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 여인이 흩뿌린 눈물을 따라가며, 『영란』(2010)

흙 속에 스며든 눈물은 씨앗을 틔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대신문 기자들은 방학 중에 고정란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문외한인 기자에게 ‘보따리’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기자가 지난 방학에 선택한 『영란』은 선배 기자가 남겨놓은 보따리 기획서의 작품이었다. 기자가 다루고 싶은 작품이라기보다는 빨리 기획서를 통과시키기 위해 선택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별 감정 없이 기사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던 중,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다. 공선옥(1963~) 작가의 『영란』(2010)은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여읜 엄마이자 아내인 ‘나’가 목포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이다. 기자 역시 ‘나’처럼 치유가 필요했고, 『영란』은 길잡이가 됐다.

▲목포역
▲목포역

“어떡하실래요? 나는 지금 목포에 가야 합니다.”

(중략)

“이제 그 집은 제 집이 아니에요. 그 집은 이 지상에서 곧 사라질 집이죠. 그러니, 나는 이제 거리에 나앉은 셈이나 마찬가지예요.”

 

이정섭이 ‘나’에게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답이다. ‘나’는 남편이 생전에 정섭에게 졌던 빚을 탕감하기 위해 정섭과 만난다. 친구의 장례식 때문에 목포에 가야 하는 정섭은 ‘나’에게 자신과 함께 목포로 갈 것을 권유한다. 남편과 아이를 잃고, 집까지 잃은 충격 때문에 ‘나’는 정섭의 질문에 엉뚱하게 답한다. 정섭은 불안정한 상태인 ‘나’의 명확한 동의 의사를 듣지 않고 목포에 데려간다. 이별 때문에 기자 역시 몸에 피가 빠진 듯 무기력했지만, 기사 작성을 위해 목포로 향했다. 정섭이 ‘나’를 목포로 데려갔듯이,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기자를 목포로 데려간 셈이다. 고속열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 두 시간 만에 목포에 도착했다. 기자는 ‘나’가 정처 없이 걸었던 목포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나’는 목포에서 정섭과 헤어진 후 죽은 남편과 아이를 생각한다. 기자 또한 헤어진 연인을 떠올렸다. 실연을 겪은 기자의 마음 때문인지 소설 속 ‘나’의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목포 앞바다의 파도 소리는 유난히 서러웠다.

“갈 데는 있어?”/“없어요.”

나도 소근거렸다.

“그럼 여그서 그냥 우리랑 살자.”

할머니가 조금 전보다 더 은밀하게 속삭였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그냥, 눈물이 핑글 돌았다.

“좋아요.”

▲기자가 묵었던 여객선 근처 여인숙
▲기자가 묵었던 여객선 근처 여인숙

기자가 목포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들어간 곳은 정섭과 헤어진 후 목포에서 떠돌던 ‘나’가 잠을 청한 여객선터미널 인근의 여관이었다. 밤바다의 추위에 떨던 기자는 ‘나’처럼 인근 여인숙에 들어갔다. 여인숙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허름했지만, 조용하고 깨끗해 하룻밤 자기에 좋은 곳이었다. 기자는 눈을 감고 ‘나’가 처음 여관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나’는 여관에 들어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여관 가족의 간호를 받는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목격한 여관 가족들은 놀랍고 무서울 텐데도, ‘나’에게 ‘영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식구로 맞이한다. 이후 영란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목포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을 치유한다. 그리고 기자는 여관에 처음 들어섰을 때를 떠올린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밖과 달리 따뜻한 실내, 목포 사투리로 날이 춥지 않냐며 걱정해주는 여관 주인이 있었다. 영란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눈물을 보인 걸까? 그날 목포의 여관은 그 어떤 고급 호텔보다 포근했다.

