로 가고는, 손에 비누를 박박 밀면서 수채화 물감과 함께 쾌쾌한 감정을 씻어냈다. 손 씻는 데 집중을 하는 중, 유리알처럼 투명한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봤어?”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서태형이었다. 유성은 멍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상대의 질문에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서둘러 말을 꺼냈다.

“아니, 그냥 잘 그렸길래….”

그는 부끄러운 감정이 일었다. 창피함 때문에 손가락과 발가락 끝마디가 저릿해졌다.

“네가 유성이야?”

태형이 가까이 다가왔다. 태형은 사슴처럼 큰 눈을 가졌으며, 검은 자는 숯처럼 어둑했다. 유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이면, 별똥별이라는 뜻의 유성(流星)?”

“응. 맞아.”

“특이한 이름이다.”

태형은 시선을 내려 유성의 손을 보았다.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그는 무표정이었던 얼굴을 무너트리고, 보조개가 살짝 패일 만큼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화장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태형의 목소리가 유성의 귓전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유성은 정신을 차리고 가방을 메었다. 그는 태형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학원 문을 나섰다. 유성은 집에 가기 위해 홍대입구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깜깜한 어둠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컬러빛 홍대. 골목마다 조명이 번쩍거리는 거리.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색을 열렬히 내뿜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으슥한 곳에서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커다란 8차선 도로에는 다양한 빛들이 섞여 있었다. 신호등과 자동차 램프가 도로와 인도를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오로라가 거리에 뿌려진 것 같았다. 이렇게 빛나는 유흥의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색이 없는 회색빛 거리가 있다.

회색빛 홍대. 미대 입시의 거리. 밤 10시가 되면 육중한 미술학원 건물에서 회색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온다. 학원가는 금세 무채색의 썰물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들의 얼굴은 모두 하얗게 질려있었다. 몇몇 아이들의 손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물감 자국이 남아있었다. 지하철역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북적였다. 술에 절인 사람들과 물감에 절인 사람들이 서로를 밀어냈다. 2호선 개찰구는 블랙홀처럼 입을 쩍 벌리며, 양극단에 선 사람들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흥분과 우울이 뒤섞인 인간 바닷속에 태형과 유성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태형만이 생명력 있게 걷고 있었다. 유성은 휘청거리며 태형의 뒤를 따라갔다.

 

-2-

“어? 여기 어디로 간 거지?”

아직 여름 기운이 남아있는 9월이었다. 학원 근처에 있었던 ‘안씨네 토스트’가 사라졌다. 유성은 학원에 가기 전, 점심으로 토스트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유성은 유리문 너머로 가게의 목조식 식탁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가게 정문에는 ‘임대문의’라는 글자가 인쇄된 용지가 붙여져 있었다. 유성이 처음 홍대에 왔을 때부터 즐겨 다녔던 토스트 가게였다. 근처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기업, I 토스트가 손님들을 채간 것이 문제였다. 안씨 아저씨는 I 토스트에 빼앗긴 손님을 되찾기 위해 토스트 가격을 더 낮췄지만, 점점 올라가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안씨네 토스트는 홍대 거리의 중심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구 바깥으로 휙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맛은 평범했지만 양이 많았고, 친절하진 않았지만 손님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그 가게를 유성은 좋아했었다. 유성은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어른들의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뭐하시니? 건설업? 아…. 고철 파신다고? 그럼 어머니는…. 빨래? 아. C모 세탁소? 선생님도 거기에 빨래 자주 맡기는데…. 어찌나 빨래를 잘하던지.”

소독약으로 독기를 제거한 말이었지만, 수영장 락스 냄새가 남아있는 비릿한 질문이었다. 유성이 부모님의 직업을 말할 때마다 어른들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유성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빨래로 돈을 번다는 이유로, 아빠가 고철을 모은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유성을 가늠하였다. 토스트 가게 아저씨만이 질문하지 않았다. 유성은 아저씨의 침묵이 썩 싫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투명한 가게 문에 손을 대었다. 유리의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어느 가게에서는 철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마음은 차갑게 식어가는 누군가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학원 수업 시간이 얼마 안 남은걸 알게 되자 그는 가게에서 벗어나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홍대 번화가의 더러운 길바닥을 밟아가며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회화 1반에서는 K 강사가 학생들을 꾸짖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서울대 수시 실기고사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홍대 학원가는 매우 바빴는데, 많은 미술대학이 9월에 수시 실기고사를 시행하기 때문이었다.

회화 1반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보다 결코 우습지 않았다. 매 수업 학생들의 순위는 빠르게 정해졌고, 서로의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누가 어느 대학에 갈지 어림짐작하곤 했다.

K 강사가 학생들의 그림을 지적하면서 도화지에 빨간색 색연필로 ‘B’며 ‘C’같은 걸 매겼다. 실기 날이 다가오자 K 강사는 평소보다 더 깐깐하게 학생들을 혹평하였다. 유일하게 A를 받은 그림은 서태형 뿐이었다.

“태형이는 항상 잘하네. 넌 빨리 집에 가라. 공부해야지”

“감사합니다.”

태형은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회화 1반의 영웅이 화통과 가방을 챙기며 강의실을 유유히 떠났다. 남은 학생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태형을 쳐다보았다.

“쟤는 도대체 왜 학원에 다니는 거야?”

한 학생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의 친구에게 속삭였다. 유성은 실기실 게시판에 매달려 있는 태형의 그림을 보았다. 유성의 목에서 어두운 불꽃이 솟아 나왔다. 태형의 그림을 잘게 찢는 영상이 그의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 그리고 유성아 너는.”

