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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만들어낸 삶의 이면을 돌아보며꼴찌의 야구에서 인생을 찾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

야구 팬들에게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독특한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십중팔구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꼽곤 한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겨우 3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는 특유의 슈퍼맨 마스코트와 B급 감성 넘치는 팀 이름, 그리고 좀 다른 의미로 ‘전설적’이었던 성적 덕에 연고지였던 인천의 야구 팬들에게는 일종의 애증에 가까운 존재로 추억되고 있다.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또 어떤 때에는 프로야구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게는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박민규(1968~)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은 이런 삼미를 응원했던 ‘나’라는 소년과 그의 친구 ‘조성훈’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삶을 서술하며 삼미의 야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무한 경쟁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숭의야구장 터에는 큰 규모의 축구장이 들어섰다.

#왠지 모르게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와 비슷했던 프로야구 원년의 캐치프레이즈ㅡ‘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낭만을’은 적어도 삼미의 팬클럽인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구호였다. 꿈과 낭만이란 것은 인생에 있어서나 야구에 있어서나 적어도 5할대 이상의 승률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도무지 1할 2푼의 승률로 꿈과 낭만을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성적은 속된 말로 ‘눈 뜨고 못 봐줄 수준’이었다. 그들은 최하위가 자신들의 터전인 마냥 한 번도 최하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고, 결국 전기리그 5승 35패, 후기리그 10승 30패, 도합 15승 65패라는 처절한 승률을 기록하며 인천 야구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래서인지 사회는 그런 패자의 모습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기자가 삼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찾아간 인천 도원동 숭의야구장 터도 마찬가지였다. 숭의야구장은 삼미의 홈 구장으로, 삼미 선수들의 열정과 땀이 녹아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 자리엔 ‘숭의 아레나 파크’라는 축구장이 지어져 있었고, 삼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지하도에 있는 ‘인천 스포츠 타임라인’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팀별로 그 발자취를 소개하는 것도 아닌, 인천 야구의 역사적 흐름 속에 프로야구를 끼워 넣은 수준이라 삼미의 역사에 구체적인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꼬뿌(컵)가 없으면 못 마시’듯, 스포츠 팀이 있어도 승리하지 못하면 즐기고 기억할 수 없나 싶어 기자는 착잡해졌다.

 

▲지하도의 인천 프로야구 구단 역사 설명에서는 성적 위주의 설명만 찾을 수 있었다.

#1980년대의 세상은 3위 MBC 청룡과 4위 해태 타이거즈를 하나로 꽉 묶어주는 새로운 용어를 하나 만들어낸다. 중산층. 바로 중산층이다. 이 파워풀한 단어는, 그 후 세상을 바꿔나가는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중략) 무진장 노력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하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거죠.”,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하는 이상한 세상이 온 것이다.#

 

삼미가 기억되지 못하는, 그리고 치욕의 역사로 치부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평범하게 사는 이들은 최하위라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을 살게 될 운명이 되어버렸고,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해야 ‘할 만큼 했다’라는 소리가 나오고,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의 노력을 해야 ‘잘하는데’라는 소리가 나오는, 무한한 경쟁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삼미는 평범한 야구를 한 죄로 꼴찌라는 치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치욕은 삼미를 응원하던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와 그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변절’을 택해 응원팀을 옮기는 이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소설 속 ‘나’의 친구 조성훈도 그 중 하나로, 그는 ‘부평은 인천보다 서울에 가까우니까’라는 이유로 삼미를 버리고 ‘중산층’에 속하는 3위 MBC 청룡의 팬이 되었다. 기자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 찾았던 인천역에서 그 치욕의 그늘을 느꼈다. 소설 속에서 인천역은 ‘나’와 조성훈이 삼미의 야구를 보러 가기 위해 자주 방문하던 장소 중 하나다. 인천역은 1호선 전철의 종점으로 끝 부분은 도로와 인천항에 막혀 선로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승강장 끝부분에 위치한 멈춤 장치와 정차해 있는 전철을 번갈아 보다 보니 먹먹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이러한 인천역의 모습은 더는 내려갈 곳도, 나아갈 곳도 없는 꼴찌가 되어버린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대변했던 것이리라.