내일이나 모레쯤 나는 이 집을 나갈 것이다. 떠날 작정을 하고 나면, 남은 사람에게 정을 줘서는 안 된다. 내 아이와 내 남편은 그들이 내 곁을 떠날 것을 알지 못해 내게 그토록 정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떠날 것을 알고 있으므로, 수옥에게 정을 줘서는 안 된다. 정을 주는 것은 남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영란의 남편과 아이는 영란을 떠났다. 영란은 정이 든 사람을 떠나보낼 때의 아픔을 잘 알기에 여관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여관 가족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기자가 남은 여정을 위해 여관을 나서자, 여관 주인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기자는 영란이 여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 모습이 생각났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작별할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정이 든다면 상대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의 연인이 떠날 줄 알았다면 기자는 정을 주지 않았을까? 머리로는 답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떠날 때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란도 반대로 행동했다. 목포를 떠나기 전, 영란은 목포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느꼈던 완규와 만난다. 영란은 떠날 생각을 바꾸지 않았음에도 완규에게 평소보다 더 저돌적으로 대한다. 기자는 둘의 마지막 데이트 장소인 칠칠계단을 방문했다. 칠칠계단의 양옆으로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 마당에 과수나무가 심어진 한 집이 눈에 띄었다. 저기서 풋풋한 목포 청년은 영란과 자식과 함께 열매를 따 먹는 즐거운 상상을 했으리라. 순간 완규의 모습에서 헤어진 연인의 모습이 보였다. 목포에 온 이후 편안해졌던 마음이 다시 복잡해졌다.

▲영란과 완규가 만났던 칠칠계단(위)
▲영란과 완규가 만났던 칠칠계단(위)

“아줌마아!”/“왜애?”

“안 가면 안 돼요?”

아이 목소리에 분명히 울음이 실려 있다.

“아줌마 안 가면 좋겠어?”/“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북교초등학교 정문 앞,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굳이 욕망이라고 표현한다면, 완규에게 솟아나지 않던 어떤 욕망이 수한이 때문에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욕구인지도 모른다. 혹은 본능일까. 아니면 단순한 연민인가. 알 수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이끌고 기자는 북교초등학교 앞으로 향했다. 영란은 떠나기 전 완규의 조카 ‘수한’을 보고자 수한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다다른다. 영란이 목포를 떠난다고 밝히자 수한은 떠나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에 영란은 떠날 계획을 접고 수한이 다니는 학교 앞 슈퍼에 세를 얻는다. 영란의 마음을 돌린 것은 완규도, 그 누구도 아닌 수한이라는 아이였다. 소설을 읽을 당시, 영란이 수한과 초등학교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기 전까지 둘 사이의 별다른 애착을 발견할 수 없었던 기자는 어떻게 수한이 영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기자는 궁금증을 풀고 싶어 수한이 다니는 목포 북교초등학교에 꼭 가고자 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마침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입학식을 마친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혹여 누가 될까, 교내로 들어가지 못했던 기자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그 순간 기자의 옆으로 초등학생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순식간이었지만 아이가 가진 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소설에 관한 의문이 조금 풀렸다.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북교초등학교 학생들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북교초등학교 학생들

간재미회를 먹다가 인자가 문득,

“맨날 얻어먹기만 허면 죄로 갈 텐디.”

그때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우리가 배워서…… 써먹을까?”/“써묵다니, 어디다?”

“우리 간재미회 장사하자.”

 

▲영란횟집
▲영란횟집

북교초등학교 앞 슈퍼에 살게 된 이후 영란은 생계가 어려워지자 ‘인자’와 함께 이웃집의 도움을 받는다. 도움만 받기 미안했던 영란은 직접 음식점을 차린다. 새 건물을 구입하기 마땅치 않은 영란과 인자는 운영하던 슈퍼를 ‘영란집’이라는 식당으로 바꾼다. 소설 초반부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던 영란의 모습을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영란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진다. 기자는 소설 속 영란집을 연상시키는 식당 이름과 음식이 있는 ‘영란횟집’을 방문했다. 영란횟집은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 유명한 곳이었고, 그에 걸맞게 손님도 많았다. 종업원은 바쁜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낭랑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그녀가 소설 속 영란의 모티브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소설 속 영란을 본 듯한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열차에 올랐다. 기차에서의 기분은 목포에 올 때와 달랐다. 이틀 동안의 여행이었음에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유쾌했다. 기자는 소설책을 들어 책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었다. 『영란』의 저자 공선옥은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한다. 기자는 이별로 무기력할 때 슬픔을 외면했다. 떠올리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목포 기행과 이 글을 쓰면서 슬픔을 당당히 마주했다. 작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기자가 겪은 이별은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되는 발판”과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저작권자 © 홍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하단영역

모바일버전