‘유성아’

유성의 차례가 왔다. 그는 시간이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K 강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느리게 들렸다. K 강사의 크리틱은 유독 유성의 차례에서 길게 늘어졌다. 재능 없는 이 아이가 매 수업 혹평을 길게 받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성은 몸을 구기며 K 강사의 혹평을 듣고 있었다.

“알겠어? 수채화는 물조절이라고.”

유성의 크리틱은 수채화 개론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실기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개수대에 손을 씻으러 자리를 떴다. K 강사는 참담한 표정을 지은 채 유성을 불렀다.

“서울대는 조금 힘들 것 같고…. E대 실기가 너한테 딱 맞아. 여기는 연필소묘만 보는데….”

K 강사가 그에게 수시로 지원할 대학 몇 개를 추천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달력을 넘길수록 그가 추천받은 대학은 매번 달라졌다. 서울대에서 홍익대로, 홍익대에서 인서울로. 인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어른이 정한 순위 앞에서 유성은 작아졌고, 유성의 대학은 그의 집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이대로 더 멀리 가다간 안씨네 토스트처럼 지구 밖으로 휙 사라질 것만 같았다.

 

-3-

K 강사에게 상담을 받고 유성은 학원을 빠져나와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몸을 향했다. 홍대 거리의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붉게 타고 있었다. 출구를 빠져나오자 아스팔트 도로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경의선 숲길이 보였다. 숲길은 폭이 넓은 도로를 따라 기다랗게 펼쳐져 있었으며, 잔디와 키 낮은 가로수가 군데군데 심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색을 뿜어내며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유성은 컬러빛으로 빛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가만히 있었는데도 깡통처럼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을 옮겨 벤치에 앉았다. 그는 화통을 열어 고무줄로 돌돌 말린 자신의 그림을 꺼내 보았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 크게‘C’라고 적혀져 있었다. 유성은 9자 모양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가 침울하게 자신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 하고 있었어?”

유성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서태형이었다.

“그냥…. 집에 가긴 싫어서.”

“네 그림 한 번 봐도 돼?”

그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 싫었다. 유성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다음 할 말을 찾고 있었다.

“고개 숙이지 마. 왜 네 그림을 부끄러워하는 거야?”

태형이 부드럽게 유성에게 말했다. 유성은 고개를 들어 무릎에 올려진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태형은 그의 옆에 가까이 왔다. 둘은 벤치에 앉아 유성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유성의 그림이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빛을 받아 슬프게 흔들렸다.

“수채화는 감각이야.”

태형의 목소리가 물통에 막 풀어진 물감처럼, 유성의 귓가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유성은 의구심 많은 표정으로 태형을 보았다. 태형은 환하게 웃으면서 차분히 말했다.

“수채화 물감은 예민한 재료라서 너의 모든 감각이 그려져. 그래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림을 그려야 해.”

태형이 손을 들어 유성의 그림을 툭툭 쳤다.

“이 부분 좀 봐. 넌 컨디션에 따라 물 조절이 들쑥날쑥해. 네 감각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어떤 날은 물 조절을 잘하지만, 대부분 너의 그림은 물이 너무 많아.”

물이 많다. 그게 무슨 뜻인지 유성은 고민하였다. 붓에 물이 많다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눈물이 많다는 뜻일까.

태형은 빙긋 웃으면서 말없이 벤치에서 일어섰다. 이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은 경쾌한 리듬으로 경의선 숲길을 빠져나갔다. 유성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4-

서울대 실기 당일. 정오 12시 10분. 서태형이 서울대 정문 앞에 서 있었다. 태형은 유성을 보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커다란 서울대 정문이 태형과 유성 앞에 단단히 서 있었다. 그 거대한 건축물은 금방이라도 자그마한 유성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유성은 건축물에 압도되어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오르는 게 느껴졌다. 유성과 달리 태형은 그 거대한 건축물을 앞에 두고 굳세게 서 있었다. 그는 정적을 깨고 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 근처 화방에서 물감 샀어.”

“갑자기 물감은 왜?”

“그냥 부적 같은 거야. 여기 서양화과 학생들은 다 그 화방에서 물감을 산대”

“나도 살 것 그랬다. 어차피 떨어지겠지만.”

유성은 힘없이 대답했다. 유성의 언어가 태형에게 닿기도 전에 매미 울음소리에 가려졌다.태형은 공중으로 흩어진 유성의 말을 주우며 대답했다.

“네 것도 샀어. 너는 프러시안 블루야.”

그는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렸던 물감을 꺼내 유성에게 건넸다.알루미늄으로 코팅된 물감 튜브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프러시안 블루. 밤하늘처럼 어두운 푸른색. 누군가의 블루가 파도처럼 출렁이더니, 그의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태형은 당연한 듯 서울대에 합격했고, 유성은 떨어졌다. 유성은 이어지는 입시에서도 쓴맛을 보았다. 그는 차가운 2월이 돼서야 지방 소도시에 설립된 자그마한 대학에 합격했다. 미술대학은 아니었다.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는 2월, 모두가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을 때, 겨울 속에 홀로 갇힌 사람이 있었다.

입시가 끝나고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유성의 집에서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성의 엄마와 아빠의 다툼이 유독 잦았던 겨울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낼 때, 유성의 원룸을 알아볼 때, 엄마가 일하느라 밤늦게 돌아왔을 때마다 싸웠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꼴로 엄마와 아빠의 날이 선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화를 내며 엄마에게 이런 말을 뱉어낸 적이 있다.

“내가 말했지? 차라리 공부를 시키라고. 쟤는 당신이랑 다르다니까.”

유성은 아빠의 말을 엿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엄마는 예전에 어땠을까?’

