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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했습니다

홍준영(회화17)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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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첫 자를 떼기가 상당히 어렵더군요. 재작년, 이 신문 11면 상단에 편집국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실릴 글을 쓸 때보다도 말입니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나가야 할까요. 퇴임한 기자의 회고, 갓 졸업한 졸업생의 촉촉한 회상, 혹은 사회 초년생의 포부나 비애 정도를 담으면 될까요. 그중 어떤 입장에 무게를 실어 기록해야 할까요. 여하튼 이 글을 다 쓴 후에도 그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 괜한 부담감은 내려놓고 그저 생각나는 말들을 써볼까 합니다.

저는 17학번입니다. 네, 휴학은 한 학기도 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을 재학생분들 중에는 저보다 학번도, 나이도 선배이신 분들이 많겠죠. 그렇기에 제가 동문 기고 코너에 글을 올린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졸업 후 ‘사회 초년생’의 계열에 진입했으니, 잘못된 것은 없는 걸까요. 적어도 대학생활을 돌아보기에 누구보다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긴 할 것 같습니다.

1학년 1학기에 홍대신문과 함께 시작한 제 대학생활은 3년간의 S동 강당과 1년간의 집구석을 전부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4학년이 되기 전 1, 2, 3학년 3년간을 기자 생활에 몰두하며 보냈고 드디어 4학년이 되어 여유로운 대학생활을 즐겨볼까 했더니, 이런. 1학기가 개강하기도 전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신문사 생활 없이는 학교를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웬만한 동문보다는 아직 학교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각종 부서에 전화를 걸고 각종 강의실이나 가람홀에서 진행된 회의란 회의들은 다 참석했으니까요. 어떤 학우들은 ‘학생회’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제 연락처 안에는 아직도 각종 단과대학의 학생회장을 지낸 이들이 일련번호로 남겨져 있습니다. 물론 취재처였던 학교 부서들도요. 언젠가 이 많은 연락처들을 정리해야겠죠.

그런데 사실 지금은 이 기록들을 정리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새삼스럽게도, 학교가 참 그립거든요. 코를 넘어 머리까지 찌르는 테레핀의 기름 냄새도, 매일 9시 50분에 무리 지어 우르르 등교하던 홍문관 앞 횡단보도도, 영원히 괴롭고 힘들기만 할 것이라며 매주 세어보던 신문 마감 계획표도. 심지어는 “난 마감 2번이면 퇴임이다. 너희는 23번 남았다.”라며 비아냥거리는 농담을 일삼던 선배들의 모습도 그립습니다. 어떠한 미련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고작 지금에 와 이렇게 회상하고 있네요.

사실 몇 개월도 안 되었습니다. 제가 ‘고학년’이라는 케케묵은 타이틀을 뗀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이 기억들은 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어버리고 저는 다시 신입 티 나는 수습사원이 되어있습니다. 졸업하니 좋지 않냐고요? 글쎄, 적응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새 학기의 기분을 잘 적응하고 있나요?

주로 한 가지 업적이나 타이틀을 기깔나게 끝내고 자신감이 솟구쳐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가 올라오려고 할 때면, 우린 곧바로 다른 곳에서 새로운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때로는 현재의 상황이 고되고 적응이 어려워 ‘그땐 좋았는데...’라며 과거를 미화해 회상하거나, ‘여기 너무 별로야’라며 환경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쁜 업무와 과제들로 이런 마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지겠죠. 대부분의 시작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지금 상황이 불만족스러워도 새로운 시작에서부터 자리를 박차고 모든 걸 놔버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이 반(半)이라고 하잖아요. 이 시작을 놔버리면 또 어느 세월에 새롭게 반(半)을 해냅니까.

환경 탓은 말고 이겨내라는 꼰대의 말처럼 들렸을까요. 하지만 전혀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환경을 탓하면서 시작을 버티어내 봅시다. 또 모르잖아요. 우리가 이곳을 바꾸어 낼 수 있을지도, 후에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이들에겐 다른 환경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그리고 나중에는 회상하며 이곳을 그리워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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