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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저(Pos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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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쓴 적 없는 채로 이제 2년 차 기자가 되어 ‘S동 211호’를 작성하게 됐다. 지난 반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평하자면 기자는 기자가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정기적인 발행일자를 갖춘 홍대신문 특성상 마감 기한 준수는 생명이다. 보도 기사 배분 회의 이후 기사를 쓸 기한은 일주일이다. 기자는 일주일 중 첫째 날부터 취재와 기사 작성을 할 정도로 시작은 빠르지만, 마무리가 미숙하다. 그래서 기자가 쓴 기사는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선배나 동기의 피드백을 받고 난 후에야 겨우 괜찮은 기사로 변모한다. 신문에 실린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기에 기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동경을 받았다. 따라서 기자가 인지하고 있는 마무리가 미숙하다는 단점을 그저 최선을 만들기 위해 항상 의문을 제기하는 소크라테스적 사고라고 포장해왔다. 하지만 기자의 낙관론은 오래가지 못했다.

낙관론이 무너진 계기는 2021 동계기초훈련에서 올해 1학기에 발행할 기사의 기획서를 통과시킬 때였다. 작년 홍대신문은 인력 부족으로 여러 번에 걸쳐 수습기자를 모집했다. 새로 온 수습기자들은 기수상 동기지만 그들의 실력은 선배였다. 기자보다 늦게 홍대신문에 합류한 동기 기자들이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작성한 기획서를 볼 때마다 기자가 작성한 기획서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이에 기자는 소크라테스적 사고라는 포장을 뜯고 그 안에 든 내용물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포장 속 내용물은 ‘포저(Poser)’였다. 포저는 실력이 없으면서 남에게 뽐내기 위해 보드를 타는 사람을 뜻한다. 한창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관련 내용을 뒤적거릴 때 이 단어를 접했다. 포저는 숙련자처럼 보이기 위해 보드 밑창을 갈기도 하며, 보드 관련 명품 의류로 치장하기도 한다. 기자에게도 포저 기질이 있었다. 남에게 멋있어 보이기 위해 스케이트보드, 기타 등과 같은 멋들어지는 취미를 가졌다. 취미뿐 아니라 대학 생활과 일상생활에서도 기자는 포저였다. 홍대신문 지원서에 쓰지는 않았지만, 대학 생활을 바쁘고 알차게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함도 나름 지원 동기였다. 마감 직전까지 기사를 붙들고 있는 것도 어쩌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기자를 돌아보니 부끄러운 감정이 앞섰다. 끊임없이 사유하는 고고한 철학자가 아니라 실속 없이 남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누군가에게 기자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꺼려졌고 기자가 벌여놓은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흔히 매체에서 접한 회사원들의 정장 안 주머니에는 사직서가 들어있다. 기자는 마음 깊숙이 사직서를 품고 기자의 마지막 기사가 될 고정란을 다 쓴 뒤 여유로운 방학을 보냈다. 달콤한 휴식은 퇴임하려는 기자의 생각을 굳혔다.

방학 중 하루는 부모님을 따라 골프 연습장에 갔다. 골프채를 휘둘러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자가 휘두른 채에 맞은 공은 기자의 생각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이 가르쳐 준 것은 자세 하나뿐이었다. 기자는 몸에 힘을 빼고 배운 자세대로 공을 맞혔다. 공은 멀리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자신감이 붙은 기자는 바른 자세를 떠올리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은 자세라고 얼핏 들었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과거 볼링을 처음으로 쳤을 때도 친구의 스윙을 따라했더니 모든 핀을 쓰러뜨렸다. 흉내내기는 스포츠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글쓰기 책에서는 필사를 강조한다. 좋은 글을 따라 써보면 자연히 글 쓰는 실력도 늘어난다. 기자는 포저에 대해서 섣부르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포저는 비웃을 것이 아니라 숙련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를 깨달은 기자는 마음 속 사직서를 찢었다. 이제 기자가 느꼈던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나는 포저다”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게 됐다. 흉내내다보면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기자는 오늘도 S동 211호에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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