유성의 엄마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출신이라고 했다. 그 시절, 장남도 가지 못한 대학을 엄마는 갔었다. 유성은 펜이 아닌 붓으로 대학을 간 엄마의 청춘을 상상해보았다. 신촌동의 대학 캠퍼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자기 몸만 한 크기의 캔버스를 옮기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침대로 미끄러져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그리곤 시간의 테이프를 뒤로 감아 과거로 달아났다.

 

-5-

나는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나는 엄마의 큰 손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고흐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

“왜 고흐인데?”

“고흐는 엄마처럼 별을 예쁘게 그리잖아.”

처음으로 나의 꿈을 고백 한 날이었다. 그 후 나는 홍대에 있는 유명한 화방에서 그림을 배웠다. 얼마 안 있어 엄마는 붓 대신 솔을 들었고, 물통에는 물감 대신 검푸른 세제를 풀었다.

한번은 엄마가 일하는 빨래 공장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공장은 마포구 성산동에 있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도보로 10분 정도 걷다 보면 공장에 도착했다. 회색 벽에 파란색 지붕을 가진 컨테이너 하우스였다. 마포구의 동네 세탁소를 모두 문 닫게 만든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답게, 과장이 없는 정제된 형태의 건물이었다. 오로지 효율만 생각하고 지어진 것 같았다. 마포구에 있는 C모 세탁소 가맹점들에 맡겨진 빨래는 전부 이 공장에 모였다. 나는 공장에서 수백 벌의 옷을 솔로 박박 문지르는 엄마의 손을 보았다. 예전에는 섬세하고 부드러웠던 손이었지만, 공장에서는 힘없이 버둥거렸다.

빨래조차 상품이 된 도시. 그 회색 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엄마는 공장의 톱니바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공장 휴게실에서 나를 앉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터진 물집이 자리 잡은 엄마의 손을 보며 말했다.

“엄마. 왜 여기서 일하는 거야?”

“돈을 벌어야 네가 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리지.”

“꼭 돈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거야?”

“오래 그리진 못하지.”

“그럼 엄마는 이제 그림 안 그리는 거야?”

엄마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두 손으로 무릎을 꽉 쥐었다. 주름 잡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휴게실 창문 너머로는 스팀다리미가 만들어낸 증기가 안개처럼 퍼져있었다.

“엄마, 다시 그림 그리면 안 돼? 돈 없어도 화가가 될 수 있잖아.”

그날 엄마의 침묵은 무엇이었을까. 화가가 되지 못한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미안함이었을까.

칙칙. 탕탕. 덜컹덜컹. 커다란 공장 세탁기의 소음이 휴게실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정적도, 감정도, 엄마의 숨소리도, 모두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세탁기 소리가 커질수록 엄마는 더 움츠러들었다. 작아지는 엄마를 보자 기차라도 타고 있는 양 바닥이 흔들렸다. 눈이 내리는 게 아닌데도, 차가운 게 어깨 위에 푹푹 쌓이는 듯했다. 서울시 마포구에 버려진 파란색 지붕의 공장. 그곳에 갇힌 엄마와 나는 다리미가 만든 안개에 가려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다.

 

-6-

“바다로 갈래?”

그에게 여행을 가자고 말한 사람은 태형이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강릉으로 가서 겨울 바다나 한번 보자는 제안이었다. 같이 여행을 갈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 적잖이 당황했지만, 거절하는 법도 몰라서 유성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둘은 오후 늦게 출발하는 기차를 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강릉행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갈 때였다. 풍경이 터널에 가려 조명이 꺼지듯 사라졌다. 어두컴컴한 창문에는 풍경 대신 유성과 태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성은 검은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둠에 젖어가는 자신의 눈을 보자, 기억의 지층 아래에 쌓인, 무의식의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기차가 멈추지 않고 바다까지 달려가는 광경을 상상했다. 그대로 기차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고 싶었다.

강릉에 도착할 때는 밤이었다. 둘은 인적이 드문 해변으로 갔다. 유성과 태형은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 바람을 맞았다. 찬 바람이 파도의 울음을 싣고 두 소년의 가슴으로 들이쳤다.

밤하늘은 푸른 도화지처럼 보였다. 수천 개의 뜨거운 별들이 도화지에 알알이 박혀있었다.별들이 모여 깊은 강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는 거울처럼 밤하늘을 비추고 있어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은하수는 수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바다는 너무 투명해서 어둠조차 비추고 있었다. 유성은 별들로 가득한 풍경을 보자 비현실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별 진짜 많다. 고흐의 그림 같아.”

태형의 말에 유성은 헛웃음을 쳤다.

“고흐가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땠을 것 같아?”

유성의 말을 듣자 태형은 의구심 많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고흐도 서울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화가가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유성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부끄러운지 모래를 움켜쥐었다. 손안에서 은가루가 반짝였다. 그가 손을 벌리자, 시간이 모래와 함께 틈 사이로 빠져나왔다. 그는 그렇게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고흐도 서울에 태어났으면, 나처럼 바보 같은 그림이나 그렸겠지.”

태형은 유성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조용히 말했다.

“나는 네 그림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태형의 목소리가 바슬거리며 유성에게 굴러갔다. 유성은 내면에서 무엇인가 흔들리는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에서 바다의 거품이 펑펑 터졌다.

