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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혁(회화11) 동문을 만나다자유로운 예술가, 자유를 말하다

 

“이건 제가 살아온 인생 절반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아직도 못 듣네 이 노랠. 제 가사 속에 잠든 수많은 부모, 형제, 친구들 부디 평안하게 눈 감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눠진 땅에서는 끝나지 않을 never ending story. The story will be continued.”

_ 노래 <For The Freedom> 中

 

당신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인가? 숨 쉬는 것, 사랑하는 것, 노래하는 것, 춤추는 것, 꿈꾸는 것, 푹 자는 것, 기부하는 것, 투표하는 것 모두가 자유다. 평소 우리는 자유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것의 존재 자체에 무감각할지도 모른다. 여기 자유롭지 못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통해 ‘자유’를 노래하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강춘혁(회화11) 동문이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그는 2002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화가이자 래퍼로서 그림과 노래를 통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 실상을 알리고 있다. 또한 <무엇이든 물어보살>, <비정상회담>, <쇼미더머니3> 등의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강 동문이 어떻게 미술과 노래를 통해 자유를 표현하는 예술가가 됐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본교 회화과에 입학하시게 된 과정과 동문의 학교생활이 궁금하다.

A. 본래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17살이었던 2002년 한국에 들어온 후 8년 정도는 현실에 치여 일만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5살이 되던 해에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북한에서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남한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까지의 학력만 인정되어 검정고시를 봤다. 이후 학원에 다닐 여유가 없어 혼자 그림을 공부해 26살에 본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입학한 캠퍼스는 무척 신선했다. 물론 이론 수업이나 비좁은 실기실에서의 작업 등 힘들었던 점도 있었다.

 

 

TV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한 모습

 

Q. 현재 작가로 활동하면서 전시와 SNS, 유튜브 등을 통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북한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작품이 눈에 띈다.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대학교 입학 후 해외에서 진행된 전시에 많은 작품을 보내면서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북한의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둔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북한 출신인 만큼 상업적인 그림을 그리더라도 한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미술을 통해 북한 사회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북한의 모습은 뉴스나 미디어 등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상위 계층이 살고 있는 평양일 뿐, 대부분 사람들의 실상과는 매우 달라 이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북한 어린이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북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이들이 어린이다. 먹고 살기 어려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다가 굶어 죽는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죽음에 내몰리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이를 초래한 사회를 그림을 통해 고발하고자 했다.

 

Q. 한편 지난 2014년에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에도 참가하여 1차 예선에서 뛰어난 랩 실력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래퍼로도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것은 학부 3학년 학기 중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노래방에서 랩을 따라 부르는 정도였다. 그러다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활동하던 중 후원금 모금 활동에서 우연히 양동근 래퍼를 만나게 됐다. 미술 대학 특성상 바쁜 생활을 보내느라 처음에는 <쇼미더머니3> 참가를 거절했지만, 그의 꾸준한 설득으로 참여하게 됐다. 랩을 전문적으로 연습한 적이 없어서 참가 신청 후에 걱정이 많았지만, 흑인들의 인종차별 등에 대한 반항 정신으로 만들어진 힙합이 북한에서 탈출해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친구들과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리는 것도 일종의 힙합 정신이다. 그렇게 힙합은 그림처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장르가 됐다.

 

 

Q. 북한 사회를 알리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뿌듯했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를 떠나서 그저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로서 목표였다. 그래서 작품을 본 사람들이 실제 북한 사회의 실상에 대해 질문하고 공감할 때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근래 2년간은 작품 생활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특히 2018년 광주 비엔날레 전시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이 왔다가 일주일 만에 주최 측에서 취소해버린 적이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해당 전시에 북한 현지 작가의 작품들이 실려 북한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이 실리면 문제가 생길까 취소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까지 와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다는 사실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시 힘을 내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Q.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들에게 통일은 먼 이야기가 된 듯하다. 동문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A. 한반도는 원래 하나였다. 미국과 소련 등의 국가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반도를 배경으로 땅따먹기를 하다가 현재의 남북한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현대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바빠 평소에 통일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통일 문제는 우리 세대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지, 더는 늦춰져서는 안 된다. 물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다음 세대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려면 이전 세대의 문제들은 우리가 끝맺어야 한다.

 

Q. 노래 <For the freedom>에서는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까지의 과정을 담았으며, 동명의 미술 작품에서는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표현했다. 이처럼 여러 작품에서 ‘자유’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표현했는데, 동문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인가?

A. 각자가 생각하기에 자유의 의미는 세세하게 다르겠지만, 모두 자유를 원한다. 작품 <For the freedom>도 북한 사회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본래 나에게 자유란 외부와 단절된 북한에 있었을 당시에는 북한 사회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현재는 이를 넘어 억압된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더 큰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휴전선이 사라지는 것이 우리 한반도의 자유가 아닐까.

노래 <For The Freedom> 뮤직비디오

 

Q. 마지막으로 본교의 졸업생으로서, 더불어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학교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그 초석을 준비하는 단계다. 그러니 학교에서 성실히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를 탄탄히 하면서도 마지막 학창 시절이라는 현재를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다.

우시윤 기자  woosy0810@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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