 

▲인천역의 끊긴 선로는 기자에게 묘한 먹먹함을 안겼다.

#“아느냐?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인 조 부장에게 왜 회사에서 허리를 굽혀야 하는지?”

“….”

그리고 나는 보았다. 파를 콧구멍에 끼운 사람처럼 아버지의 눈 주위가 붉어지는 것을. 그리고 한 마리의 지렁이처럼 아버지의 이마 위에서 꿈틀거리는 한 줄기의 혈관을. 그러나 밟혀도 밟혀도 자신이 꿈틀대지 못하는 이유는 다 나 때문이란다. 나 때문에, 참는 거란다.

“결국, 그래서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알겠느냐?”#

 

쉴 새 없는 무한한 경쟁의 흐름은 ‘나’라는 12살짜리 소년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인천 앞바다의 포구에 데려와 회를 사 주며 ‘사람은 일류 대학을 가야 한다’라는, 자신의 처지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부자(父子)가 이야기를 나누었을 인천의 한 포구에 도착했다. 그곳도 경쟁의 물결이 집어삼킨 지 오래였다. 횟집이건 건어물집이건 너도나도 앞다투어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간판을 앞세워 손님을 모시려 혈안이 되어 있었고, 점포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여기 회 잘 하냐’는 행인의 말에 ‘아유 그럼요, 여긴 프로입니다’라고 호객행위를 하던 주인장의 모습은 소설 속 문장과 너무나도 유사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기온이 영하 10도에 이를 정도로 날이 이상하게 추웠던 탓이었을까, 기자의 마음은 조금씩 얼어만 갔다.

 

▲포구 어시장 건물 벽과 창문에는 점포 간판들이 들어찼다.

#야구로 치자면 1998년은 *데드볼의 시기였다. 세상의 곳곳에서 데드볼을 맞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 무렵 나는 이혼을 했고 얼마 후 실직을 했다. (중략)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 라고 조성훈이 얘기했다. 부끄러운 거야, 라고 내가 답했다. 왜? 놈이 다시 물었다…. 진 거니까. 결국 나는 그런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지면 어때? 조성훈이 얘기했다.#

 

꿈과 낭만을 심어주겠다는 허울 좋은 목적으로 생겨난 프로라는 개념은 오히려 꿈과 낭만, 그리고 평범함을 깨부쉈다. 삼미는 무한 경쟁의 흐름에 파묻힌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것은 소설의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하지만, 실직과 이혼 등 인생의 쓴맛이란 쓴맛은 다 겪으며 절망에 빠진다. 그런 ‘나’에게 어린 날의 친구 조성훈이 찾아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았던 삼미의 야구를 기억하라며 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을 남긴다. 사실 기자는 아직 그 말이 잘 와 닿지는 않는다. 기자 또한 무한 경쟁의 사회를 살며 ‘지면 안 된다’,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 따위의 말들을 끝없이 들어왔고 학습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대인의 고정관념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쉽게 깨부수기엔 삼미의 야구는 너무 이상적인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조성훈이 ‘나’에게 건넨 위로의 말은 중학생 때 이 소설을 접한 이후 기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기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경쟁과 속도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까.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전철을 타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지만, 기자는 마음이 동해 포구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조금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마치 일부러 지려고 마음먹은 듯했던 삼미의 야구처럼, 자진해서 삼천포로 빠진 셈이다. 하지만 늦어지는 여정에 조급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로소 ‘평범함’이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그러자 여정 내내 얼어붙어 있던 기자의 마음이 버스의 온기와 함께 녹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자는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기자를 비롯해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삼미의 야구가 가진 가치가 공감받을 수 있기를 속으로 소망했다.

 

*데드볼: 야구 용어 ‘몸에 맞는 공(Hit By Pitch)’의 일본식 표현.

 

김주영 기자  (B881029@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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