“어우. 진짜 춥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태형은 바지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성은 태형이 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겨울바람이 더 강하게 불자 유성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양팔로 몸을 감싸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별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별똥별은 은하철도처럼 별무리를 헤치며 밤하늘을 달렸다. 기차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활활 타고 있었다. 유성은 별이 되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슬픈 운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허무함의 그의 가슴으로 들이쳤다.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는 별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거리자, 별빛이 흘러들어왔다. 빛이 눈 안에서 방울지더니 모래사장 위로 뚝 떨어졌다.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그의 발목을 핥았다. 발은 차가운데 눈만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별빛을 따라 바다를 향해 걸었다. 발을 뗄 때마다 발바닥에 물보라가 일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차가운 겨울 공기 위로 높이 떠올랐다. 별이 출렁이며 그의 종아리를 스쳐 갔다.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를 만큼 깊게 들어가자 뒤통수가 지끈거렸다. 겨울 바다의 냉기가 등허리를 감쌌다. 그는 검푸른 화폭 안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두 눈에서 은하수가 흘러내렸다.

얼마나 깊이 들어갔을까. 바닥에 발이 닿지 않자. 별의 바다가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바닥이나 벽 같은 것을 짚으려고 손과 발을 허우적거렸다. 뼈 사이로 공포감이 가득 채워졌다. 검은 우주가 폐 안으로 쏟아졌다.

눈을 뜨자 바닷속은 밤하늘과 같은 푸른색이었다. 그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게 아니라, 푸른 우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위로 떠오를수록 외압이 점점 강해졌다. 온몸을 뭉개는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손이 조각조각 분해되는 환영을 보았다. 떨어진 조각들은 우주 속에서 조개껍데기처럼 반짝였다.

 

-7-

그가 우주 위로 점점 떠오르고 있을 때, 그는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발목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손은 유성의 다리를 팽팽하게 당겼다. 누군가가 그를 수면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유성의 머리는 바다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차가운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의 목에는 어떤 남자의 팔이 감겨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뭍으로 옮기고 있었다. 남자는 인어처럼 헤엄치며 뭍을 향해 나아갔다. 모래사장으로 올라오자 남자는 유성을 바닥에 눕혔다. 유성은 대자로 뻗으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유성을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은 태형이었다.

그는 태형의 눈동자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성의 얼굴은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물을 많이 먹어 유성은 연해 보였다. 그는 흠뻑 젖은 붓처럼 모래사장에 뻗어있었다.

태형의 검은 자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유성은 목울대를 떨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야 너처럼 그릴 수 있는 거야?”

태형이 하얀 입김을 뱉으면서 대답했다.

“겨우 살려줬더니, 하고 싶은 말이 고작 그거야?”

유성은 태형의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지는 걸 보았다. 퉁퉁 부은 두 눈에서 은하수가 자꾸만 흘러내렸다.

태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태형의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 내렸다. 태형의 몸도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태형은 쓰러질 것 같진 않았다. 그는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는 거석처럼 굳세게 서 있었다. 그는 양팔을 뻗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긴 온통 너의 색이야. 네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봐봐.”

 

-8-

그때 나는 왜 바다에 뛰어든 걸까. 죽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별을 따라가고 싶었던 걸까. 내가 왜 그림에서 도망쳤는지 이제는 알고 있다. 내 안이 껍질처럼 텅 비어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생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며 그들의 피를 빨아먹었다. 숙주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흉측한 기생충. 그런 나에게서 달아나고 싶었다.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나의 색으로 칠해진 수채화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떨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시퍼런 멍이 뚝뚝 떨어졌다. 온 세상이 파랑에 잠겨있었다.

 

매일 밤 볼 수 있는 색. 별보다는 흔한 색.

어둠에 가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색.

그러나 아름다운 우주를 가득 채운 그 색은.

푸르고 깊은. 프러시안 블루

 

우수 당선소감

장상준(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3)

늦은 새벽까지 잠을 설칠 때면, 저의 한 시절이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그럴 때면 눈보라가 치는 게 아닌데도, 차가운 게 살갗을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저 자신을 달래고자, 지금도 눈보라를 맞고 있을 누군가를 달래고자 감히 써본 작품입니다. 작품을 쓰기 위해 저의 옛 모습을 꺼내 보았습니다. 고개 숙인 모습도 있었고, 무언가에서 도망치던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지나간 시절을 조금씩 담아낸 작품입니다. 작품을 씀으로써 흘러간 시간을 많이 털어낸 것 같아 한결 후련하기도 합니다.

다시 읽어보아도 부족한 게 많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감정이 과하게 들어간 부분이 많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상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까 봐 조마조마합니다. 그리고 항상 곁에 있어준 사람들, 뒤에서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수

