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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화정(공화국)’의 의미: 고대/그리스 문화

‘공화정(공화국)의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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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어두운 터널을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지나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등불은 우리가 누군지 아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간결하게 압축한 것은 바로 대한민국 헌법 1장 1조 1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특히 공화국의 의미는 모호하다. ‘공화(共和)’라는 용어는 중국 주나라의 열 번째 왕인 여 (厲)왕이 폭정으로 쫓겨나고 주공(周公)  과 소공(召公)이 함께 화합하면서 정치를 했다는 데서 기원한다. 그리하여 ‘공화’는 군주가 없음을, 동시에 ‘함께 화합하면서 정치함’을 함의한다. 이런 정치체제를 공화정 그리고 공화정체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를 공화국이라 한다. 군주론의 저자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도 군주가 없는 이탈리아 북부의 국가들을 표현하기 위해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를 사용하였고, 이것이 영어의 ‘리퍼블릭(Republic)’, 즉 ‘공화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공화국은 단순하게 군주 없이 함께 화합하면서 정치하는 국가만을 의미할까? ‘공공의 것(궁극적으로는 국가)’을 의미하는 ‘레스 푸블리카’는 ‘정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테이아(politeia)’를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정치철학자들이 위의 용어들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공화정(공화국)’의 의미를 이해하는 첫 번째 순서이다. 다만 이야기는 ‘공화정’이 어떤 형태의 정체인가로 국한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시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스승 플라톤과 달리 많은 폴리스(보통 도시국가로 번역한다)의 정치 형태를 직접 연구한 후, 먼저 정부의 운용 목적에 따라 정체를 구분했다. 즉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용되면 올바른 정체,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왜곡된 정체였다. 그리고 지배자의 수에 따라, 일인이 지배하는 왕정, 소수가 지배하는 귀족정,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정이 아니라) ‘폴리테이아’를 올바른 정체에 포함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을 일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최악의 정체로 간주했으며,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민주정은 공공의 이익보다 가난한 다수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귀족정을 선호했다. 하지만 귀족이 소수의 특권 계급이 아니라 탁월한 능력자인 소수의 정치 엘리트를 의미한다는 것을 빼면, 귀족정에 대한 그의 논의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선의 정부로 귀족정이 아닌 다수가 지배하는 ‘폴리테이아’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폴리테이아’는 어떤 형태의 정체인가? 흥미롭게도 그는 왜곡된 정체인 과두정과 민주정의 혼합정을 가장 이상적인 정체로 봤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정체를 의미하는 ‘폴리테이아’가 혼합정을 그리고 다시 공화정을 의미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고 혼란을 초래하는 과두정과 민주정을 혼합함으로써,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민에 휘둘리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조정하면서 정치적 안정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혼합정에서 다수는 누구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정의 사회적 기반을 중간 계층에서 찾았다. 그들은 귀족정과 민주정의 지배자인 부자와 빈자 간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정체를 재산의 보유 형태와 연결했지만, 중간 계층이 꼭 경제적인 계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윤리적인 덕이나 정치적 정의에서도 중용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체는 다수의 중간 계층이 지배하는 혼합정(폴리테이아)이었다.  

▲폴리비오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폴리비오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철학적 주장을 위해 역사적 증거를 소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더욱 심화한 사람은 그리스 출신의 폴리비오스(Polybios)이다. 정치철학자보다는 역사학자에 더 가까운 그는 당시 로마의 발전 원인을 정체에서 찾았다. 그는 왕정, 귀족정,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민주정을 단순 정체로서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였지만, 각 정체는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정체를 생물체의 출생, 성장, 노쇠, 죽음의 과정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여, 한 국가의 정체도 탄생, 성장, 번영 그리고 쇠퇴와 몰락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그는 정체순환론(anacyclosis)에 따라 정체도 자연의 법칙처럼, 왕정 -> 참주정 -> 귀족정 -> 과두정 -> 민주정 -> 중우정 -> 다시 왕정으로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체의 끊임없는 순환으로 야기되는 위험과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처럼, 혼합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리비오스에게 정치의 기능은 만장일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통해 자유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자유를 위협하는 정체의 순환을 막는 이상적인 혼합정은 로마의 공화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로마 공화정은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단순한 혼합정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상적인 정체는 여러 정체가 혼합하여 변한 하나의 정체를 의미하지 않았다. 반대로 각 정체는 분리되고 각각 다른 역할과 기능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기원한 권력 분립의 원칙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키케로
▲키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폴리비오스의 정치철학을 이용하여 혼합정을 더욱 정교하게 주장한 정치사상가는 키케로(Cicero)이다. 그는 그리스어인 ‘폴리테이아’를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로 번역한 로마인이었다. 정치에 관한 그의 논의는 국가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한다. 그에게 국가는 인민의 재산이었다. 그 때문에 국가의 목적은 사유 재산의 보호였다. 이는 자신의 ‘이상 국가’에서 사유 재산을 철폐한 플라톤이나, 재산을 국가에 있어서 배경적 조건으로만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구별된다. 키케로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을 인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하는 올바른 정체로, 참주정, 과두정, 중우정을 잘못된 정체로 구분했다. 그 또한 순수한 형태의 단순 정체는 자체적으로 정치적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타락된 형태로 변할 수 있음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폴리비오스처럼 고정된 정체의 순환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즉 참주정 이후에 반드시 귀족정이 도래하는 것은 아니고, 귀족정이나 민주정이 올 수도, 아니면 다른 형태의 정부로도 변할 수 있었다. 이런 국가의 근본적인 불안정을 해소하는 해결책은 혼합정이었다. 로마의 공화정은 세 가지 순수한 형태의 좋은 단순 정체가 혼합된 가장 이상적인 제4의 정체였다. 하지만 혼합정의 강점은 견제와 균형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의 다른 요소들이 각각의 다른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키케로는 인민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중우 정치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통제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키케로의 혼합정은 귀족정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활동한 정치철학자들이 주장한 공화정의 세부적인 내용은 비록 다르지만, 단순화하면 그것은 혼합정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이 교조주의적 입장에서 혼합정만이 영원한 이상적인 정체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에게는 정체가 아니라 정체를 만들어가는 인간이 더 중요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화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테이아’는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와 시민으로서 행동한다는 의미를 가진 ‘폴리테우오(politeuo)’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현재 민주공화국에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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