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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없는 2021년… 죽은 법 뒤에 남겨진 숙제들법적 공백을 기회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
▲출처: 경제타임스

2021년 1월 1일 새해의 아침이 밝으면서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낙태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부녀가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할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269조와 임신중지 의료행위를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가 효력을 잃게 되며 여성들은 형사처벌 우려를 하지 않게 됐다. 의료인 역시 임신중지를 하거나 도왔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게 되며 여성의 건강을 위협해온 길고 긴 처벌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낙태죄 폐지 후 3달…관련 규정이 전무한 ‘법적 공백’ 상태 

낙태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53년 형법에 낙태죄가 포함된 이래로 우리나라는 태아의 생명권 존중을 전제로 임신중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처벌을 행했다. 1960년대 들어 경제 개발을 위한 인구 억제 정책이 요구됨에 따라 모자보건법을 통해 예외적인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그 후 사실상 낙태죄는 사문화됐지만, 형법에 ‘죄’로 규정된 낙태죄는 60여 년 동안 수많은 여성의 건강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던 중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라고 하여 66년 만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폐지 후 혼란을 막기 위해 원래 형법 조항 효력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유지하며 대체 입법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여성이 임신 14주까지는 아무 조건 없이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24주까지는 강간에 의한 임신이나 근친 간 임신 등의 경우에만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24주 이후에는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실제적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는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국제적인 추세에 부합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개정안이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이미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부활시킨 역사적 퇴행 행위라고 말하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아무 조건 없는 임신중지는 임신 14주가 아니라 10주로 조정해야 하고, 임신 22주 이후부터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세부 내용과 법안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체 입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낙태죄가 없는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법적 공백 상태, 이대로 괜찮은가?

대체 입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2021년을 맞이하며 관련 규정이 전무한 ‘법적 공백’ 상태가 됐다. 이 때문에 임신부 및 태아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 문제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고, 당사자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 됐다. 현재 국내에서 미프진과 같은 자연유산 유도 약물은 불법이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 의료진 또한 임신중절수술 이행 의무가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의료진이 수술을 원하지 않을 시 산모는 수술을 거부 당할 수 있다. 또한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 역시 정해진 바 없으며 현재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임신중절수술에 한해서만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다. 모자보건법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적·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혈족·인척 간 임신인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경우만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권인숙 의원은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중절수술과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임신중절수술을 전문의료 영역으로 포섭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러한 권 의원의 의견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는 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질병·부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건강보험법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고 말하며 건강보험 급여 적용에 반대했다. 이러한 상황 속 의료계는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각각의 기준을 정해 현장에 적용했다. 지난달 28일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산부인과 관련 4개 단체는 임신중절수술은 임신 10주 미만일 경우만 시행하도록 권고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의사 개인의 상황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선별적 낙태 거부’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일부 여성계에서는 병원 내에서의 진료 거부권도 중요하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의뢰하는 의무 또한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즉 현재 우리 사회는 낙태죄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공백이 발생하여 임신중지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기간이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방안 등의 정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낙태죄 없는 2021년 맞이 기자회견에서 ‘행동하는간호사회’ 민정 간호사는 “아직 ‘임신중지’를 보장할 구체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발생할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라며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접근성 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여성계는 법적 공백 기간 동안 벌어질 혼란에 대비하여 유산 유도제의 합법화와 의료인 교육, 그리고 임신중절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이 법적 공백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이러한 법적 공백을 ‘기회의 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법이 늦어지는 이유는 여성의 건강권과 태아의 생명권 간에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친 후에 여성들을 위한 지원과 정보 체계를 마련하고 미혼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법적 공백의 시간동안 체제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는 법적 공백의 시간은 임신중지의 권리를 위한 법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시간인 동시에 낙태죄라는 굴레를 벗어난 몸이 어떤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 상상해보는 기회의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법적 공백이 안전 공백이 되지 않도록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게 캐나다도 낙태죄 법적 공백을 겪은 바 있다. 캐나다는 1988년 대법원에서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형법 251조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됐다. 이후 다른 개정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임신중지에 관한 어떠한 규제도 없는 비범죄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비범죄화’란 특정한 법적 조건 하에서 합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관련 행위에 대한 어떠한 법적 규제도 없는 상태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는 현재 임신중절수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고 임신중지를 한 당사자나 의료인, 관련 보건 의료 종사자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또한 임신 주수나 사유에 대한 제한, 제 삼자의 동의 의무 규정과 같은 별다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캐나다의 임신중절률은 15세~44세 사이 인구 1천 명 기준 15%인 한국보다 낮은 11.7%라는 수치를 보인다. 이를 통해 전문가들은 낙태죄의 비범죄화가 사람들이 흔히 우려하는 임신중지의 남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낙태죄 비범죄화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준 캐나다와 같이 많은 국가가 완전한 비범죄화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12월 30일,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임신 1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이 통과되면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또한, 프랑스는 지난해 10월 합법적 임신중지 기간을 임신 12주에서 14주까지로 확대한다는 개정안이 논의됐고 임신중지에 대한 주수 제한을 없애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는 등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안전한 낙태죄 비범죄화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그동안은 임신중지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낙태에 관한 각종 제도와 절차에 관한 규정 또한 전무했다. 하지만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어 의료체계나 관련 법상에서 추가적인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 10월 권인숙 의원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단’으로 변경하고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및 형법 적용배제 규정을 삭제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통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임신중지에 대해 모든 여성에게 안전한 임신중지서비스의 접근을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모든 여성이 임신·출산, 임신 중단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해 국가가 안전하고 정확한 의료 정보 접근과 서비스를 제공할 책무를 명문화하겠다”고 말하며 처벌이 아닌 지원과 보호를 중심으로 대체 입법을 마련할 것이라 강조했다. 한편 여성계에서는 낙태죄 폐지에서 더 나아가 성∙재생산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차별이나 낙인 없이 성적 즐거움을 누리고 피임과 임신중지, 출산 등에 대해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담은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을 마련했고, 해당 안을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임신중지 유도제의 공적 도입과 중절 수술 건강보험 적용의 필요성이 담긴 10대 과제를 제시하면서 낙태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처럼 법적 공백의 시간 동안 정부를 비롯한 많은 단체가 낙태죄 비범죄화를 넘어 여성이 건강권과 재생산 권리를 행사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합법화된 임신중절수술이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길고 긴 처벌의 시대가 끝난 지난 2021년 1월 1일은 분명 역사적인 날이다. 하지만 별다른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별도의 관련 법이 없는 ‘법적 공백’이 발생하면서 실제 현장에선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법적 공백을 ‘기회의 시간’으로 삼아 사회적 장벽을 부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불법으로 규정되어 온 임신중지가 합법화됨에 따라 여성들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의료 체계와 법으로 보장받도록 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주지후 기자  selene6.23@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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