<다시 피는 꽃>

내가 그 절에 간 것은 그 절에 있는 누군가를 알아서도, 평소 그 절에 큰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편집자와 대화하다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사찰을 돌아다니며 그곳을 소개하는 글을 좀 쓴 나였지만 연흥사를 생각할 때면 어떻게 이런 절이 있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 바로 앞에 5천 평 정도의 연 밭을 만들고 그걸 승려들이 매년 가꾸는 절이 있다? 놀랍게도 그런 절이 실제로 존재했다. 심지어 그 연 밭과 그 옆의 부도(浮屠) 때문에 절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나름대로 유명한 곳이었다. 묘하게 구미가 당겨 마음에 담았다가 드디어 그 수수께끼의 절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주문을 지나 시냇물을 따라 걸을 때만 해도 딱히 새로울 건 없어보였지만 천왕문 앞에 이르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보통이라면 천왕문이 사람을 맞이하고 그 다음에 사찰 건물이 나오는데, 여기는 천왕문 양 옆부터 쭉 길을 따라 연 밭이 펼쳐졌다. 녹색 연잎은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심지어 분홍빛이 감도는 연꽃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세상에 어떤 절이 바로 앞에 연을 가꾸나 하고 속으로 의심을 품고 왔었는데 눈앞의 광경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연 밭 사이로 난 좁은 길 곳곳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정신없이 찍고 있었다. 그중 특히 이목을 끄는 곳은 동쪽 끝이었는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길게 한 줄로 서 있었다. 세어보니 열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이들의 끝에는 연화를 닮은 커다란 승탑과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봤던 사찰들과 전혀 다른, 별천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옆에는 승탑을 소개하는 글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있었는데, 글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세가 기울던 연흥사를 다시 세운 재발 스님의 부도였다고 한다. 재발 스님은 절 근처에 연 밭을 만들고 가꾸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유언을 따른 결과 지금처럼 부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보면서 정말로 연으로 흥한 절이긴 한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천왕문을 넘어 절 안쪽으로 들어갔다. 먼저 본전에 가서 예불을 드린 뒤 다른 곳도 찬찬히 둘러봤다. 어떤 절을 가도 그렇듯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관음전, 민간 신앙을 비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자 역시 무언가를 비는 이들이 많이 찾는 삼성각, 스님들이 수행하고 쉬는 요사채, 그리고 방문객들을 위한 체험 공간과 숙박 공간 등 절 곳곳을 돌아다녔다. 체험공간에서는 스님들이 사람들에게 연으로 요리 만들기를 가르치거나 연꽃 모양 장식품 또는 부채 등을 같이 만들고 있었다. 또 요사채의 한 구석에서는 스님들이 밭일을 할 준비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가지 들르지 않은 곳이 있었다. 명부전. 저승의 중생들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 명부전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뭔가 이상한 여승을 보았다. 머리를 민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이 여승은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상 앞에서 합장을 하며 앉아 있다가 고개를 가로젓기를 반복했다. 명복을 빌려는 모양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게 잘 안되나? 그것도 이곳의 승려가? 뭔가 이상해서 명부전의 옆으로 돌아가 여승의 옆모습을 본 그 순간, 그 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올랐다. 김진아. 순간 여승이 내 쪽으로 눈을 흘겨보았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기둥 쪽으로 숨었다. 등이 서늘해지고 얼굴에서 식은땀이 났다. 어째서 쟤가 저기 있는 거지? 다가갈까? 다가가면, 그냥 가볍게 안녕 하고 인사라도 할까? 아님 못 본 척 지나갈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야, 이현승!”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날 불렀다.

“아, 또 너야? 김진아?”

“뭐? 또 너야? 이게 사람 귀한 줄도 모르고, 씨.” 진아가 내 정강이를 찼다.

“아오, 아퍼, 씨.”

“그렇게 말이라도 곱게 하지.”

“누가 할 소리인데.”

“너 진짜!” 진아가 내 등을 가볍 게 두드렸다.

김진아,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 대학 O·T 때부터 그 잘난 이목구비 그리고 그것과는 완전 딴판인 괄괄한 성격으로 판도를 뒤집어놓은 그 여자.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건 우연히 같이 조별과제를 하게 됐을 때였다. 그때 난 별 생각 없이 내 생각을 늘어놨을 뿐인데 그녀는 그렇게 착착 맞아떨어지는 내 생각이 좋다면서 나에게 붙었고, 나 또한 그녀가 딱히 싫지는 않아서 옆에 두곤 했다. 오히려 재밌었지. 맨 글이나 읽고 좀 끄적거리는 게 낙인 나에게 그녀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거나 평소엔 찾아가지도 않을 곳, 가령 놀이동산 같은 곳에 나를 끌고 다니곤 했다. 남 같았으면 듣는 척도 안 할 나의 말 주저리들도 그녀는 전부 들어주었다. 가령 내가 엉터리 기사를 보고 저게 말이 되냐면서 까대면 그녀는 그런 내가 재밌다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어떤 때는 내가 진리라는 게 있기는 할까, 라면서 괜스레 말을 늘어놓기도 했는데 그녀는 아무렴 어떠냐고, 그런 걸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는 너무나 흥미롭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녀의 이야기가 재밌었는데, 가령 방학 동안 유럽 여행을 한 이야기나 미팅한 남자에 대해 불평하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난 즐거웠다. 다만 한 가지,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나에게 찾아와서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거나 그녀와 이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는 좀 귀찮았지만. 근데 그걸 또 내가 진아에게 얘기하면 진아는 깔깔대면서 네가 내 애인 역할 좀 해달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다.

진아를 생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내가 스물 셋일 때 우연히 그녀를 길에서 봤을 때였다. 진아는 한 남자와 싸우다 헤어지고 나서 길가에 앉아있었는데 혼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것도 누가 볼까봐 눈치를 싹 보고나서. 내가 나타났을 때 진아가 나를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가, 가라고. 쪽, 쪽팔리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진아 옆에 앉아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쪽팔리냐?”

“그래. 너라서.”

“왜?”

“그냥, 너 앞에선 멋있게 보이고 싶었단 말이야.”

“야, 김진아. 멋있는 모습만 보여 주면 그게 친구냐?”

“그래도.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보 여주기 싫은 것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너도, 나도.”

“그야 그렇지. 그래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난 생각해.”

“그래?”

“응. 안 될 거 뭐야?”

“음, 그래? 그래……. 그런 거지.” 진아가 날 보며 배시시 웃었다.

진아는 한동안 말없이 밤하늘을 보았다. 구름 속에 달이 가려져 하늘이 어두웠다.

“있잖아, 현승아.”

진아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구름이 지나가고 보름달이 나와 진아의 얼굴을 환히 비췄다.

“난 세상 멋진 여자가 되고 싶어. 잘난 얼굴에 잘난 능력 가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야. 멋진 남 자 만나서 재미 좀 보다가 싫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휙 떠날 거야. 그리고 또 내 인생 멋있게 사는 거 지. 다른 것보다도, 난 나 자신에 게 당당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때? 괜찮지?”

