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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직시해보자   

디지털 세계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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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SNS 등의 디지털 세계는 현대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를 매개로 온·오프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공간의 특성상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디지털 성범죄의 유형 중 불법촬영 영상 유포의 경우, 피해자의 45.6%가 자살을 생각하고 이 중 19.2%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피해자의 삶을 파괴한다. 특히 최근 버닝썬, 연예인 불법촬영,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이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소개한 영화와 드라마를 살펴보고, 현실에서 한 번쯤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지 생각해보려 한다.

 

영화 <나를 기억해>(2017)는 불법촬영및 영상 유포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를 보여준다. 여고생 ‘유민아’는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친구 ‘진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가 건네준 박카스를 마시고 집단 강간을 당한다. 유민아의 남자친구와 강간범들은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음란물 사이트에 유포한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형사 ‘오국철’에 의해 체포되고 유민아는 ‘한서린’으로 개명을 한 뒤 새 삶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윤리 교사가 된 한서린은 누군가가 교무실 책상에 올려놓은 음료를 마신 후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한서린은 ‘마스터’라는 인물에게 정신을 잃은 사이에 찍힌 추행 사진과 영상을 받는다. 마스터는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사진을 보낸다고 협박한다. 서린은 국철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 사람은 마스터의 정체를 파헤친다. 결말에서 마스터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마스터는 13살의 어린아이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불법 사이트에 미성년자의 영상을 올려 돈을 벌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던 것이다. SNS상에서 일어난 실제 범죄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온라인에서 익명성을 활용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상대방을 자극하고 심리를 조종하는 가해자의 악랄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범인이 고작 13살의 미성년자였다는 점은 더욱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n번방 사건 피의자 중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됐고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성년자 처벌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 속 마스터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영화의 결말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서 가해자의 연령에 따른 처벌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미성년자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은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2020)에서도 나타난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오지수’는 온라인 앱으로 조건만남을 이어주는 성매매 포주다. 돈을 벌기 위해 앱으로 조건만남을 알선하던 중 같은 반 여학생 ‘배규리’에게 그 사실을 들키지만 배규리 역시 그의 범죄에 동참하면서 둘은 범죄의 세계에 더 깊숙히 연루된다. 오지수와 배규리의 동급생 ‘서민희’ 또한 오지수의 온라인 앱을 통해 조건만남을 하며 돈을 번다. n번방 사건이 사회적으로 화두에 오른 시점에 공개된 <인간수업>은 미성년자가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성매매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n번방 사건을 연상케 한다. 또한, 2018년 기준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매수의 91.4%, 성매매 알선의 89.5%가 메신저나 SNS, 휴대폰 앱을 통해 이뤄졌다는 여성가족부의 자료는 <인간수업> 속 청소년 포주의 디지털 성매매가 더 이상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님을 뒷받침한다.

앞선 두 작품에서 미성년자의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다뤘다면 <걸캅스> (2019)는 불법 사이트에 영상을 유포한다는 협박을 받아 고통 받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직 형사였으나 지금은 민원실 주무관으로 일하는 ‘미영’과 징계를 받아 민원실로 쫓겨난 형사 ‘지혜’는 민원실에 핸드폰을 두고 간 ‘서진’이 투신하는 것을 목격한다. 두 사람은 서진의 핸드폰을 통해 그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임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두 사람은 며칠 전 클럽에서 서진이 남자와 사라진 적 있다는 친구의 말과 서진의 혈액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추적한다. 계속되는 수사 끝에 두 사람은 클럽에서 만난 남자 일행이 서진에게 마약을 주입한 뒤 영상을 찍고 유포하려 한 것을 알게 된다. 지혜는 서진이 갔던 클럽에 잠입을 시도하고 서진의 친구가 말했던 남자 일행을 발견한다. 이후 지혜와 미영은 힘을 합해 범인들을 모두 검거한다. 영화 속 남자 일행은 클럽에서 여성들을 신종 마약으로 기절 시킨 뒤 성폭행을 하고 영상으로 촬영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버닝썬 사건’을 연상시킨다. 버닝썬 사건은 클럽을 찾아오는 여성 손님들에게 약물을 먹인 뒤 VIP 손님들에게 성매매를 알선한 사건으로, 가해자 중 유명 연예인이 포함돼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걸캅스>의 개봉 시기가 버닝썬 사태와 맞물리면서 “해당 사태를 예언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연출을 맡은 정다원 감독은 “집필 3년 전,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뉴스와 탐사보도를 보고 시나리오를 썼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감독의 답은 디지털 성범죄가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지만,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수준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세 작품은 우리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성범죄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질문한다. 애써 외면하며 저런 현실은 없다고만 말할 것인가, 아니면 그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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