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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王家衛, 1958~) 감독의 작품세계홍콩 청춘들의 불완전한 사랑을 그리다

20세기의 홍콩은 혼란기였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Chris Patten, 1944~)의 임기를 끝으로 1997년 7월 1일 중국령 홍콩 특별행정구가 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과 중국이 혼재된 독특한 분위기와 함께 세기말의 혼란과 불안이 홍콩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져 있었다. 이 시기 홍콩에서 활동을 시작한 왕가위(王家衛, 1958~) 감독은 당시 방황하는 청춘들의 불완전한 사랑을 특유의 영상미로 표현해 <아비정전(阿飛正傳)>(1990), <춘광사설(春光乍洩>(1997), <중경삼림(重慶森林)>(1994)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위 세 편의 영화는 독특한 촬영 기법을 통해 당시 사랑과 이별 속에서 나타난 고독과 후회,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동시에 그려낸다. 이를 통해 당대의 관객은 스스로 채우는 것이 불가능한 공허 이면의 불안함을 거대한 스크린에서 찾아냈다. 과연 당대 홍콩의 청년들은 어떤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품을 통해 세기말 홍콩으로 돌아가 보자.

먼저 <아비정전>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사랑을 믿지 않는 바람둥이 주인공 ‘아비’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아비는 축구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여성 ‘소 여진’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게 된 아비는 그녀를 쫓아내고, 다시 ‘루루’라는 댄서와 만남을 이어간다. 아비는 루루에게도 싫증을 느껴 이별을 통보하고, 이후 양어머니에게 자신의 친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얻어 필리핀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비는 필리핀에서 친어머니로부터 만남을 거절당해 거리를 방황한다. 그는 위조 여권을 구해 필리핀을 떠나고자 하지만, 폭력 사건에 휘말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비는 소 여진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한다. 왕가위 감독 작품세계의 시작점이라 평가받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지닌다. 이는 ‘사랑’이 등장하지만 온전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영화의 줄거리와 맞물리면서, 떠난 자에 대한 그리움과 불가능한 재회에 대한 허무함을 강조한다. 또한, 자신을 ‘발이 없어 계속해서 날아가는 새’로 묘사하는 아비의 독백이나, 좁은 방과 같은 구도를 통해 고립된 인물의 심리를 나타낸다. 이 작품으로부터 불완전한 청춘의 고독을 그려내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표현 방식이 시작됐다.

<아비정전>이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자신을 고독으로 몰아넣은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면, <춘광사설>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사랑으로 후회와 그리움을 느끼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성 연인인 ‘보영’과 ‘아휘’는 이과수 폭포를 보러 아르헨티나까지 함께 여행을 가는 도중, 다투고 헤어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을 찾아온 보영을 아휘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이고 간호해준다. 다만 아휘는 보영이 다시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을 염려해 그의 여권을 숨기고, 그로 인해 그들은 언쟁을 벌이다 또 한 번의 이별을 맞는다. 그 후 아휘는 홍콩으로 돌아갈 돈을 모으기 위해 도축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보영에 대한 마음도 차츰 사라져, 보영의 여권을 방에 두고 홍콩으로 떠난다. 보영은 ‘아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의 집을 청소하고 기다리지만, 아휘는 돌아오지 않고 보영은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춘광사설>을 통해 왕가위 감독은 맹목적이고 불안정한 사랑의 말로를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생생히 전달한다. 이는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나타난다. <춘광사설>의 영어권 제목은 <Happy Together>이지만 감독은 함께해서 행복하다는 제목과는 달리, 서로에게 가까워질수록 둘의 관계가 불안정해지는 아이러니함을 영화 속에 담는다. 또한, 감독은 두 연인이 재회하기 전까지의 장면을 흑백 영상으로, 재회한 후의 장면들은 컬러영상으로 촬영했다. 이는 사랑을 색채 변화로 나타내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표현 방식으로, 두 주인공의 후회와 그리움을 극대화한다.

앞선 작품들이 사랑의 아픔에 대해 다루었다면, <중경삼림>은 이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경삼림>은 두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경찰인 ‘하지무’는 여자친구인 ‘메이’와 이별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마음을 정리하기로 하고 술집에 들어가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하지무는 연인에게 배신당한 금발의 마약상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낸다. 다음날 하지무는 그녀에게서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게 되고, 금발 마약상은 자신을 배신했던 옛 연인을 죽인다. 이후 하지무가 자주 가는 식당의 점원 ‘페이’와 경찰 ‘663’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페이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오는 663에게 호감을 느끼고, 우연히 그의 옛 연인에게서 온 편지와 동봉된 그의 집 열쇠를 얻게 된다. 663의 집에 출입이 가능해진 페이는 그날 이후로 그의 집에서 옛 연인의 흔적을 지우며 집을 자신의 방식으로 꾸며나간다. 어느 날, 663은 자신의 집에서 페이를 발견하고, 당황하지만,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며 가까워진다. 둘은 술집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보기로 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1년 뒤 페이는 스튜어디스, 663은 페이가 일하던 가게의 주인이 되어 재회한다. 이처럼 영화는 두 에피소드를 통해 젊은 두 남녀가 과거의 인연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한편, 감독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시계, 유통기한, 날짜 등과 같은 시간에 대한 소재에 초점을 맞추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방, 캘리포니아라는 술집과 국가와 같은 공간에 주목한다. 이처럼 사랑에 관한 두 가지 표현 방식이 합쳐져 사랑의 시공간성을 보여주는 신선한 표현 기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감각적인 영화는 90년대 청년들에게 큰 여운을 남기며 왕가위 감독의 이름을 알렸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왕가위 감독은 세기말 홍콩 사회에 팽배했던 상실의 감정과 상실한 시간을 복원하고자 작품으로 나타냈다. 이러한 감독의 작품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실을 느끼는 청년들의 상처를 감싸주듯이 다가온다. 이별이나 상실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공허함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문수현 기자  (harumoon20@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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