이때 진아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달빛 때문인지 아니면 당당히 자기 포부를 말하는 진아가 좋아서인지, 혹은 그저 진아가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응, 괜찮고말고. 너, 지금 충분 히 멋있어.”

진아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마워.”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부터 진아와의 접촉이 뜸해졌다. 진아도 나도 각자 바빠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도, 연락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내가 취직할 무렵에는 진아의 소식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서른 살 되었을 때 우연히 대학교 동기로부터 진아에 대해 들었는데 그녀는 당시 유명한 카레이서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결혼은 절대 안 할 것 같은 그 애가 결혼이라니. 그게 내가 진아에 대해 들었던 마지막 소식이었다.

 

밀려오는 잡생각을 떨쳐내려고 하루 동안 모은 자료를 계속 정리했더니 벌써 깊은 밤이었다. 이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고 날도 시원할 테니 이 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겠지. 머리도 식히고 생각도 정리할 겸 바로 절에서 나와 연 밭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서 비교적 안 보이긴 했지만 연꽃이 아름다움을 피어내고 있었다. 낮에 봤을 때보다 더 싱그럽고 은은한 아름다움이랄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까지 받아서인지 더 그런 맛이 있었다. 보면 볼수록 보는 맛이 있는 풍경이라니까. 이 밤의 풍경을 음미하며 연잎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다가, 부도 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연 줄기 사이에 숨어서 그 틈으로 조심스럽게 부도 쪽을 보니 명부전에서 본 그 여승이었다. 부도 앞에 서있는 여승은 흐느끼고 있었다. 여승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목을 앞으로 뺐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이 나타나 여승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지고 손이 입을 가렸다. 분명 진아였다. 민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고 많이 핼쑥해지긴 했지만 분명 진아였다. 진아는 부도 앞에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다가 또 고개를 가로젓고 하늘을 보다가 다시 흐느끼기를 반복했다. 내가 알던 그 진아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젠 속세의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 아니라 정말로 수행자, 고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아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내 눈과 마주쳤다. 당황해서 몸이 얼어붙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거기 나와요. 명부전도 당신이지?” 부도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망치기도 이상하고, 여기에 계속 숨어봐야 나아질 것도 없었다. 연 줄기 사이에서 몸을 빼고 부도 쪽으로 걸어갔다. 나를 본 진아의 두 눈이 요동쳤다.

“네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가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진아가 말했다.

“일 때문에. 진아야, 어떻게 된 거야? 너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냥,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것보다 일 때문에 왔다고? 글 쓰는 거? 너 여전하구나.”

“그러는 넌 완전 딴 사람 됐다, 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나도 이러기 싫은데, 이럴 수밖에 없다고.”

진아는 이 말을 하면서도 울음기를 숨기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날 보고 나서 더 심해졌다. 그녀의 눈, 입, 손, 말까지도 모든 게 흔들리고 있었다. 환한 달빛이 흔들리는 그녀의 마음을 비추었다. 그렇다면…….

“진아야, 우리 아직 친구 맞지?”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

“진아야?”

“……모르겠다, 이젠.”

진아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달빛에 비친 진아의 얼굴이 여전히 아름다운 걸, 그때처럼 진아 옆에 함께 하고 싶은 걸 어찌하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 다가갈까, 다가가서 손이라도 잡거나 와락 안아줄까. 주제를 넘겠지만 위로의 말 한 마디라도 해줄까.

“야, 이현승.”

진아가 먼저 정적을 깼다.

“어?”

“가, 가라고. 쪽, 쪽팔리니까.” 진아는 옆을 보며 말했다. 얼굴에서 하얀 달빛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내려갔다. 이윽고 구름이 달을 가렸다. 진아의 얼굴도 다시 어둠 속에 잠겼다.

“……잘 있어.”

이 한 마디를 끝으로 남기고 다시 절로 돌아갔다.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별로 못 이뤘다. 진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고 묵묵히 마음을 갈고 닦는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설령 그것이 가시밭길일지라도. 그녀도 그걸 알았기에 내 마지막 물음에 저렇게 답했으리라. 그 뜻을 알았으니 나 또한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의 그녀를 존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아냐, 이건 서로를 위해서 안 될 일이야.

 

날이 밝자 짐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절을 떠나기 전에 주지를 만나러 갔다. 주지라면 그녀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주지의 방에 들어가니 주지가 방석 위에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작은 탁자와 방석 하나가 놓여있었다. 주지의 옆에는 비취색 도자기로 된 차도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없이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만 있었다.

“이제 가시지요? 어젯밤은 어땠나요?”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얼굴이 좀 퀭해 보이는데, 괜찮은 거 맞죠?”

“아뇨, 괜찮습니다. 방은 더할 나 위없이 좋았습니다.”

“그럼 다행이군요.”

“저, 스님. 가기 전에 꼭 듣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이건 작가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여쭤보는 건데, 혹시 김진아라는 사 람이 이 절에 있습니까?”

“선도향 스님이요?”

“있긴 있나 보군요. 사실 그 사람 이 제 대학교 동기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말씀 드려야지요.”

어쩐 일인지 주지가 뜸을 들였다.

“좀 무거운 이야기인가요?”

“예, 그래도 들려드려야죠. 사실 선도향 스님은 출가 전에도 이 절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십 년도 넘게 말이죠. 그때마다 열심히 기도를 드 리고 마음을 닦기에 제가 관심을 가 지고 보았습니다. 그 아이에게 법명 을 지어준 것도 바로 저였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절에 오는 횟 수가 줄어들더니 나중엔 발이 끊기더 군요.”

“그게 언제부터였습니까?”

“오 년 전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결혼한다고…….”

