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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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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 장승업, <파초도(芭蕉圖)>
오원 장승업, <파초도(芭蕉圖)>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파초도(芭蕉圖)>는 19세기 오원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이 그린 파초와 괴석, 국화, 풀벌레가 한데 어우러져 가을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이다. 파초는 중국이 원산지인 식물로 한국에는 야생종이 없고 관상용으로 재배된다. 고려시대부터 문인들이 감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문인들 역시 좋아했던 식물이다. 파초가 애호되었던 이유는 왕유(王維), 회소(懷素), 장재(張載) 고사 등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와 함께 문인들을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파초는 회소 고사에서 자기수양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며 장재의 시에서는 파초의 잎처럼 새로운 덕과 지식을 끊임없이 넓혀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됐다. 이와 같은 의미들로 인해 파초는 문인의 표상처럼 여겨지게 됐다. 18세기 조선에 이르면 화초가 그림에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원예(園藝) 문화가 인기를 끌며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기르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파초는 외래종이자 귀한 관상용으로 부유하고 귀중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에는 이러한 길상의 의미가 강해져서 더 많이 파초를 그리고 감상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그림 애호 계층이 증가하면서 서화의 유통도 늘어나 그림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문화가 만연하였다. 이 그림 역시 19세기에 그려지고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집안에 장식해두고 보았던 그림으로 보인다.

이 그림의 제목은 파초도이고 그림 중심부에도 파초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화면 왼쪽에 쓰인 글은 파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송나라 유자휘(劉子翬)가 쓴 국화에 관한 시 「국(菊)」에 나오는 구절을 적은 것이다. 그리고 샛노란 국화 역시 왼쪽에 커다랗게 그려져 파초 못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輕烟細雨重陽節 안개처럼 가랑비 내리는 중양절

 

曲檻疏籬五柳家 구부러진 난간 성긴 울타리는 오류선생의 집(五柳家) 같구나.

 

그림에 쓰여진 글을 읽어보면 그림이 나타내는 시간은 중양절이라는 음력 9월 9일의 가을을 말한다. 그리고 오류가(五柳家)는 도연명(陶淵明)이라는 동진(東晉)의 시인이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자신을 오류선생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국화는 도연명의 상징으로 은거하며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도연명의 절개를 상징한다. 또한 국화는 역사적으로 사군자 중 하나로 군자의 덕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 그림의 국화는 이전 시기에 그려졌던 국화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국화는 서양에서 온 양국(洋菊)으로 청나라에서 그려진 국화 그림이 유입되면서 조선에서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국화는 이전에 그려진 국화와는 달리 꽃이 크고 꽃잎이 많은 모양을 특징으로 한다.

이 그림은 문인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파초와 국화를 그린 것이나 이러한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에는 조선후기의 원예문화와 그림을 구매하고 감상하는 문화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중국 해상화파의 영향을 받은 특이한 구도를 비롯하여 윤곽선을 그리지 않은 몰골법과 새로운 색 조합을 사용해 19세기의 화가 장승업만의 감각을 보여준 새로운 모습 파초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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