“예, 맞아요. 새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하려니 많이 바빴던 모양이에 요. 뭐 그 불심이라면 굳이 이 절 이 아니더라도 기도는 열심히 했을 겁니다만. 그러다 한 삼 년 전이었 던가요, 진아 그 아이가 절에 왔는 데 저를 보더니 눈물을 펑펑 쏟더랍 니다. 무슨 일이 있나 했더니 남편 이 경기 도중에 사고를 당해서 다리 를 크게 다쳤답니다. 해서 그 아이 는 아침 일찍 절에 와서는 그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부도 앞에서 기도했답니다. 제발 남편의 다리가 나아 일어나게 해달라고. 다시 예전 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고서 계절이 두 번 바뀐 뒤에 연락이 왔는데, 남편의 다리가 잘 나아서 재활 치료까지 잘 받고 있다 고 합디다. 잘만 하면 경기도 다시 출전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말 을 듣고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부처님 보살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 죠.”

“그런데 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서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엔가, 또 그 아이가 울면서 절에 찾아왔어 요. 아니, 남편도 잘 낫지 않았느 냐, 이번엔 또 무슨 일이냐, 했더 니 이번엔 남편의 차가 아예 전복이 되어 버렸대요. 그래서 지금 혼수상 태라고. 전번에는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있기라도 했지 이번에는 그 것조차도 없으니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다시 여기로 왔대요. 그러고는 그 아이가 사흘 내내 부도 에 갔다가 본전에 갔다가 관음전에 갔다가 심지어 저 멀리 있는 산신각 까지 다니면서 기도를 백방으로 올렸 어요. 심지어 하루는 그냥 온종일 부도 앞에 망부석처럼 굳어가지고 기 도만 계속 했어요. 어우, 그것만 봐도 안쓰러워서 어찌 할는지. 그 추운 날씨에 그 정도 정성이면 진짜 부처님께서 뭐든 해주셔야 세상 돌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니 까요. 입김 착착 불어가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두 손 모으고 기도하 는데, 이건 진짜 생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가기 전에 무슨 마음 으로 기도했냐고 물었더니, 저 앞의 연꽃처럼 남편의 삶이 다시 만개하기 를 빌었대요. 온갖 진탕과 비바람, 서리까지 다 맞아도 결국은 다시 피 는 연꽃처럼 남편도 자신도 다시 꽃 피는 삶을 간절히 빌었대요.”

“그래서, 이번에도 기도가 닿았습니 까?”

“닿았어요. 2주 만에 남편이 눈을 뜨고 한 달 동안 또 재활 치료를 받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대요.”

“잘 됐네요. 그런데 그 뒤에 뭔가 더 있군요.”

“이제부터가 진짜 이야기죠. 작년 봄에 그 아이가 다시 절 찾아왔는데, 이번엔 뭔가 많이 달랐어요. 희망도, 슬픔도, 간절함도 아닌 전혀 다른 결의 감정이었죠. 분명 그 아이는 치를 떨고 있었어요. 이번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예까지 왔냐고 묻자,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정말 어렵게 입을 뗐어요. 스님, 이제 나는 그 새끼 지옥도나 갔으면 좋겠다고, 그 동안 빌고 빌었던 게 다 공치사였다 고.”

“아니, 어찌?”

“작년 봄에 그 아이 남편이 빗길에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 었는데, 조수석에 외간 여자가 앉아 서 같이 죽어있었대요. 누군지 알아 보니 남편의 재활치료를 돕던 의사였 어요. 그때 그 아이의 뇌리에 싸늘 한 촉이 박혔대요. 바로 남편의 지 출 내역을 확인해보니 자기는 생전 받지 못했던 명품들이 영수증에 찍혀 있었고 심지어 모텔에 방문한 적도 있었더군요. 혹시나 해서 남편의 핸 드폰을 열어보니 통화내역에 그 의사 와의 통화기록이 가득했고 사진첩을 열어보니 그 여자와 찍은 사진이 수 십 장이나 있었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 짐작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러 니 진아 그 아이의 속이 어땠겠어요? 속세를 멀리하고 마음을 닦는 일을 평생의 숙제로 삼은 저조차도 그때는 부아가 치밀었는데, 그 아이는 오죽 했겠어요. 차마 말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죠. 자기를 이 절에 있게 해달라고. 하 도 충격 받아서 홧김에 저런 말을 하나보다 싶어서 만류했죠. 그런데 뒤이어서 하는 말을 들어보니 이건 차원이 다른 겁니다.”

“대체 뭐라고 말했기에…….”

“스님, 저 남편 장례식도 반쯤 정 신 나간 채로 지내고나서 다 정리하 고 여기 왔어요. 맞아요, 솔직히 저 아직도 그 새끼 그 년이랑 같이 지옥도로 떨어져버리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제 마음만 타들어가요. 증오로 하루하루를 살아 갈수록 제 마음만 시커멓게 타들어갔 어요. 그때 알았죠. 이건 방법이 아니다, 이건 나를 위한 진정한 방 도가 아니다. 해서 여기서 배운 것 들을 돌이켜봤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여기서 비구니가 되어 마음 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그 사람에 대한 미 련을 모두 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사람이 천도로 가기를 바 라지는 못해도 지옥도나 아귀도로 가 지는 않게 해달라고 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직 저를 위해, 저 자신이 스스로 에게 떳떳할 수 있게, 스스로를 더 잘 보듬어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 다. 그게 안 되면 저는 속세에서 계속 생지옥에 빠져 살 겁니다. 부 탁드립니다, 스님. 저를 이 절에 받아주십시오. 그러고는 제 앞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어요.”

“…….”

“작가님도 몹시 놀란 것 같군요. 그럴 만도 해요.”

“아뇨,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

예상외의 반응에 오히려 주지가 놀란 것 같았다.

“속세에서 같이 어울릴 때 그 사람 은 세상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떳떳 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그런 멋있 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아마 그 때도, 지금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수가……. 저도 나름 그 아 이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 군요.”

“그 부분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여기 와서 그 사람의 몰랐던 부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은 일 년 동안 계속 수행하고 있던 겁니까?”

“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절에 서 마음공부를 했어요. 이따금씩 재 발 스님의 부도나 명부전에 가서 기 도를 올리기도 했지요. 물론 아직은 잘 안 되어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지 만요. 내심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안 쓰러워가지고 그냥 다 잊고 환속해서 새 삶을 사는 건 어떻겠냐고 권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자기는 여기 남아서 수행하는 게 낫대요. 지금 이 상태로 속세에 돌아가도 나아질 게 없다면서요.”

“그랬군요.”

“작가님. 혹시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해보셨나요?”

“실은, 잠깐 얘기를 했습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보니 애가 좀 다르더라니.”

“어떻던가요?”

“기운이 좀 없고 멍을 좀 때렸어요. 평소에도 좀 그랬지만 오늘은 유독 그랬죠.”

“아, 제가 또 몹쓸 짓을…….”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작가님 같은 친구라면 그 아이도 내심 반가 웠을 겁니다. 다만 지금은 처지가 처지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게죠.”

“그렇겠죠?”

“그럼요.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됩니 다.”

정말 주지의 말대로이길 바라야하는 건가. 코끝이 찡했다.

 

가기 전에 주지에게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지는 손사래를 치면서 오히려 연흥사 측에서 더 고맙다고 말하고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연 밭을 지나며 재발 스님의 부도를 보았다. 역시 많은 이들이 부도 앞에서 무언가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곳에서 매일 기도를 했겠지. 모든 집착을 날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혹시나 해서 절 쪽으로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래, 너는 너만의 일을 해라. 나는 나만의 일을 할 테니.

 

다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역으로 왔고, 역에서 또 한 시간 반 정도 거쳐서 서울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일어나보니 벌써 달이 하늘 한가운데에 떠있었다. 입이 텁텁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한 모금을 축였다. 맥주를 홀짝 홀짝 마시며 그날 찍은 사진을 다시 정리했다. 작고 아담한 일주문, 보기에 시원했던 시냇물과 다리, 친근하게 생긴 사천왕, 수수한 매력의 탑과 석등, 근엄한 본전과 본존불, 자비로운 얼굴의 관음상, 이 절의 정수를 보여주는 연꽃, 정말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신 주지 자선심 스님, 방문객들과 함께 하는 스님들, 그리고…… 그 스님들 사이로 지나가는 너.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진즉에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는 버튼을 눌렀어야 했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카메라에 달빛이 드리웠다. 그 얼굴에도 하얀 베일이 드리웠다. 가슴에서 이상한 뭔가를 느꼈다. 딱딱했던 게 그 형태를 깨고 팔방으로 요동치더니 이내 완전히 흩어졌다. 두 눈이 달아올랐다. 입모양이 흔들려 물결 모양으로 변했다. 바로 입이 희미한 파열음을 내더니 스읍 스읍 소리를 냈다. 너무나 참기 힘들어 오른 팔목을 책상에 대고 그 위에 두 눈을 얹었다. 팔목에 온기와 촉촉함이 전해졌다.

한참 동안 그렇게 있다 고개를 들었다. 카메라를 들어 버튼을 눌렀다. 연꽃과 함께 재발 스님의 연꽃 모양 부도가 나왔다. 다시 피는 꽃이라……. 무엇이 어디서 다시 피어오르나. 대체 무엇이 어디서 다시 필까.

우수 당선소감

윤지석(예술학과 3)

예상치 못했던 수상인지라 사실 적잖이 놀랐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만, 어찌됐든 이 상을 주신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 작품을 쓰기 전에 우연히 불교 미술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불교 사상이나 문화가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래서 작품에 이런 걸 담아내고자 했습니다만, 막상 쓰다 보니 그런 것보다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속 인물들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써봤습니다. 그래서 ‘다시 피는 꽃’ 이라는 말도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그 연꽃 이외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의미를 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연 밭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한 것은 제가 사는 곳에 연꽃이 많이 피어있어서 계속 보다가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딱 어울리는 장면과 서사를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이런 작품이 나왔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문예와 관련된 상을 한번쯤은 받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제 작품을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심사평

송민호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 편의 소설이 독자에게 다가가 하나의 오롯한 세계가 되는 과정을 ‘마법’에 비유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분명 글을 통해 독자의 마음 속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마법 같은 멋진 작업입니다.

올해 홍대 학예술상 소설부문에는 6편의 작품들이 투고되었습니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편수입니다. 다만, 그 하나하나의 수준은 꽤 높아서 읽어나가는 동안 확실히 즐거웠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소설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마법 같은 즐거움입니다.

어려운 고심 끝에, 최우수상으로 “우리의 홈파티, 우리의 커트 코베인”을 골랐습니다. 우리가 공유했던 가수가 기억이 되고, 새로운 관계가 되는 양상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대상에 대한 기억이나 열정을 다루는 방식이 설명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좋은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우수상으로는 “다시 피는 꽃”과 “프러시안 블루” 두 편을 골랐습니다. “다시 피는 꽃”은 백석의 “여승”이 생각나는 소설로, 설정이 지나치게 깔끔해서 여운을 남기지 않는 것, “프러시안 블루”는 하나의 작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해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마지막에 급변하는 전개를 통해서야 알 수 있었던 것이 읽으며 마음에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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